INTRO
스러져가는 과거의 잔재 위에 현재가 덧칠해지고,
사람들이 떠나간 공간은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워진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함을 간직한 이곳.
.
모든 것이 같아진다는 의미가 아닌,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느껴지는 어울림을 ‘조화’라고 한다.
해방촌에는 달동네처럼 보이는 공간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 이 공간들이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해방촌을 방문하였다.
별책부록
산을 타듯, 주택을 품은 길을 끝없이 올라간다. 그 사이, 벽돌 건물 가운데에 자리한 회색빛 공간. 문에 적힌 작은 글자가 간판의 전부인 별책부록 서점이다.
안에 들어서면, 차분한 음악과 책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먼저 반긴다. 공간은 양옆으로 나뉜 덕분에 꽤 넓다. 독립출판물이 주를 이루면서 잡지와 시중에 파는 작품이 진열돼 있다. 표지에 책의 줄거리나 구절이 간단히 적혀 있는 것도 있으니, 책을 읽기 전에 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독특한 책도 있다, 출판사 ‘쪽프레스’에서 발간한 ‘한쪽책’이다. 병풍처럼 접힌 긴 종이를 펼치면 8~10쪽의 책이 나온다. 작품에 그림과 글이 같이 혹은 따로 있어 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계산대 부근에는 메모지나 마스킹테이프, 엽서 같은 문구를 판매한다. 책과 책 사이의 빈 공간을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물품으로 메운 이곳의 정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마음을 온기로 가득 물들여줄 것을 찾기에 충분한 곳이겠다.
이곳에서는 북 토크나 취미 클래스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한다면, 배우고 싶은 취미가 있다면 수시로 SNS에 들러서 확인해 보는 걸 권한다. 또한 2016년부터 동명의 출판사 이름으로 영화 리뷰 매거진인 ‘CAST’,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합작인 ‘Poetic Paper’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2019년에는 ‘PRACTICAL PRESS’라는 출판 브랜드를 시작해 유익한 정보를 담은 책을 발간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책과 조화되도록, 다방면으로 묵묵히 노력하는 이곳이다.
본지에 덧붙여 따로 만드는 책자인 별책부록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다. 쉬이 넘기는 글까지 소중히 간직한다는 마음으로 이곳의 이름을 ‘별책부록’이라고 지은 건 아닐까. 책방의 따스한 기운을 몸소 느끼면서 밖으로 나선다.
영업시간 화-일요일 오후 1:30-7:30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16길 7, 1층
인스타그램 @byeolcheck (서점 소식) / @byeolcheck.info (프로그램 소식)
널 담은 공간
좁고 빽빽한 해방촌의 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길가의 분위기와 상반된 모던한 외관의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카페 안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으로 살짝 엿본 ‘널 담은 공간’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색 공간임을 보여주는 듯해 기대를 품게 했다.
1층의 우측에는 편지지 샘플과 함께 선물하기 좋은 여러 다과를 전시해 놓았다. ‘Open the door and write to the person you love. - 문을 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라.’ 그 위 포스터에 적힌 문자가 인상 깊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어 마음속 이야기를 쓰고 싶은, ‘널 담은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편지들이었다. 아직 발송되지 않은 개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 이것이 이 카페에서 해방촌을 만끽할 수 있는 수단임을 직감했다. 첨단기술 시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정성의 표본인 편지는 괜스레 ‘널 담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추억과 감성에 젖게 했다.
카페의 외부 좌측에 위치한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유리창이 넓게 뚫려있어 햇볕이 따스하게 들고 경치를 보기에도 충분했다. 내부의 노란빛 조명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편지인 만큼 글 쓰기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2층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담을지, 경치를 즐기며 사색에 잠긴 사람은 현재 어떤 심정일지 궁금해지는 공간이었다. 다른 카페와 달리 ‘글’이라는 차별점을 둔 만큼 밝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구성돼 있어, 시선을 빼앗는 다른 요소 없이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낸 후 휴식을 위해 들르기 최적의 공간이 아닐까.
어쩐지 ‘널 담은 공간’이라는 이름에서 나 자신에게 집중해 평소 하지 못한 말을 건넬 기회를 주는 느낌이 들었다. 여유로움과 음악, 깔끔한 공간, 해방촌의 경치.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선사헤 주는 장소였다. 정신없는 일상에 치여 살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 자신만의 진심을 담아보는 것이 어떨까.
영업시간 매일 12:00-20:00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15길 18-12
공식사이트 (nuldam.com) / 인스타그램 @nuldam_space
신흥 시장
해방촌 오거리에서 한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시장의 이름이 적힌 깊숙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들어서는 순간, 범상치 않은 시장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낄 것이다. 이리저리 부딪힐 수밖에 없고 상인들과 시민들이 정겹게 북적이는 일반적인 시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길은 여러 갈래로 얽히고설킨 미로 같다. 그렇다고 시장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각종 식당과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로 1층에서 가게를 볼 수 있고, 다른 층들은 일반 집처럼 보인다. 집이 대부분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가게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조화로운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시장 골목은 일자로 시작과 끝이 있는 긴 형상인데, 신흥시장은 돌고 도는 순환 동선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는데, 햇빛이 골목 깊숙이 들어와 빌딩이 가득한 도심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건물에 살짝 가려진 햇빛은 차분하고 짙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괜스레 발걸음을 늦춘 채 가게들을 천천히 구경하게 만든다.
시장 내부에는 카페, 술집, 옷 가게, 향수 공방 등 전통시장과는 다른 가게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장의 자체적인 공간은 아직 낙후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거나 오래 묵은 때가 보여 이질감이 들지만, 동시에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영화 세트장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묘한 시장이다. 건물 곳곳에 균열이 있고 먼지가 묻어 있는 예스러운 배경이다. 그 안에는 유행을 반영한 가게가 소박하게 자리를 지킨다. 이곳이 어디인가 싶다가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묘한 분위기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번잡하지 않으면서 색다른 시장에 가고 싶다면, 그 답은 이곳에 있을 것이다.
영업시간 상점마다 상이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95-9 (용산동 2가) 신흥시장
스토리지북앤필름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해방촌의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간판 없는 상점 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상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커다란 간판은 없지만, 통창의 외관에서 보이는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은 잠시 편안하게 책을 보고 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듯했다.
‘인생 사진보다 인생의 책을 발견해요!’ 책방 입구에는 문구가 담긴 조그마한 쪽지가 붙어있었다. 서점은 구매할 책이 있을 때만 방문하는 곳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이 문구는 마치 천천히 둘러보며 책방의 분위기를 느껴보라는 의미 같아 더 편안해졌다.
책방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독립출판물 중 여행 에세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서점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찾아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몇 권의 책을 집어 읽기도 했다.
책방을 둘러보니 책 구절을 적어놓은 쪽지가 벽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몇 구절만으로 어떤 내용의 책인지는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지만, 쪽지들을 찾아 읽은 덕분에 조용하면서도 포근한 책방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한편에는 ‘Summer Books’라고 적혀있는 책 묶음이 진열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책을 고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추천하는 책을 ‘여름을 담은 책’이라고 칭하여 판매하고 있는 듯했다. 여름 향기가 느껴지는 쨍한 색감의 표지를 보고 책방 안을 다시 둘러보니,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는 형형색색의 표지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그 안에서 아늑한 공간에 열을 맞춰 진열된 책들은 해방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모아 ‘조화’로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조용한 책방에서 해방촌이라는 장소의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 둘러보며 인생의 책을 발견하길 바란다.
영업시간 매일 14:00-19:00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115-1 1층
인스타그램 @storagebookandfilm
콤포트 서울
해방촌 입구에서 꽤 많이 떨어진 공간에 위치한 콤포트 서울은 찾아가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여러 계단을 지나면 누가 봐도 복합문화공간처럼 생긴 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외관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처럼 생긴 콤포트 서울은 건축과 전망에 공을 들인 공간처럼 보였다.
1층은 콘셉트 스토어로, 콤포트 서울을 브랜딩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할 경우 그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기도 한다. 특히 콤포트 서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삐용이’와 관련된 굿즈를 많이 판매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구매하지 않을 수 없는 귀여움에 결국 지갑을 열고 말았다.
2층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새로운 전시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3층은 따로 운영을 하지 않았고, 4층은 카페, 옥상은 테라스로 되어 있었다. 카페는 성수나 연남동에 있는 카페처럼 SNS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분위기였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카페에서 해방촌 전경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훨씬 탁 트인 시야에서 해방촌 전경을 보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옥상에는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한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해가 한창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터라 더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콤포트 서울이라는 공간이 해방촌의 분위기와 이질적일 수 있겠다고 느꼈으나, 옥상에 올라오고 나니 그 생각이 사라졌다. 패션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과 해방촌 날 것 그대로의 경관이 합쳐져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콤포트 서울은 구성 단계부터 남산을 따라 위치한 소월로와 해방촌으로 이어지는 두텁바위로가 만나는 길을 연결하자는 자연스러운 공감대 아래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해방촌과 조화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업시간 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4층 카페는 오후 9시까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58-144 콤포트
인스타그램 @comfort.seoul
Editor. 김진우, 김민지, 이민서, 박다인
INTRO
스러져가는 과거의 잔재 위에 현재가 덧칠해지고,
사람들이 떠나간 공간은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워진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함을 간직한 이곳.
.
모든 것이 같아진다는 의미가 아닌,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느껴지는 어울림을 ‘조화’라고 한다.
해방촌에는 달동네처럼 보이는 공간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 이 공간들이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해방촌을 방문하였다.
별책부록
산을 타듯, 주택을 품은 길을 끝없이 올라간다. 그 사이, 벽돌 건물 가운데에 자리한 회색빛 공간. 문에 적힌 작은 글자가 간판의 전부인 별책부록 서점이다.
안에 들어서면, 차분한 음악과 책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먼저 반긴다. 공간은 양옆으로 나뉜 덕분에 꽤 넓다. 독립출판물이 주를 이루면서 잡지와 시중에 파는 작품이 진열돼 있다. 표지에 책의 줄거리나 구절이 간단히 적혀 있는 것도 있으니, 책을 읽기 전에 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독특한 책도 있다, 출판사 ‘쪽프레스’에서 발간한 ‘한쪽책’이다. 병풍처럼 접힌 긴 종이를 펼치면 8~10쪽의 책이 나온다. 작품에 그림과 글이 같이 혹은 따로 있어 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계산대 부근에는 메모지나 마스킹테이프, 엽서 같은 문구를 판매한다. 책과 책 사이의 빈 공간을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물품으로 메운 이곳의 정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마음을 온기로 가득 물들여줄 것을 찾기에 충분한 곳이겠다.
이곳에서는 북 토크나 취미 클래스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한다면, 배우고 싶은 취미가 있다면 수시로 SNS에 들러서 확인해 보는 걸 권한다. 또한 2016년부터 동명의 출판사 이름으로 영화 리뷰 매거진인 ‘CAST’,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합작인 ‘Poetic Paper’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2019년에는 ‘PRACTICAL PRESS’라는 출판 브랜드를 시작해 유익한 정보를 담은 책을 발간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책과 조화되도록, 다방면으로 묵묵히 노력하는 이곳이다.
본지에 덧붙여 따로 만드는 책자인 별책부록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다. 쉬이 넘기는 글까지 소중히 간직한다는 마음으로 이곳의 이름을 ‘별책부록’이라고 지은 건 아닐까. 책방의 따스한 기운을 몸소 느끼면서 밖으로 나선다.
영업시간 화-일요일 오후 1:30-7:30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16길 7, 1층
인스타그램 @byeolcheck (서점 소식) / @byeolcheck.info (프로그램 소식)
널 담은 공간
좁고 빽빽한 해방촌의 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길가의 분위기와 상반된 모던한 외관의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카페 안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으로 살짝 엿본 ‘널 담은 공간’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색 공간임을 보여주는 듯해 기대를 품게 했다.
1층의 우측에는 편지지 샘플과 함께 선물하기 좋은 여러 다과를 전시해 놓았다. ‘Open the door and write to the person you love. - 문을 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라.’ 그 위 포스터에 적힌 문자가 인상 깊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어 마음속 이야기를 쓰고 싶은, ‘널 담은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편지들이었다. 아직 발송되지 않은 개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 이것이 이 카페에서 해방촌을 만끽할 수 있는 수단임을 직감했다. 첨단기술 시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정성의 표본인 편지는 괜스레 ‘널 담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추억과 감성에 젖게 했다.
카페의 외부 좌측에 위치한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유리창이 넓게 뚫려있어 햇볕이 따스하게 들고 경치를 보기에도 충분했다. 내부의 노란빛 조명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편지인 만큼 글 쓰기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2층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담을지, 경치를 즐기며 사색에 잠긴 사람은 현재 어떤 심정일지 궁금해지는 공간이었다. 다른 카페와 달리 ‘글’이라는 차별점을 둔 만큼 밝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구성돼 있어, 시선을 빼앗는 다른 요소 없이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낸 후 휴식을 위해 들르기 최적의 공간이 아닐까.
어쩐지 ‘널 담은 공간’이라는 이름에서 나 자신에게 집중해 평소 하지 못한 말을 건넬 기회를 주는 느낌이 들었다. 여유로움과 음악, 깔끔한 공간, 해방촌의 경치.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선사헤 주는 장소였다. 정신없는 일상에 치여 살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 자신만의 진심을 담아보는 것이 어떨까.
영업시간 매일 12:00-20:00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15길 18-12
공식사이트 (nuldam.com) / 인스타그램 @nuldam_space
신흥 시장
해방촌 오거리에서 한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시장의 이름이 적힌 깊숙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들어서는 순간, 범상치 않은 시장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낄 것이다. 이리저리 부딪힐 수밖에 없고 상인들과 시민들이 정겹게 북적이는 일반적인 시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길은 여러 갈래로 얽히고설킨 미로 같다. 그렇다고 시장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각종 식당과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로 1층에서 가게를 볼 수 있고, 다른 층들은 일반 집처럼 보인다. 집이 대부분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가게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조화로운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시장 골목은 일자로 시작과 끝이 있는 긴 형상인데, 신흥시장은 돌고 도는 순환 동선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는데, 햇빛이 골목 깊숙이 들어와 빌딩이 가득한 도심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건물에 살짝 가려진 햇빛은 차분하고 짙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괜스레 발걸음을 늦춘 채 가게들을 천천히 구경하게 만든다.
시장 내부에는 카페, 술집, 옷 가게, 향수 공방 등 전통시장과는 다른 가게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장의 자체적인 공간은 아직 낙후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거나 오래 묵은 때가 보여 이질감이 들지만, 동시에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영화 세트장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묘한 시장이다. 건물 곳곳에 균열이 있고 먼지가 묻어 있는 예스러운 배경이다. 그 안에는 유행을 반영한 가게가 소박하게 자리를 지킨다. 이곳이 어디인가 싶다가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묘한 분위기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번잡하지 않으면서 색다른 시장에 가고 싶다면, 그 답은 이곳에 있을 것이다.
영업시간 상점마다 상이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95-9 (용산동 2가) 신흥시장
스토리지북앤필름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해방촌의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간판 없는 상점 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상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커다란 간판은 없지만, 통창의 외관에서 보이는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은 잠시 편안하게 책을 보고 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듯했다.
‘인생 사진보다 인생의 책을 발견해요!’ 책방 입구에는 문구가 담긴 조그마한 쪽지가 붙어있었다. 서점은 구매할 책이 있을 때만 방문하는 곳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이 문구는 마치 천천히 둘러보며 책방의 분위기를 느껴보라는 의미 같아 더 편안해졌다.
책방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독립출판물 중 여행 에세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서점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찾아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몇 권의 책을 집어 읽기도 했다.
책방을 둘러보니 책 구절을 적어놓은 쪽지가 벽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몇 구절만으로 어떤 내용의 책인지는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지만, 쪽지들을 찾아 읽은 덕분에 조용하면서도 포근한 책방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한편에는 ‘Summer Books’라고 적혀있는 책 묶음이 진열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책을 고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추천하는 책을 ‘여름을 담은 책’이라고 칭하여 판매하고 있는 듯했다. 여름 향기가 느껴지는 쨍한 색감의 표지를 보고 책방 안을 다시 둘러보니,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는 형형색색의 표지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그 안에서 아늑한 공간에 열을 맞춰 진열된 책들은 해방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모아 ‘조화’로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조용한 책방에서 해방촌이라는 장소의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 둘러보며 인생의 책을 발견하길 바란다.
영업시간 매일 14:00-19:00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115-1 1층
인스타그램 @storagebookandfilm
콤포트 서울
해방촌 입구에서 꽤 많이 떨어진 공간에 위치한 콤포트 서울은 찾아가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여러 계단을 지나면 누가 봐도 복합문화공간처럼 생긴 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외관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처럼 생긴 콤포트 서울은 건축과 전망에 공을 들인 공간처럼 보였다.
1층은 콘셉트 스토어로, 콤포트 서울을 브랜딩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할 경우 그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기도 한다. 특히 콤포트 서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삐용이’와 관련된 굿즈를 많이 판매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구매하지 않을 수 없는 귀여움에 결국 지갑을 열고 말았다.
2층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새로운 전시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3층은 따로 운영을 하지 않았고, 4층은 카페, 옥상은 테라스로 되어 있었다. 카페는 성수나 연남동에 있는 카페처럼 SNS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분위기였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카페에서 해방촌 전경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훨씬 탁 트인 시야에서 해방촌 전경을 보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옥상에는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한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해가 한창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터라 더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콤포트 서울이라는 공간이 해방촌의 분위기와 이질적일 수 있겠다고 느꼈으나, 옥상에 올라오고 나니 그 생각이 사라졌다. 패션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과 해방촌 날 것 그대로의 경관이 합쳐져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콤포트 서울은 구성 단계부터 남산을 따라 위치한 소월로와 해방촌으로 이어지는 두텁바위로가 만나는 길을 연결하자는 자연스러운 공감대 아래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해방촌과 조화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업시간 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4층 카페는 오후 9시까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58-144 콤포트
인스타그램 @comfort.seoul
Editor. 김진우, 김민지, 이민서, 박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