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2 유산




INTRO



뜨거운 기운이 한 풀 꺾이고 선선해지는 계절, 가을

푸르던 이파리가 낙엽이 되어 발밑에서 쓸쓸히 쌓여가고

낙엽처럼 바스러져 사라지는 가을이 아쉽다면

이곳, 익선동으로


w. 한다현





운현궁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단풍이 무르익는 계절, 운현궁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곳이자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사저로서, 역사적 상징성을 지녀 높은 보존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현재 운현궁에 남아 있는 주요 건물들은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이 있다. 1864년 흥선대원군은 생활공간인 사랑채(노안당)와 중심 건물인 노락당을 지었고, 1869년에 별당인 이로당을 지었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아들인 고종을 대신하여 10여 년 간 정치 활동을 펼쳤다.

운현궁 정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경비병들이 머물렀던 수직사가 있다. 고종이 왕으로 즉위한 뒤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커지면서, 경비와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 또한 늘어났다.

수직사 옆 솟을대문을 통하여 흥선대원군의 일상 거처인 노안당으로 가보자. 솟을대 문은 가마를 타고 출입이 가능하도록 양옆의 행랑보다 지붕을 높게 올린 대문이다. 기세 높게 솟은 지붕에서 사대부가의 권력과 위풍을 느낄 수 있다.

노안당은 대청과 온돌방, 영화루로 구성된 T자형 건물이다. 영화루는 다른 건물에 비해 바닥 높이가 높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실내에서 외부의 경치를 즐기기 좋다. 『논어』의 한 구절에서 가져온 노안은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흥선대원군은 이곳 노안당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을까.

운현궁의 중심에 위치한 노락당은 주로 가문의 큰 행사 때 이용한 곳으로, 크고 화려한 규모를 자랑한다. 기둥머리에 새 날개처럼 뾰족하게 생긴 익공 장식과 지붕의 용마루를 받치고 있는 종도리에 그려진 용 문양을 통해 위엄을 보여준다. 1866년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운현궁의 안채로 쓰인 이로당은 여성들만 생활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으로 쓰였다.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ᄆ자 모양으로 지어졌으며, 중앙에는 작은 중정이 있다.

운현궁 내부는 출입이 어렵지만, 도자기, 병풍, 전통가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보며 옛 정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선선한 가을에 운현궁을 산책하면서 소박하지만 기품있는 과거의 향기를 느껴보자.



주소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64

관람 시간 화 ~ 일요일 (월요일 휴관) 09:00 ~ 19:00

 




갤러리 공간 35



운현궁에서 나와 덕성여대 방향의 골목길로 접어들면 작은 한옥 갤러리를 발견할 수 있다. 갤러리 공간 35는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주로 한옥이라는 공간적 특성에 어울리는 도자기, 전통 공예 작품, 민화 등이 소개된다.

당시 갤러리에선 이태정 작가의 찻사발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도자기를 깊이 눈에 담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해정 작가의 찻사발은 손으로 빚어내어 투박한듯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고, 흐르는 유약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무늬들과 색깔의 절제된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전면의 전시 공간 뒤편으로도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선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방문한 듯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듯 무심히 놓인 옛 물건들 속에 향수가 깃들어있다.

바쁜 도심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다면 갤러리 공간 35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보자. 다만, 전시 주기가 짧은 편이고 전시 시간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확인한 후 방문을 추천한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32길 35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allery_space35/







카페 온


익선동 한옥거리에 들어서자 좁은 길을 따라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도 꽤 있어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도 들려왔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익선동 한옥 거리에서는 목적지에 대한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여기저기 모두 각자의 개성을 자랑하는 한옥 상점으로 가득 차 있어서 시선을 옮길 때 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우리가 들른 곳은 카페 “온”.(@on_iksun) 바깥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가마솥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카페에 가마솥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조합이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자 천장에서 햇빛이 들어와 따사롭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옛스러운 노래와 인테리어 덕분에 마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1인 1 메뉴로, 가마솥 빵(플레인), 대나무 잎 얼그레이 푸딩, 과일차(사과)를 골랐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모두 ‘맛있다’라고 입을 모아 얘기할 만큼 맛이 있었다. 대나무 잎 얼그레이 푸딩은 이름처럼 대나무 잎에 감싸 나오는데 별도의 얼그레이 크림과 함께 제공된다. 푸딩과 크림 모두 진한 얼그레이 향을 느낄 수 있고 식감 역시 매우 부드럽다. 가마솥 빵 역시 크림과 함께 제공되며 빵은 카스텔라와 비슷한 맛과 식감으로 담백했다. 빵인데도 불구하고 입에서 부드럽게 살살 녹는 느낌이었다. 과일차는 사과가 슬라이스로 썰려 가득 담겨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한 모금 마시니 사과 본연의 맛이 깊게 느껴졌다. 어떻게 음료에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과의 맛을 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모든 에디터가 ‘만족스러운 맛’으로 평했다.

이처럼 한옥거리를 거닐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맛의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온을 방문해 보길 바란다.



주소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17

영업시간 매일 09:00 – 22:00





낙원악기상가



익선동 한옥거리 바로 옆엔 또 다른 과거의 서울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건물 외관에서 이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 낙원 악기 상가다. 낙원악기상가를 들어가기 전부터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는데, 상가 주변에도 오랜 세월을 함께한 듯 보이는 식당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낙원악기상가를 들어가면 수많은 악기 상점이 모여있기에, 마치 세상의 모든 악기를 모아둔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악기가 진열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악기 판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악기 수리도 가능한 악기 전문가의 공간이다. 방문객들은 수많은 악기 중 자신에게 딱 맞는 악기를 찾고 있는 듯 열정이 넘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악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악기를 연주해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따뜻하고 기분 좋은 활기를 느낄 수 있다.





허리우드 극장



낙원악기상가가 있는 낙원빌딩 4층, 그곳엔 작은 극장이 하나 있다. 주로 어르신을 대상으로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극장’이다. 이곳은 원래 1969년부터 영화를 상영했던 종로 제일의 영화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설 자리를 잃은 극장은 2005년 폐관했다가 2009년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들에 의한, 어르신들의 극장’으로 다시 개관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허리우드 극장은 ‘어르신들의 극장’답게 55세 이상은 2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학생은 5천 원, 일반 성인은 7천 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55세 이상의 사람과 동반 시 2천 원이라는 할인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 어르신들을 주 타깃으로 삼은 실버 영화관은 <라쇼몽>, <황금마차>,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추억의 영화를 상영한다.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로비는 말 그대로 '레트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옛날 영화 포스터 삽화가 전시되어 있고,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추억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타자기와 전화기 등 생소해서 더 흥미로운 물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래된 건물일 뿐임에도 공간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는 공간이기도 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신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그 모습을 유지해 온 낙원 악기 상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그리움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장소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랜 세월 꾸준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낡고 정감 가는 공간, 낙원악기상가는 여전히 악기 전문 상가로서, 그리고 추억을 선사하는 극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28

영업시간 월~토 10:00~19:30





Editor. 임서연, 김세연, 김지현 , 이예은

Designer. 이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