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젖어 흐르는 시간, 리홀 뮤직 갤러리
장소에 대한 소개
5월 VISIT을 작성하기 위해 모인 3명의 에디터들. 이상하리만큼 겹치는 조합에 웃음이 났다.
밴드에 관한 칼럼을 꾸릴 때 빛나던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VISIT 장소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용한 공간 속 오로지 소리의 깊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리홀 뮤직 갤러리를 VISIT 장소로 선정하였다.
시원하게 오는 빗속 버스에서 내리면, 조용한 분위기인 성북동의 친근한 누룽지백숙 가게가 우리를 반겨준다. 리홀 뮤직 갤러리는 같은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누룽지백숙 가게 의 영수증을 지참하면 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백숙 가게 사장님께서 취미 생활로 음악 청취 공간을 운영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플을 통해 길을 찾지 않아도, 정열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커다란 빨간 색의 현수막이 쉽게 공간으로 인도해준다.
빨간 현수막을 지나 계단에 오르며,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공간을 찾으며 예상했던 이미지는 웅장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였는데, 계단을 올라서면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온 적이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을 안겨주는 공간이 나타난다. 왼쪽 창문으로 보이는 정감 가는 식당과, 존재의 이유를 궁금하게 하는 독특한 색깔의 빛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가 와서 시원해진 공기, 천장 타닥타닥 위로 떨어지는 비,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호기심을 산뜻함으로 만들어주는 기분이다. 계단을 올라가며 빈틈 없이 채워진 벽을 보면 공간에 대한 주인의 사랑이 느껴진다. 음반이나 공간의 행사를 보여주는 포스터가 눈을 가득 채워주었다.
토토로 캐릭터가 그려진 ‘Rheehall Animation Sound Track’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날을 맞이해 진행했던 행사인 것 같다. 포스터 속 ‘어른이 된 나인데, 어른이고 싶지 않은 날. 우리만의 어른이날을 누려보아요’ 문구가 심금을 울렸다. 단순한 음악 청취 공간이 아닌 마음이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젖었다.
본격적인 청취 공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음반이 눈에 띈다. 음반뿐만이 아닌 장식장 위 형형색색의 오브제가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이 공간에 채워진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카운터 또한 다양한 오브제가 반기고 있고, 따스한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CD와 LP를 판매하기도 한다. 카운터의 결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양쪽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레코드판에 압도되었다. 마치 귀족의 버려진 별장이나 은퇴한 음악가의 수장고 같았다. 푸른 커튼과 조용한 조명, 줄줄이 배치된 의자와 우드톤의 인테리어가 자아내는 엄숙함은 흡사 이곳이 음악에 봉헌된 성당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끝없이 늘어진 의자에 띄엄띄엄 앉은 연인, 가족, 그리고 왼쪽 벽면의 길쭉한 테이블에 자리잡은 에디터 삼인방. 이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믿는 사람들 아닐까.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입장료를 결제하면, 조그마한 종이와 연필을 받고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함께 온 사람과의 담소를 원한다면 조금 뒤쪽으로,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면 앞쪽에 앉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공간 속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곡을 적어 제출하면 곧바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시야를 꽉 채우는 LP만큼이나 다양한 곡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그 10만 여장의 LP 대부분은 모두 2000년대 이전의 재즈, 클래식과 팝 장르에만 해당하기에 우리는 신중하게 글자를 써 내려가야만 했다.
신청곡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음악에 너무 빠져 신청을 잊지 않게 주의하자.
신청곡을 직원분에게 전달하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수많은 스피커가 눈에 들어오는데, 흥미로운 점은 신청곡에 따라 스피커가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마치 스피커가 음악을 다 이해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기존에 인식하고 있던 장르와 분위기를 재해석하여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각 스피커의 특징과 장점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가끔은 직원분께서 스피커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갤러리의 역사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해주신다고 한다.
본인의 신청곡이 전부 재생되었다 해도 감상은 계속된다.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그 이후에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다른 손님들의 신청곡이 이어지면서 각기 다른 취향이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차되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직원분은 분위기에 맞추어 LP를 직접 골라주시거나 손님의 취향에 맞는 LP를 이어서 재생해주신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 덕분에 우리는 음악이 주는 여운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에디터의 시선
성민)
곡과 곡 사이, LP판과 스피커를 교체하며 생기는 잠깐의 공백마저 참을 수 없었다. 다음 곡은 누구의 신청곡일까? 이 사람은 어떤 취향의 음악을 선호할까? 저 스피커로 듣는 음악은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어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다음 곡이 재생되고 있다. 듣다 보니 마음에 들어 핸드폰 속 플레이리스트에 곡을 추가한다. 이 과정을 2시간 동안 반복했다. 새로운 취향의 곡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설레고 신나는 일임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외람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공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왠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하지 않았는가.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곡이든 자세히 들어보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본인의 음악적 취향이 리홀뮤직갤러리가 다루는 장르와 맞지 않더라도 좋다. 조금 외진 곳에 있다 해도, 직접 방문해서 들어보자. 새로운 취향과 조우할 시간이다.
해원)
나 자신의 집중력과 주의력 상태를 의심했던 순간들이 없던 일처럼 느껴진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렇게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채로 2시간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고요하게 지나간 순간이 있던가?
신청곡을 적으며 느끼는 설렘,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는 즐거움, 아무런 걱정 없이 음악에 집중하는 여유, 음악을 들으며 만끽하는 마음의 위안, 머릿속에 떠다니는 추억이 되어 버린 순간들. 리홀 뮤직 갤러리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니다. 이 시간을 진심과 함께 내 마음에 조금씩 담아보고자 노력했다. 담긴 마음을 다시 독자에게 한 글자씩 전해본다. 누군가에게도 이 휴식의 공간과 따스한 순간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민)
집중과 멍함 사이의 팽팽한 경계를 유지하던 중 문득 뜬금 없는 선곡이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황당하게도 누군가가 캐롤을 신청한 것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5월 말의 한적한 오후에 캐롤이라니,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신청자는 같이 온 연인과 돌아올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며 캐롤을 신청했을까, 아니면 과거의 크리스마스를 회상하고 싶었을까. 실없는 웃음 뒤에는 실없는 상상이 피어올랐다.
신청곡에는 서사가 있다. 누군가의 추억과 감정이 스피커를 타고 나온다. 공간 속 모든 이는 서로의 서사를 어렴풋이 추측하며 노래를 듣는다. 혼자 왔다면 스스로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보자. 여럿이서 왔다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꺼내보자. 마치 외딴섬 같은 공간에서 낭만을 찾자.
Q.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음악
성민)
Pat Martino - Both Sides Now / Jimmy Fontana - Ilmondo
평소 올드팝과 재즈를 즐겨듣지는 않지만, 유난히 비가 오는 날에 찾게 되는 몇몇 노래들이 있다. 당일 쏟아지던 이슬비 덕에 거침없이 이 곡들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이 깊은 향기를 가진 음악을 LP와 CD로 들으니 더욱더 풍부하고 신비로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 난 비 오는 날의 무기력함을 억지웃음으로 이겨내기보단 무기력함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해원)
Al Green -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Delfonics - La-La Means Love you
Sam Cooke - You Send Me
‘2000년대의 이전의 해외 클래식, 팝, 재즈 중 3곡이라..’ 급히 플레이리스트를 뒤적뒤적 찾아보았다. 마침 비가 올 때 찾아듣던 음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빠진 음악을 질릴 때까지 듣는 성격 탓에, 몇 년 전 수백 번을 듣다가 잠시 잊고 있던 곡들이 귀를 가득 채우는 음향으로 다시 나를 반겼다. 그와 함께 지나간 추억들과 향기가 떠올랐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 공간을 사로잡는 선율, 오로지 감상과 생각, 위안만을 위한 순간이다. 바삐 지나간 시간들이 무색하게 음악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순간만큼은 느릿느릿 흘러간다.
수민)
Chet Baker - Everything Happens to Me
William Bolcom - Graceful Ghost Rag
재즈나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탓일까. 애써 적어낸 여섯 곡 중 겨우 두 곡만을 건질 수 있었다. LP판 한 장에는 대략 22분의 노래가 담겨있고, 리홀뮤직갤러리에는 10만 장의 LP가 소장되어 있으니, 이곳에 있는 모든 노래를 들으려면 1527일 동안 1분도 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곡들 중 겨우 두 곡만이 내 취향과 겹치는 것도 참 기막힌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건진 두 곡은 그날의 습도가 연상시킨 노래들이었다. 첫 번째 곡은 보슬비가 내릴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삽입곡인 <Everything Happens to Me>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다소곳이 부르는 영화 버전과 달리, 기존의 음원은 좀 더 축축하고 처량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빛의 웅장함과 팽팽한 고요함이 감도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W. Bolcom의 <Graceful Ghost Rag>가 떠올랐다. 차분한 공기 위에서 우아하게 춤추며 귓가에 올라타는 LP 특유의 자글자글한 소리가 속살거리는 빗소리 같기도, 유령의 귓속말 같기도 해 귀를 곤두서게 했다.
영업시간 화~일 11:30 - 20:50 *월요일 정기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31길 9 3층 리홀뮤직갤러리
인스타그램 @rheehallmusicgallery
editor. 왕수민, 정해원, 박성민
designer. 김민재
음악에 젖어 흐르는 시간, 리홀 뮤직 갤러리
장소에 대한 소개
5월 VISIT을 작성하기 위해 모인 3명의 에디터들. 이상하리만큼 겹치는 조합에 웃음이 났다.
밴드에 관한 칼럼을 꾸릴 때 빛나던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VISIT 장소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용한 공간 속 오로지 소리의 깊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리홀 뮤직 갤러리를 VISIT 장소로 선정하였다.
시원하게 오는 빗속 버스에서 내리면, 조용한 분위기인 성북동의 친근한 누룽지백숙 가게가 우리를 반겨준다. 리홀 뮤직 갤러리는 같은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누룽지백숙 가게 의 영수증을 지참하면 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백숙 가게 사장님께서 취미 생활로 음악 청취 공간을 운영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플을 통해 길을 찾지 않아도, 정열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커다란 빨간 색의 현수막이 쉽게 공간으로 인도해준다.
빨간 현수막을 지나 계단에 오르며,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공간을 찾으며 예상했던 이미지는 웅장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였는데, 계단을 올라서면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온 적이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을 안겨주는 공간이 나타난다. 왼쪽 창문으로 보이는 정감 가는 식당과, 존재의 이유를 궁금하게 하는 독특한 색깔의 빛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가 와서 시원해진 공기, 천장 타닥타닥 위로 떨어지는 비,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호기심을 산뜻함으로 만들어주는 기분이다. 계단을 올라가며 빈틈 없이 채워진 벽을 보면 공간에 대한 주인의 사랑이 느껴진다. 음반이나 공간의 행사를 보여주는 포스터가 눈을 가득 채워주었다.
토토로 캐릭터가 그려진 ‘Rheehall Animation Sound Track’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날을 맞이해 진행했던 행사인 것 같다. 포스터 속 ‘어른이 된 나인데, 어른이고 싶지 않은 날. 우리만의 어른이날을 누려보아요’ 문구가 심금을 울렸다. 단순한 음악 청취 공간이 아닌 마음이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젖었다.
본격적인 청취 공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음반이 눈에 띈다. 음반뿐만이 아닌 장식장 위 형형색색의 오브제가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이 공간에 채워진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카운터 또한 다양한 오브제가 반기고 있고, 따스한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CD와 LP를 판매하기도 한다. 카운터의 결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양쪽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레코드판에 압도되었다. 마치 귀족의 버려진 별장이나 은퇴한 음악가의 수장고 같았다. 푸른 커튼과 조용한 조명, 줄줄이 배치된 의자와 우드톤의 인테리어가 자아내는 엄숙함은 흡사 이곳이 음악에 봉헌된 성당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끝없이 늘어진 의자에 띄엄띄엄 앉은 연인, 가족, 그리고 왼쪽 벽면의 길쭉한 테이블에 자리잡은 에디터 삼인방. 이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믿는 사람들 아닐까.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입장료를 결제하면, 조그마한 종이와 연필을 받고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함께 온 사람과의 담소를 원한다면 조금 뒤쪽으로,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면 앞쪽에 앉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공간 속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곡을 적어 제출하면 곧바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시야를 꽉 채우는 LP만큼이나 다양한 곡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그 10만 여장의 LP 대부분은 모두 2000년대 이전의 재즈, 클래식과 팝 장르에만 해당하기에 우리는 신중하게 글자를 써 내려가야만 했다.
신청곡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음악에 너무 빠져 신청을 잊지 않게 주의하자.
신청곡을 직원분에게 전달하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수많은 스피커가 눈에 들어오는데, 흥미로운 점은 신청곡에 따라 스피커가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마치 스피커가 음악을 다 이해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기존에 인식하고 있던 장르와 분위기를 재해석하여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각 스피커의 특징과 장점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가끔은 직원분께서 스피커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갤러리의 역사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해주신다고 한다.
본인의 신청곡이 전부 재생되었다 해도 감상은 계속된다.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그 이후에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다른 손님들의 신청곡이 이어지면서 각기 다른 취향이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차되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직원분은 분위기에 맞추어 LP를 직접 골라주시거나 손님의 취향에 맞는 LP를 이어서 재생해주신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 덕분에 우리는 음악이 주는 여운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에디터의 시선
성민)
곡과 곡 사이, LP판과 스피커를 교체하며 생기는 잠깐의 공백마저 참을 수 없었다. 다음 곡은 누구의 신청곡일까? 이 사람은 어떤 취향의 음악을 선호할까? 저 스피커로 듣는 음악은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어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다음 곡이 재생되고 있다. 듣다 보니 마음에 들어 핸드폰 속 플레이리스트에 곡을 추가한다. 이 과정을 2시간 동안 반복했다. 새로운 취향의 곡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설레고 신나는 일임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외람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공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왠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하지 않았는가.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곡이든 자세히 들어보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본인의 음악적 취향이 리홀뮤직갤러리가 다루는 장르와 맞지 않더라도 좋다. 조금 외진 곳에 있다 해도, 직접 방문해서 들어보자. 새로운 취향과 조우할 시간이다.
해원)
나 자신의 집중력과 주의력 상태를 의심했던 순간들이 없던 일처럼 느껴진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렇게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채로 2시간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고요하게 지나간 순간이 있던가?
신청곡을 적으며 느끼는 설렘,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는 즐거움, 아무런 걱정 없이 음악에 집중하는 여유, 음악을 들으며 만끽하는 마음의 위안, 머릿속에 떠다니는 추억이 되어 버린 순간들. 리홀 뮤직 갤러리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니다. 이 시간을 진심과 함께 내 마음에 조금씩 담아보고자 노력했다. 담긴 마음을 다시 독자에게 한 글자씩 전해본다. 누군가에게도 이 휴식의 공간과 따스한 순간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민)
집중과 멍함 사이의 팽팽한 경계를 유지하던 중 문득 뜬금 없는 선곡이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황당하게도 누군가가 캐롤을 신청한 것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5월 말의 한적한 오후에 캐롤이라니,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신청자는 같이 온 연인과 돌아올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며 캐롤을 신청했을까, 아니면 과거의 크리스마스를 회상하고 싶었을까. 실없는 웃음 뒤에는 실없는 상상이 피어올랐다.
신청곡에는 서사가 있다. 누군가의 추억과 감정이 스피커를 타고 나온다. 공간 속 모든 이는 서로의 서사를 어렴풋이 추측하며 노래를 듣는다. 혼자 왔다면 스스로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보자. 여럿이서 왔다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꺼내보자. 마치 외딴섬 같은 공간에서 낭만을 찾자.
Q.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음악
성민)
Pat Martino - Both Sides Now / Jimmy Fontana - Ilmondo
평소 올드팝과 재즈를 즐겨듣지는 않지만, 유난히 비가 오는 날에 찾게 되는 몇몇 노래들이 있다. 당일 쏟아지던 이슬비 덕에 거침없이 이 곡들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이 깊은 향기를 가진 음악을 LP와 CD로 들으니 더욱더 풍부하고 신비로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 난 비 오는 날의 무기력함을 억지웃음으로 이겨내기보단 무기력함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해원)
Al Green -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Delfonics - La-La Means Love you
Sam Cooke - You Send Me
‘2000년대의 이전의 해외 클래식, 팝, 재즈 중 3곡이라..’ 급히 플레이리스트를 뒤적뒤적 찾아보았다. 마침 비가 올 때 찾아듣던 음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빠진 음악을 질릴 때까지 듣는 성격 탓에, 몇 년 전 수백 번을 듣다가 잠시 잊고 있던 곡들이 귀를 가득 채우는 음향으로 다시 나를 반겼다. 그와 함께 지나간 추억들과 향기가 떠올랐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 공간을 사로잡는 선율, 오로지 감상과 생각, 위안만을 위한 순간이다. 바삐 지나간 시간들이 무색하게 음악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순간만큼은 느릿느릿 흘러간다.
수민)
Chet Baker - Everything Happens to Me
William Bolcom - Graceful Ghost Rag
재즈나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탓일까. 애써 적어낸 여섯 곡 중 겨우 두 곡만을 건질 수 있었다. LP판 한 장에는 대략 22분의 노래가 담겨있고, 리홀뮤직갤러리에는 10만 장의 LP가 소장되어 있으니, 이곳에 있는 모든 노래를 들으려면 1527일 동안 1분도 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곡들 중 겨우 두 곡만이 내 취향과 겹치는 것도 참 기막힌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건진 두 곡은 그날의 습도가 연상시킨 노래들이었다. 첫 번째 곡은 보슬비가 내릴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삽입곡인 <Everything Happens to Me>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다소곳이 부르는 영화 버전과 달리, 기존의 음원은 좀 더 축축하고 처량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빛의 웅장함과 팽팽한 고요함이 감도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W. Bolcom의 <Graceful Ghost Rag>가 떠올랐다. 차분한 공기 위에서 우아하게 춤추며 귓가에 올라타는 LP 특유의 자글자글한 소리가 속살거리는 빗소리 같기도, 유령의 귓속말 같기도 해 귀를 곤두서게 했다.
영업시간 화~일 11:30 - 20:50 *월요일 정기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31길 9 3층 리홀뮤직갤러리
인스타그램 @rheehallmusicgallery
editor. 왕수민, 정해원, 박성민
designer. 김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