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을을 느끼는 방식, 그리움을 마주하다

출처: 다린의 <가을> 앨범 커버

       

INTRO


  

사계절 중 가을만이 '가을 타다'라는 말을 가진다.

가을이 되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그리움이다.

가을 타는 이들이 그리움에 대해 말해본다.

   

   

w. 김승현



 

 

우리가 가을을 느끼는 방식

: 그리움을 마주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축축하고 끈적이는 여름을 뒤로하고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가을의 하늘은 쾌청하고, 팔을 감싸는 옷의 감촉은 포근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바스락- 바람에 날리는 낙엽의 소리가 들린다. 공기의 질감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어루만지듯 괜스레 손을 스쳐 가는 바람을 쥐어본다. 가을 바람에선 상실의 냄새가 난다. 우리는 살아가며 저마다의 상실을 겪는다. 작게는 애정했던 열쇠고리부터 크게는 사랑하는 _ _까지.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부재하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과정을 겪는다. 많은 사람이 보통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회피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건강히 그리워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지나간 상실과 다가올 상실을 너무 아프지 않게 겪어낼 수 있도록. 여기 다양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 예술 작품들이 있다.

 

  

 


다린의 가을이다. 그리운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말을 건네는 게 좋을까? <가을>은 *더 이상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에게 안부를 보낸다. 이 곡은 가수 이소라가 <프로포즈>라는 라이브쇼에서 낭독한 자필 엽서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제가 없는 가을은 쓸쓸하지 않나요? 슬프지 않나요?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한 말이 있어요. 사랑해요.’ 이소라가 급히 떠나보낸 사랑을 그리움으로 매만지듯, 다린 또한 그리운 마음으로 지난 사랑을 다독인다.

 

  

가을, 영영 식지 않을 듯 무더웠던 사랑이 저물고 서늘한 이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우린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네가 없는 가을’로 날 밀어 넣은 널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몰래 ‘마음의 창’을 열어둔 채 네가 돌아오길 바란다. 그러나 곡의 화자는 물처럼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대'와의 만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 만남을 미움으로 ‘마치 없었던 척’ 지우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의 시간은 변하겠지만, 그때 우리가 함께한 가을만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 가을 속에는 꽃이 피듯 아름다운 사랑을 한 날들, 쓸쓸히 꽃이 지듯 사랑을 정리한 날들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감정들은 때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대로이다. 즉,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거스르기에 지금의 우리는 무력하지만, ‘어느 곳은 꽃 피우고 어느 곳은 쓸쓸한 그대로’, 사랑에 충실했던 그때의 우리는 기억 저편에 고요히 발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빛바랜 사랑을 받아들이고 맘껏 그리워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워함으로써 그대를, 사랑과 이별로 점철된 우리의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끔 그 순간들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며, ‘우리는 흘러갈지라도 나는 지금도 -.’

   

  

더 이상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대에게 안부를 보낸다. 지난날이 그리운 오늘, 다린의 가을이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를 들어보자.


 



진은영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수록된 시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이다. 시는 현재 부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예은'에게 가족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며 전개된다. 시의 화자는 가을 하늘처럼 매년 돌아오는 계절의 변화를 보며 예은을 생각하기도 하고, 예은과 같은 별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예은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화자가 생각하는 그리움은, 응축되었다가 폭발적으로 발산되는 것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며 문득 배어나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개인적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종이배처럼 날아가버린 봄날의 수학여행', '아이들에게 제대로 마른 것을 입히려고 진실의 옷을 짓는 어머니' 등의 시구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은유하고 있다. 이 시는 진은영 시인이 단원고 2학년 유예은 학생 유가족에게 바치는 헌정시로, 일상에 번지듯이 스미는 그리움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가을의 심상과 함께 나타낸다. 시를 감상하며 우리는 그리움이 그저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비록 그 형태가 저마다 다를지라도. 봄에 생겨난 그리움이 가을이 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다음해 봄이 되더라도, 어느 가을이 오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그리운 마음으로 남아있다. 가을을 맞이하며 일상 속에 잔존하는 ‘사랑’으로 인한 그리움을 들여다보자. 낙엽처럼 주워담아 바래지 않게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진행한 전시 <암흑을 직시하는 동시대인>이다. 이 전시는 암흑 속에서 잊히는 재난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재난의 고통이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지는 현실을 짚는다. 또한 재난 이후 '너'를 잃고 본래 '나'의 모습마저 잃은 유가족들의 그리움을 조명한다. 전시는 ‘재난 및 참사 피해자들의 희생에 빚져 우리가 오늘을 살았다. 이제 우리가 당신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채울 차례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재난 피해자들이 아픈 기억을 안고도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남은 우리가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고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필자들이 인상 깊었던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수빈: 땡글의 <복귀>이다. 이 만화는 참사의 이면에 놓인 '재난 이후 유가족들의 삶'을 다루며, 재난 이전의 삶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이전의 나’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지속되는 것은 오로지 과거뿐, 재난의 고통을 품지 않고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그들의 딜레마가 여실히 드러난다.



아름: 안미르의 <나의 열셋부터 스물하나까지>가 인상적이었다. 이 만화는 광장 촛불 시위라는 장소적 매개체를 통해 서로 다른 지점에 있던 사회적 참사들이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5·18민중항쟁, 4·16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나열되며 사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그리운 존재들이 늘어갈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들게끔 한다.



진: 강예나 작가의 <아픈 손가락>이 마음에 가장 남아 있다. 참사 이외에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 많은 참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잊었다. 내 일이 아니기에 괜찮고, 잊어도 된다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비판하려다 되려 지적받은 작품이다. 머리를 스쳐 가듯 지나간 이 작품은 그 순간부터 그들을, 그 시간들을 계속 기억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우리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특히 그리움이 밀려오는 날이면 우리는 이를 회피하거나 어떻게든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두고서, 남겨진 사람들은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크고 작은 이별로 주변에 생긴 빈자리와 남겨진 그리움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지나간 상실과 다가올 상실을 이제는 작게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 누군가의 아픔과 쓸쓸함을 간직한 채 주변을 돌아본다면, 이만큼 ‘공감’에 들어맞는 행위는 없을 것이다. _ _와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 이 모든 추억을 혼자, 또 함께 되새길 수 있는 계절인 가을은 그저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다.


2022년 10월 29일 이후, 우리의 가을은 한층 더 그리운 계절이 되었다. 내 친구, 동생, 언니 오빠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때 우리가 손을 잡던, 손을 잡을 수도 있었던 이들의 손을 놓친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그리운 마음을 안고서, 일상을 살아내기를 바란다. 상실을 겪은, 또 상실을 겪을 모두에게, 갑자기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너무 밉게 기억되지 않기를. 계절은 또다시 돌아오고, 그리움은 새롭게 반추될 것이고, 우리는 흘러갈테니.

  

  *다린의 가을 중 ‘우리는 흘러가고, 나는 지금도’의 가사를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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