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가능성, 기술의 끝에서 발견하는 예술의 새로운 형태



INTRO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

그 선을 넘나드는

예술의 새로운 도약



W. 최한결





AI로 제작된 한국 영화 <원 모어 펌킨>의 수상 소식, AI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대규모 전시—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예술인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소식들이다. AI는 마침내 예술의 영역까지 활동범위를 확장하며, 단순한 창작 도구를 넘어 창작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AI와 예술의 교집합이 커지는 오늘날, 우리는 이들에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기대하면서도 여전히 창의력에 한계가 있는, 예술의 보조적 도구일 뿐이라는 편견을 지니기도 한다. AI는 아직 미완성의 존재일까, 아니면 예술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낼 주체일까? 과연 우리는 인간의 손길과 감성이 아닌 기술의 결과물로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여기 이러한 가능성의 문턱에서 탄생하여 예술계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들이 있다.



큐레이션1 (전시)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니카 이의 전시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은 기술과 생물, 감각을 연결하는 그녀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아니카 이는 유기체와 인공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설치 미술을 통해 인간과 타자의 관계를 재정립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녀가 강조하는 이 주제가 깊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기존 작품들과 결은 같지만 더욱 입체적이고 모호한 영상 작품이 등장한다.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작품은 대규모 프로젝트 <공(公)>의 첫 번째 작품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이다. 이 작품은 아니카 이의 작업물을 데이터로 학습한 알고리즘, ‘디지털 쌍둥이’와 함께 창작한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사후에도 작품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작품을 들여다보면 다른 전시작들과 공통된 주제가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이질감이 스며들어 있다. 이는 AI가 작가의 직업에 대해 불쾌할 정도로 세밀하게 분석하여 그녀의 의도를 작업물에 반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포의 분열, 유기체의 변화와 부패, 해양 생물의 유전질 등 작가가 전시에서 탐구해온 기괴하고 모호한 주제들이 영상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되며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기존 작업이 새로운 영상 작품으로 재탄생하면서 장면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AI 예술이 가지는 완성도, 그리고 창의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면 속 가상의 생물들은 작가의 스타일을 재현하여 구성되었는데, AI가 인간의 예술적 창의력에 기술적으로 도달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작품의 분석과 빠른 데이터 생성, 그리고 재현의 측면에서 어쩌면 AI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AI가 독립적인 예술가로 역할 할 수 있는지,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복잡성을 작품에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답을 하는 다음 작품을 소개한다.



큐레이션 2 (문학)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매니페스토>는 AI 챗봇인 ChatGPT와 7명의 작가들이 협업해 완성한 SF*앤솔러지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오던 작가들이 AI의 '작문력'을 빌려 완성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AI와 인간 작가 간의 협업이 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엿볼 수 있다.



ChatGPT는 빠르고 유연하게 작가들의 요청에 맞춰 분량을 조절하고 묘사를 확장하는 능력을 발휘해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작가들은 AI가 한마디 요청만으로 분량 문제를 해결하는 점에 탄복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AI가 단순 명료한 언어와 ‘읽기 쉬운’ 묘사로 작품을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AI의 글에서는 감정적 울림이나 복합적인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드러난다. 이는 인간 독자의 깊이 있는 사고의 기회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주제 설정과 의사 결정이 아직 인간 작가의 몫인 점이다. 본 협업에서 ChatGPT는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서술을 확장했지만, 작가들은 AI의 초안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첨가하거나 변형했다. 따라서 본 협업은, 아직은 AI가 독립적인 창작의 주체로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고 인간 작가가 여전히 창작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AI의 역할은 어디까지이며 AI의 한계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앤솔러지는 AI와의 협업이 과연 인간의 창작력을 넘어선 결과를 만들어낼지, 아니면 AI와 인간이 서로 보완하며 공생할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 AI가 인간의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의 동반자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그렇다면 AI와 예술 융합 분야의 한계점으로 지적받는 모방의 문제는 어떠할까.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자 AI의 한계점으로 평가받는 분류 능력과 모방방지 능력은 예술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큐레이션 3 (작품)



안나 리들러의 <Mosaic Virus>는 AI 예술의 융합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핵심은 약 1만 장의 튤립 사진으로 구성된 데이터를 사용하여 AI를 훈련시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영상 속 튤립들은 비트코인 가격에 따라 색상, 모양, 크기가 변하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경제적 거품과 투기의 반복을 시각화한다.




<출처 – 유튜브 영상 화면 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AIdgsFYpzLU)>



리들러의 작업은 모방의 한계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AI가 데이터를 모방하는 방식은 결국 인간이 정한 분류 체계에 의존한다. 따라서, 데이터의 구성과 분류 방법에 따라 AI의 모방에는 편향이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AI를 통한 데이터의 기술적 재현이 아닌 분류와 모방을 통해 어떤 의미가 형성되는지를 탐구하는 예술적 접근이다. 이를 바탕으로 리들러의 작품 역시 단순한 기계적 모방을 넘어, 분류된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예술행위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이 정한 데이터 분류 체계의 의존하는 AI가 창작 도구의 역할을 넘어 예술 창작의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을지, 그 한계는 무엇일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알려준다.




<출처 – http://annaridler.com/works)>



이러한 맥락 속에서 AI와 예술에 대한 에디터들의 생각을 간단히 들어보았다.



성민) 이번 큐레이션을 준비하며 창작은 어쩌면 고도화된 분류와 연결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입력하고 이를 얼마나 적절하게 연결하는가에 따라 완성도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보아 아직은 그저 인간이 이 과정에 조금 더 적합할 뿐이라는 생각 말이다. 인공지능에게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쩌면 인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적 존재로 거듭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은 자그마한 가능성에 불과하긴 하지만 말이다.



영진)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ChatGPT를 쓰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낼 수 없었다. AI는 더 이상 부차적인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사용할수록 끌리는 이유는 그들이 점점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AI예술은 현재의 그것보다 더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AI 예술에 대한 편견과 그 자체의 한계에 끊임없는 도전 역시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지윤) 이번 큐레이션을 통해 우리가 흔히 AI로 대체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예술 분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AI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현재는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작업을 진행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AI가 만든 데이터를 또 다른 AI가 활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는 AI가 만든 작품에서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지만, 언젠가는 AI의 작품에 미감을 느끼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각기 다른 방식으로 AI를 다룬 세 작품을 보면 인간의 AI 예술에 대한 편견은 이전보다는 개선되었으나, 그러한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모방에 모방을 거듭하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복의 끝은 모방의 자멸이다. 모방만으로는 충분한 예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에서 볼 수 있듯, AI는 무언가를 분석하고 연상하는 능력에는 뛰어나지만 문학 작품에서의 감정의 복잡성과 이를 표현하는 인간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재현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인간은 같은 감정도 서로 다른 색깔로 느끼고 표현한다. 이에 비하면 <매니페스토>속 AI의 창작은 예술의 문턱에 다가갔지만 아직 그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AI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예술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AI는 언젠가 이 문턱을 넘어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세계를 초월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날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의 작품들을 통해 독자 스스로 찾아보길 바란다. 아울러 이 글에 대한 평가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AI, Chat GPT에게 받아보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ChatGPT 평가



저 글은 AI 예술의 현재 상태와 가능성에 대해 잘 짚어내고 있으며,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 AI가 예술 창작의 주체로 떠오르는 과정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설명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정과 창의성의 깊이를 구현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해. 또한,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인간과 협업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설득력 있어. 다만, AI가 극복해야 할 한계에 대한 논의가 좀 더 깊어지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어.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시 또는 문장을 추려 모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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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박성민

editor. 이영진, 하지윤

artwork. 김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