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우리 마음에도 렌즈가 있고 스크린이 존재한다. 형형색색의 감정들이 렌즈를 통해 마음의 상을 만든다.
마음 렌즈에 상처가 나면 외부 세계는 왜곡되어 기억되는데, 이때 무언가를 시청하면 마음의 균열을 없앨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저편에 있던 기억이 활성화되거나 모종의 영감이 교차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상이라는 매체는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자세히 알지 못해도 그냥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스크린의 심연 속에서 내재된 감성을 끌어내고 일종의 해방을 경험하는 것이다.
영상 시청을 위해 가만히 있는 시간을 들여야 하듯, 이번 visit to에서 소개하는 공간들은 사람들에게 진정과 여유를 선물한다. 흩어진 장면들을 그러모아 자신만의 알맹이를 돌보며, 고요하고도 깊은 기쁨과 만나길 바란다.
w.이루아
무수한 장면들이 저장되어 있는 공간, 영상자료원
: 영상 도서관
‘장면’이란, '겉으로 드러난 광경' 또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광경'이라는 뜻으로,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는 신(scene)이 있다. 영화는 개개의 장면들이 모여 이루어진 영상매체이기에 장면은 영화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빠짐없이 온전히 모여 있어야만 하나의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상암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3층에 있는 영상도서관은 영화 속 모든 장면들을 글로, 이미지로, 공간으로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국내와 해외에 산재된 한국 영상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그 중 영상도서관은 국내 최대 수준의 풍부한 영상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비디오 열람석, 멀티미디어석, 문헌 열람석, 세미나실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곳의 방문객들은 영화의 모든 장면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오래된 영상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기에 이곳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장면으로 잇는 영상도서관에 방문하여 새로운 장면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영상도서관은 회원제와 예약제로 운영되어진다.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온라인 예약을 통해 티켓을 수령한 후 입장할 수 있다. 10시부터 13시까지 1회차, 13시부터 16시까지 2회차, 16시부터 19시까지 3회차로 이루어져 3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을 두고 이용할 수 있다. 정기 휴관일인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입장 가능하다.
: 비디오 열람석
영상도서관에 소장된 비디오 자료를 4K의 모니터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1인석, 2인석, 최대 8인까지 수용 가능한 다인감상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공간은 방문 전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한 후 예약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영화관이라기엔 다소 소박하지만, 학창시절 도서관 구석에서 친구들과 모여 영화를 감상하던 추억이 떠올라 어쩐지 정겹게 느껴진다.
: 멀티미디어석
앞서 소개한 비디오 열람석과 비슷해보이는 구조이지만 비디오뿐만 아니라 영화의 포스터, 스틸컷, 시나리오 디지털 원문까지 감상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 5석,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영화 관련 자료들의 디지털 원문을 열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및 국회 PC 1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 문헌 열람석
흔히 도서관이라고 하면 수많은 책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상’도서관은 ‘영상’을 어떻게 도서관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문헌 열람석을 방문하면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국내, 국외에서 발간된 영화 관련 서적과 논문뿐만이 아니라 영화의 시나리오 출판본도 방문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영화 내용을 소개하는 책과 더불어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필요한 조명, 음향, 복장, 메이크업에 대한 책도 구비되어 있다.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글로 담아내어 진열한 이 공간이야말로 ‘영상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 열람석의 가장 안쪽에는 정기간행물 코너가 위치한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주제로 다루는 각종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어,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영화잡지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회의공간인 ‘세미나실’도 영상도서관에서 이용 가능하다. 온라인 예약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른 공간들과 다르게 세미나실은 오로지 전화예약으로만 이용 가능하며, 최소 3인 이상에서 최대 8인까지 수용할 수 있다. 테이블, 의자, 블루레이 플레이어, 빔 프로젝터, 화이트보드 등 회의를 진행할 때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이곳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 꿈을 나누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 한국영화박물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과거의 순간을 필름에 담는다는 점에서 영상은 특별하다. 과거의 산물들을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끌고 나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을 포착해 대상의 변주를 기록하는 힘은 결국 영상의 본질일 것이다.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그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로 나뉘어 관람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은 관객들에게 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한국영화박물관의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10시부터 19시까지이다. 이용방법은 사전예약 또는 현장 접수로 진행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단체로 전시를 관람할 경우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금 우리 좀비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2023년 6월 24일까지 진행되는 기획전시로, K-좀비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물들은 K-좀비 콘텐츠의 의미와 성과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지금 우리 좀비는: 21세기 K-좀비 연대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좀비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 12세 이상부터 관람 가능하며, 만 12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시 입장 가능하다.
영화 <28일후>(2002)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확산된 좀비 열풍은 유독 한국에서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부산행>(2016)을 기점으로 좀비 콘텐츠들이 대거 등장했고 드라마<킹덤>(2019)가 방영되는 등 이제는 당당히 K콘텐츠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좀비 콘텐츠가 현대 대중문화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좀비라는 콘텐츠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장면’속에 담아내는 특별한 힘이 있지는 않았을까.
전시장의 다른 한 구석에는 영화의 탄생 그리고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가 시대별로 전시되어있다. 과거의 한 순간을 포착하기만 했던 지난 시대의 산물들은, 이제 박물관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찬찬히 전시물을 둘러보다 좋아하는 영화나 아는 영화가 눈에 들어오면 무척이나 반갑기도 하다. 초창기 한국영화부터 시작해 영화사를 대표하는 작품이나 당대 대중 의식을 반영한 한국영화가 전시되어 있는 <한국영화 100선> 콘텐츠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14개의 섹션은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보고 느끼기에 도움을 준다.
: 종이잡지클럽
영상자료원이 흥미로웠다면 다음 행선지로 ‘종이잡지클럽 (Paperclip Club)’에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독립서점이다. 영상자료원에서 홍대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합정역 근처 작은 골목에서 ‘종이잡지클럽’을 마주할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기분 좋은 책 내음으로 가득한 이곳은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독보적인 책과 잡지들을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직접 선별한 책들을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또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어 예술과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장소일 것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여러 잡지가 장르별로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내부 인테리어는 무채색이지만 어딘가 아늑한 인상을 풍긴다. 서점 이용 전, 일일 이용권 등록이 필요하다. 카운터에 계신 사장님께 말씀드리면 시간 제한 없이 하루동안 서점을 이용할 수 있다. 일일 이용권의 가격은 5000원이다.
영상과 관련된 잡지는 카운터 우측 선반 Film & Cinema 코너에 정리되어 있다.
여러 잡지 중 ‘씨네 21’과 ‘Archive Prism’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씨네 21'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유명한 잡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리즈이다. 매달 한 호씩 발간되고 있으며 영화뿐만 아니라 TV프로그램,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폭 넓게 다루고 있다.
영화는 하나의 영상에 수많은 장면과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메세지는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된다. ‘씨네 21’은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기관지, ‘Archive Prism’은 매 호 하나의 주제 아래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와 기록을 소개한다. 영화가 모여 문화가 되듯, 한권 한권 모인 ‘아카이브 프리즘’이 하나의 ‘필름 아카이브’를 만들어낸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지닌 프리즘처럼, 영화를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소개하며 영화가 가진 다채로운 색감을 전달한다.
사진은 2022년 10월호로 발행된 아카이브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 포스터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포스터의 구성과 의미, 포스터에 사용된 타이포그래피 하나까지 자세히 소개한다.
풍성한 자료와 해설은 영화와 포스터의 이해에 깊이를 더해준다.
영상자료원의 기록이 궁금하거나, 다양한 잡지를 아늑한 공간에서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이곳을 추천한다.
: 순간의 장면을 필름과 커피잔에 담고 싶다면, cafè Day For Record
종이잡지클럽에서 3분가량 걸어가다 보면 독특한 카페 하나가 나타난다. ‘DAY FOR RECORD’.
2층으로 올라가 카페에 들어가면 감각적인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 향이 귀와 코를 반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데이포레코드만의 콘셉트를 잘 녹여낸 엔틱한 인테리어이다.
검은색 쉬폰 커튼과 청록색의 커튼이 이중으로 드리워진 공간에는 고풍스러운 가구들을 배치해 고급진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 반대쪽 공간에서는 필름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빔 프로젝터와 소파, 향초가 놓여있어 방문객들이 안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끔 조성되어 있다.
더불어, 카페 곳곳의 위치한 필름들을 이용한 인테리어와 소품들은 다른 카페들과는 구분되는 데이포레코드만의 콘셉트를 착실히 나타낸다. 커피를 주문한 후 카페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이다.
데이포레코드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비단 필름뿐만이 아니다. 시그니처 메뉴인 융드립 아메리카노는 그 특유의 향과 맛이 매력적이다. 진하지만 쓰지 않아 커피의 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데이포레코드만의 커피는 방문했다면 꼭 먹어봐야 할 메뉴 중 하나다.
여유로이 커피를 마시며 영사되고 있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데이포레코드가 더 궁금해진 나머지, 커피를 마시며 데이포레코드의 사장님과 짤막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데이포레코드는 다른 카페와 어떤 점이 다른지?
데이포레코드에서는 필름 관련 용품을 구경하고 커피를 즐길 수도 있지만, 필름 현상과 더불어 카메라 렌탈, 필름 판매, 디지털 현상 모두 가능한 장소이다. 주로 영화를 찍을 때 쓰는 영화용 필름을 벌크 형식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거나, 필름 무비를 디지털화하여 현상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필름 영상을 현상하는 것, 이 자체로도 굉장히 생소하고 독특하다.
맞다. 필름 영상은 레트로한 느낌을 가진 영상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특히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미국의 뉴욕 등에는 이런 필름현상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데이포레코드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카운터에 있는 카메라들도 실제로 작동되는 카메라들인지?
카페 운영뿐 아니라 카메라 렌탈도 동시에 하고 있기에 카운터에 있는 카메라들도 실제로 작동되는 필름 카메라들이다.
이러한 독특한 카페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영상 감독으로도 일하고 있는데, 카메라를 렌탈하고 반납할 때 반납만 하고 바로 되돌아가는 분들의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영상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장비를 렌탈해서 출사 나가기 전 잠시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또 손님들이 장비를 반납하고 나서나 필름을 맡기러 오실 때도 커피 한잔하며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게 된 카페다. 또한 전문적으로 영상 일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필름영상카메라를 접해보고 싶은 일반인 모두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 가게에 있는 카메라들 중 하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필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소중한 장면들을 특별하게 담아보고 싶다면, 데이포레코드에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DayforRecord Instagram @dayforrecord
: 씨네마포
한편 영화 수집가 사장님의 취향이 섬세히 묻어있는 영화상영 카페 ‘씨네마포’도 방문하였다. 상수역 1번 출구로 나와 빈티지한 영화 포스터들이 반기는 갈색 벽돌의 건물을 찾으면 그곳이 바로 씨네마포이다.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반지하였던 곳을 작은 영화관으로 변화시켰다.
씨네마포 내부에 들어서면 빼곡이 걸려있는 포스터와 다양한 굿즈들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이곳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해주는 카페 그 이상이다. 실제로 1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씨네마포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굿즈 판매, 이벤트, 영화 홍보 등의 활동도 진행 중 이다. 단종되어 찾기 힘들었던 오래된 영화의 포스터부터 한정판 굿즈까지. 영화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발걸음을 돌리기 어려운 공간이 있을까.
커피를 비롯하여 맥주 에이드 등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고 있으며 영화를 볼 때 빼먹을 수 없는 즉석 팝콘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주문을 마치면 사장님께서 영화 티켓과 함께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신다. 가게에서 상영 중인 영화가 없다면 직접 영화를 골라서 즐길 수 있다. 오래된 영화, 독립 영화등 개봉일과 관계없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씨네마포가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조용히 영화를 보다 보면 손님들의 오고가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그중에는 씨네마포를 자주 찾는 단골도, 우연히도 상영 중인 영화가 취향에 맞아 그대로 자리를 잡게 된 손님도 있다. 가만히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같은 취향의 손님들만 남아 함께 영화를 즐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쁜 일상 속 새로운 공간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며,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것. 이보다 더 완전에 가까운 ‘쉼’이 있을까. 영상 속의 장면을 찾아 떠나는 여정 그 끝에서. 발걸음을 멈춰 힘껏 장면에 휩쓸려보기를 추천한다.
editor. 김영서, 김용준, 안소연, 이루아, 이윤서, 한다현
Intro
우리 마음에도 렌즈가 있고 스크린이 존재한다. 형형색색의 감정들이 렌즈를 통해 마음의 상을 만든다.
마음 렌즈에 상처가 나면 외부 세계는 왜곡되어 기억되는데, 이때 무언가를 시청하면 마음의 균열을 없앨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저편에 있던 기억이 활성화되거나 모종의 영감이 교차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상이라는 매체는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자세히 알지 못해도 그냥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스크린의 심연 속에서 내재된 감성을 끌어내고 일종의 해방을 경험하는 것이다.
영상 시청을 위해 가만히 있는 시간을 들여야 하듯, 이번 visit to에서 소개하는 공간들은 사람들에게 진정과 여유를 선물한다. 흩어진 장면들을 그러모아 자신만의 알맹이를 돌보며, 고요하고도 깊은 기쁨과 만나길 바란다.
w.이루아
무수한 장면들이 저장되어 있는 공간, 영상자료원
: 영상 도서관
‘장면’이란, '겉으로 드러난 광경' 또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광경'이라는 뜻으로,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는 신(scene)이 있다. 영화는 개개의 장면들이 모여 이루어진 영상매체이기에 장면은 영화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빠짐없이 온전히 모여 있어야만 하나의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상암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3층에 있는 영상도서관은 영화 속 모든 장면들을 글로, 이미지로, 공간으로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국내와 해외에 산재된 한국 영상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그 중 영상도서관은 국내 최대 수준의 풍부한 영상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비디오 열람석, 멀티미디어석, 문헌 열람석, 세미나실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곳의 방문객들은 영화의 모든 장면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오래된 영상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기에 이곳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장면으로 잇는 영상도서관에 방문하여 새로운 장면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영상도서관은 회원제와 예약제로 운영되어진다.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온라인 예약을 통해 티켓을 수령한 후 입장할 수 있다. 10시부터 13시까지 1회차, 13시부터 16시까지 2회차, 16시부터 19시까지 3회차로 이루어져 3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을 두고 이용할 수 있다. 정기 휴관일인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입장 가능하다.
: 비디오 열람석
영상도서관에 소장된 비디오 자료를 4K의 모니터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1인석, 2인석, 최대 8인까지 수용 가능한 다인감상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공간은 방문 전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한 후 예약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영화관이라기엔 다소 소박하지만, 학창시절 도서관 구석에서 친구들과 모여 영화를 감상하던 추억이 떠올라 어쩐지 정겹게 느껴진다.
: 멀티미디어석
앞서 소개한 비디오 열람석과 비슷해보이는 구조이지만 비디오뿐만 아니라 영화의 포스터, 스틸컷, 시나리오 디지털 원문까지 감상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 5석,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영화 관련 자료들의 디지털 원문을 열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및 국회 PC 1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 문헌 열람석
흔히 도서관이라고 하면 수많은 책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상’도서관은 ‘영상’을 어떻게 도서관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문헌 열람석을 방문하면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국내, 국외에서 발간된 영화 관련 서적과 논문뿐만이 아니라 영화의 시나리오 출판본도 방문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영화 내용을 소개하는 책과 더불어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필요한 조명, 음향, 복장, 메이크업에 대한 책도 구비되어 있다.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글로 담아내어 진열한 이 공간이야말로 ‘영상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 열람석의 가장 안쪽에는 정기간행물 코너가 위치한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주제로 다루는 각종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어,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영화잡지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회의공간인 ‘세미나실’도 영상도서관에서 이용 가능하다. 온라인 예약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른 공간들과 다르게 세미나실은 오로지 전화예약으로만 이용 가능하며, 최소 3인 이상에서 최대 8인까지 수용할 수 있다. 테이블, 의자, 블루레이 플레이어, 빔 프로젝터, 화이트보드 등 회의를 진행할 때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이곳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 꿈을 나누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 한국영화박물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과거의 순간을 필름에 담는다는 점에서 영상은 특별하다. 과거의 산물들을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끌고 나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을 포착해 대상의 변주를 기록하는 힘은 결국 영상의 본질일 것이다.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그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로 나뉘어 관람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은 관객들에게 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한국영화박물관의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10시부터 19시까지이다. 이용방법은 사전예약 또는 현장 접수로 진행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단체로 전시를 관람할 경우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금 우리 좀비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2023년 6월 24일까지 진행되는 기획전시로, K-좀비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물들은 K-좀비 콘텐츠의 의미와 성과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지금 우리 좀비는: 21세기 K-좀비 연대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좀비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 12세 이상부터 관람 가능하며, 만 12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시 입장 가능하다.
영화 <28일후>(2002)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확산된 좀비 열풍은 유독 한국에서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부산행>(2016)을 기점으로 좀비 콘텐츠들이 대거 등장했고 드라마<킹덤>(2019)가 방영되는 등 이제는 당당히 K콘텐츠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좀비 콘텐츠가 현대 대중문화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좀비라는 콘텐츠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장면’속에 담아내는 특별한 힘이 있지는 않았을까.
전시장의 다른 한 구석에는 영화의 탄생 그리고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가 시대별로 전시되어있다. 과거의 한 순간을 포착하기만 했던 지난 시대의 산물들은, 이제 박물관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찬찬히 전시물을 둘러보다 좋아하는 영화나 아는 영화가 눈에 들어오면 무척이나 반갑기도 하다. 초창기 한국영화부터 시작해 영화사를 대표하는 작품이나 당대 대중 의식을 반영한 한국영화가 전시되어 있는 <한국영화 100선> 콘텐츠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14개의 섹션은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보고 느끼기에 도움을 준다.
: 종이잡지클럽
영상자료원이 흥미로웠다면 다음 행선지로 ‘종이잡지클럽 (Paperclip Club)’에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독립서점이다. 영상자료원에서 홍대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합정역 근처 작은 골목에서 ‘종이잡지클럽’을 마주할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기분 좋은 책 내음으로 가득한 이곳은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독보적인 책과 잡지들을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직접 선별한 책들을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또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어 예술과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장소일 것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여러 잡지가 장르별로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내부 인테리어는 무채색이지만 어딘가 아늑한 인상을 풍긴다. 서점 이용 전, 일일 이용권 등록이 필요하다. 카운터에 계신 사장님께 말씀드리면 시간 제한 없이 하루동안 서점을 이용할 수 있다. 일일 이용권의 가격은 5000원이다.
영상과 관련된 잡지는 카운터 우측 선반 Film & Cinema 코너에 정리되어 있다.
여러 잡지 중 ‘씨네 21’과 ‘Archive Prism’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씨네 21'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유명한 잡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리즈이다. 매달 한 호씩 발간되고 있으며 영화뿐만 아니라 TV프로그램,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폭 넓게 다루고 있다.
영화는 하나의 영상에 수많은 장면과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메세지는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된다. ‘씨네 21’은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기관지, ‘Archive Prism’은 매 호 하나의 주제 아래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와 기록을 소개한다. 영화가 모여 문화가 되듯, 한권 한권 모인 ‘아카이브 프리즘’이 하나의 ‘필름 아카이브’를 만들어낸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지닌 프리즘처럼, 영화를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소개하며 영화가 가진 다채로운 색감을 전달한다.
사진은 2022년 10월호로 발행된 아카이브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 포스터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포스터의 구성과 의미, 포스터에 사용된 타이포그래피 하나까지 자세히 소개한다.
풍성한 자료와 해설은 영화와 포스터의 이해에 깊이를 더해준다.
영상자료원의 기록이 궁금하거나, 다양한 잡지를 아늑한 공간에서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이곳을 추천한다.
: 순간의 장면을 필름과 커피잔에 담고 싶다면, cafè Day For Record
종이잡지클럽에서 3분가량 걸어가다 보면 독특한 카페 하나가 나타난다. ‘DAY FOR RECORD’.
2층으로 올라가 카페에 들어가면 감각적인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 향이 귀와 코를 반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데이포레코드만의 콘셉트를 잘 녹여낸 엔틱한 인테리어이다.
검은색 쉬폰 커튼과 청록색의 커튼이 이중으로 드리워진 공간에는 고풍스러운 가구들을 배치해 고급진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 반대쪽 공간에서는 필름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빔 프로젝터와 소파, 향초가 놓여있어 방문객들이 안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끔 조성되어 있다.
더불어, 카페 곳곳의 위치한 필름들을 이용한 인테리어와 소품들은 다른 카페들과는 구분되는 데이포레코드만의 콘셉트를 착실히 나타낸다. 커피를 주문한 후 카페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이다.
데이포레코드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비단 필름뿐만이 아니다. 시그니처 메뉴인 융드립 아메리카노는 그 특유의 향과 맛이 매력적이다. 진하지만 쓰지 않아 커피의 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데이포레코드만의 커피는 방문했다면 꼭 먹어봐야 할 메뉴 중 하나다.
여유로이 커피를 마시며 영사되고 있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데이포레코드가 더 궁금해진 나머지, 커피를 마시며 데이포레코드의 사장님과 짤막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데이포레코드는 다른 카페와 어떤 점이 다른지?
데이포레코드에서는 필름 관련 용품을 구경하고 커피를 즐길 수도 있지만, 필름 현상과 더불어 카메라 렌탈, 필름 판매, 디지털 현상 모두 가능한 장소이다. 주로 영화를 찍을 때 쓰는 영화용 필름을 벌크 형식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거나, 필름 무비를 디지털화하여 현상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필름 영상을 현상하는 것, 이 자체로도 굉장히 생소하고 독특하다.
맞다. 필름 영상은 레트로한 느낌을 가진 영상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특히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미국의 뉴욕 등에는 이런 필름현상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데이포레코드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카운터에 있는 카메라들도 실제로 작동되는 카메라들인지?
카페 운영뿐 아니라 카메라 렌탈도 동시에 하고 있기에 카운터에 있는 카메라들도 실제로 작동되는 필름 카메라들이다.
이러한 독특한 카페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영상 감독으로도 일하고 있는데, 카메라를 렌탈하고 반납할 때 반납만 하고 바로 되돌아가는 분들의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영상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장비를 렌탈해서 출사 나가기 전 잠시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또 손님들이 장비를 반납하고 나서나 필름을 맡기러 오실 때도 커피 한잔하며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게 된 카페다. 또한 전문적으로 영상 일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필름영상카메라를 접해보고 싶은 일반인 모두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 가게에 있는 카메라들 중 하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필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소중한 장면들을 특별하게 담아보고 싶다면, 데이포레코드에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DayforRecord Instagram @dayforrecord
: 씨네마포
한편 영화 수집가 사장님의 취향이 섬세히 묻어있는 영화상영 카페 ‘씨네마포’도 방문하였다. 상수역 1번 출구로 나와 빈티지한 영화 포스터들이 반기는 갈색 벽돌의 건물을 찾으면 그곳이 바로 씨네마포이다.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반지하였던 곳을 작은 영화관으로 변화시켰다.
씨네마포 내부에 들어서면 빼곡이 걸려있는 포스터와 다양한 굿즈들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이곳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해주는 카페 그 이상이다. 실제로 1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씨네마포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굿즈 판매, 이벤트, 영화 홍보 등의 활동도 진행 중 이다. 단종되어 찾기 힘들었던 오래된 영화의 포스터부터 한정판 굿즈까지. 영화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발걸음을 돌리기 어려운 공간이 있을까.
커피를 비롯하여 맥주 에이드 등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고 있으며 영화를 볼 때 빼먹을 수 없는 즉석 팝콘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주문을 마치면 사장님께서 영화 티켓과 함께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신다. 가게에서 상영 중인 영화가 없다면 직접 영화를 골라서 즐길 수 있다. 오래된 영화, 독립 영화등 개봉일과 관계없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씨네마포가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조용히 영화를 보다 보면 손님들의 오고가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그중에는 씨네마포를 자주 찾는 단골도, 우연히도 상영 중인 영화가 취향에 맞아 그대로 자리를 잡게 된 손님도 있다. 가만히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같은 취향의 손님들만 남아 함께 영화를 즐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쁜 일상 속 새로운 공간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며,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것. 이보다 더 완전에 가까운 ‘쉼’이 있을까. 영상 속의 장면을 찾아 떠나는 여정 그 끝에서. 발걸음을 멈춰 힘껏 장면에 휩쓸려보기를 추천한다.
editor. 김영서, 김용준, 안소연, 이루아, 이윤서, 한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