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7 혼합




INTRO


때로는 하나에 집중하는 것보다 다양한 것이 모였을 때 더욱 빛나게 된다.

이렇게 모인 새로움은 우리에게 스쳐 지나갈 뻔한 영감이 솟아날 자리를 마련해 준다.

개성 넘치고 화려한 것들이 모여 또다른 매력이 넘치는 곳, 이태원이다.





세상을 엿보다, 포스트 포에틱스

한남동의 골목길을 따라, 마치 까눌레 같은 다채로운 의자들과 화분에 이끌려 내려간 계단. 감각적인 사진과 타이포 그래피가 매력적인 책들의 진열이 눈에 띈다. 포스트 포에틱스는 세계 각국의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양질의 출판물을 국내에 소개하고 국내외 문화 예술계의 활발한 교류의 장을 도모한다. 예술과의 세계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마자 종이 냄새가 가득했던 포스트 포에틱스. 코가 저릿할 정도로 책 냄새가 나는 이곳은 화려한 아트북이란 아트북은 죄다 모여 있는 곳이다.



포스트 포에틱스는 2006년, 서울에 설립되었다. 전 세계 200여 곳의 크고 작은 출판사와 거래하며, 미술, 건축, 디자인, 사진, 패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동명의 서점을 온,오프라인에서 운영하는 동시에, 서점, 편집 매장과 같은 상업 공간과 도서관, 기업 및 기관의 자료실, 개인 서재 등 여러 곳에 책을 제안하고 공급하고 있다. (출처: 포스트 포에틱스 info)

포스트 포에틱스는 책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다. 디자인이 콘텐츠를 침범하지 않으며, 소장 가치가 있어야 한다. 간결한 디자인과 일관된 감성으로 만들어진 책을 선호하는 포스트 포에틱스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책들로 가득하다. 예측할 수 없는 책의 페이지 구성과 레이아웃은 우리의 눈길을 잡아 둔다.



이곳은 여러 분야, 다양한 레이아웃의 아트북, 컬렉션북이 있는 공간이었다. 아스라이 들어오는 햇살에 따라 아트북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책의 디자인을 모아놓은 컬렉션북부터 사진, 음식, 영화, 제품 디자인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은 느낌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만큼, 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 덕분에 에코백이나 티셔츠 같은 굿즈들도 전시 되어 있다. 작은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는데 포스트 포에틱스만의 책을 읽고 있는 유령 모양 뱃지가 인상 깊었다.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 어떤 책을 집어도 인사이트가 가득했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마음속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꼭 방문해보면 좋을 곳이다.

책뿐만 아니라 문구와 음반 등 디자인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취급한 공간. 호기심에 이끌려 발걸음을 잇다보면 어느새 예술에 매료 되어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해외 서적을 접하고 싶다면, 주저없이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영업시간 주중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4길 19

인스타그램 @postpoetics








색다른 바삭함, 보닐라 츄러스


이곳은 페인트통 감자칩 브랜드로 유명한 ‘보닐라’에서 아시아 최초로 오픈한 츄러스 매장이다. 이 브랜드의 감자칩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가오픈기간부터 ‘핫플’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긴 웨이팅 시간으로 더 유명세를 얻었다.



긴 웨이팅 끝에 들어간 매장 한 켠에는 츄러스를 만드는 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부는 모두 스탠딩 테이블로, 앉아서 즐기고 싶다면 외부 테이블로 이동해야 한다. 메탈 소재가 주는 깔끔한 느낌과 차가운듯한 분위기가 바다를 표현한 브랜드 로고와 잘 어우러진다.



가장 인기 메뉴는 초코 츄러스로, 츄러스 5조각과 함께 초콜릿 소스가 제공된다. 취향에 따라 휘핑 크림도 추가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감자칩, 트러플 츄로스 등의 메뉴와 간단한 음료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보닐라 츄러스는 스페인의 전통 방식을 사용해 만들며, 모든 원재료를 스페인에서 공급받아 사용한다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다만 스페인 현지의 츄러스처럼 담백한 느낌은 아니고 한국에서 우리가 흔히 접한 시나몬 설탕의 맛이 느껴지는 달달한 간식이다. 츄러스 특유의 바삭함과 현지에서 먹는 방식인 크게 달지 않은 녹인 초콜릿에 찍어 먹는 것이 기억 한 켠, 스페인에서의 추억을 꺼내오기에는 충분했다.


영업시간 휴일 없이 정오에 오픈, 라스트 오더는 오후 8시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4가길

인스타그램 @bonilla.churros.korea





사라지지 않고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 PACE 갤러리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대로변을 쭉 걷다 보면 나무그늘 아래 검은색 벽과 유리로 이루어진 세련된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칠 뻔 했지만, 벽면에 쓰여 있는 ‘PACE’라는 직사각형의 로고를 확인하고서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인 ‘페이스 갤러리’라는 것을 알 았다.


 ‘페이스’는 세계적인 미술 갤러리로, 추상 표현주의와 빛과 공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아니 글림처(Arne Glimcher)가 1960년도에 설립한 이후로 현 마크 글림처(Marc Glimcher) 회장이 이끄는 페이스는 지속적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그들의 독창적인 작업을 전시, 프로젝트, 공공 설치, 기관 간 협력, 큐레이토리얼 연구와 500여 권에 이르는 출판물 등 다양한 글로벌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페이스는 뉴욕 첼시 25가에 위치한 두 개의 갤러리를 포함해 런던, 홍통, 서울, 제네바, 이스트 헴튼, 팜 비치, 로스엔젤레스까지 전 세계 8곳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페이스 갤러리는 사울 스타인버그와 류젠화의 전시뿐만이 아니라 오설록 티 하우스가 함께 공존하여 동서양의 미가 ‘혼합’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혼합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한데 뒤섞이는 것인데, 화학에서는 이를 혼합물의 구성성분이 화학적 결합 없이 각자의 특징을 잃지 않고 모두 드러나는 것으로 정의한다. 페이스 갤러리에 방문하여 색다른 두 종류의 문화가 각자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매력으로 탄생한 공간을 느껴보기 바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 1층 공간을 가득 메우는 낙하하는 도자 조각들이다. 류젠화의 2018년 설치작 <A Unified Core>는 약 500개의 눈물방울 모양의 백자가 쏟아지듯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형태이다. 거대한 작품 주변을 천천히 거닐면서 쏟아지는 조각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한 정적과 함께 사색의 순간이 찾아온다. 작품 옆 벽에 전시되어 있는 또 다른 작품 <Lines>는 나선 형의 리본 조각이 마치 낙서처럼 불연속적인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단순한 형태는 이전까지 중시되었던 ‘작품의 의미있는 주제’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를 탐구하는 류젠화 작가의 작품에 대한 방향성이 담겨 있다. 이는 2층에 전시된 작품 <Blank Space>와도 연관된다. 빈 캔버스가 전시되어 있어 처음에는 당황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형태’와 ‘추상성’에 관한 류젠화의 철학적 접근 방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품에 대해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고 캔버스의 색, 형태, 질감을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더 이상 텅 빈 전시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2층에 함께 전시되어 있는 <The Shape of Trace>는 붉은 색의 도자 조각들이 아무런 연관성 없이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 속 인류 문화 발전의 다양한 양상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또다른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페이스 갤러리에 전시된 류젠화의 작품들은 모두 단순하고 불완전한 형태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경로와 역사의 기나긴 궤적을 연상시키는, 축적과 일시성, 형태와 추상성을 표현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자 사울 스타인버그의 개인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개최된 이 전시는 혼란스럽던 전후 시기를 그린 스타인버그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은 그림에 한정되지 않고 조각, 사진, 벽화, 콜라주 작업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을 자유롭게 오간다.


작가는 루마니아 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 28살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때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작가는 이민자이자 관찰자의 시각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예술에 대한 모더니스트로서의 태도, 뒤틀린 유머, 호기심을 드로잉, 수채화, 조각 등 장르 불문의 다양한 작품에 담아 사울 스트안버그의 개성을 페이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으로 전시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테이블 조각을 전시한 것으로, 목재 테이블 위에 다양한 재료를 콜라주한 <Summer Table>이다. 작가는 붓이나 드로잉북과 같이 실제 작업대에 놓여있을 법한 평범한 사물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눈속임을 통해 착시를 일으키는 ‘트롱프뢰유(trompel’oeil)’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3차원의 오브제를 2차원으로 보이게 하는 그의 작품에서 그의 유쾌함과 장난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다소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예술에 대한 통념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사울 스타인버그의 가치관이 담긴 영상도 감상할 수 있었다. 작품들을 모두 감상하고 영상을 보면 ‘아이디어가 넘치는 예술가인 스타인버그’라는 영상 속 대사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유쾌한 아이디어가 담긴 그의 작품들은 3층의 전시장을 유쾌한 분위기로 부드럽게 풀어내고 있다.

류젠화의 개인전은 2023년 3월 31일부터 2023년 5월 20일까지 진행한다. 만약 시기를 놓쳐서 위의 전시를 보지 못한 관람객들은 실망하며 발걸음을 돌리지 말고 1층 테라스에 위치한 ‘오설록 티 하우스’에 방문하기 바란다.



이 카페는 제주의 자연을 담은 티 전문 브랜드 ‘오설록’에서 런칭한 카페이다. 녹차로 유명한 이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꽤 유명해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제주에 본점을 두고 있는 오설록은 전국 곳곳에 체인점이 있지만 한남에 있는 오설록은 페이스 갤러리와 협업하여 ‘차와 예술’이라는 혼합된 주제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분위기의 티 하우스이다.



입구부터 다양한 차가 우리를 반기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성스레 빚은 듯한 자기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차와 음료를 팔며 갤러리에 다녀가는 손님들의 휴식 공간인 카페처럼 보이지만, 티 칵테일을 파는 바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블랙톤의 인테리어가 차분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힙한 분위기의 카페로, 감각적인 갤러리로, 분위기 있는 바로 공간을 변신시킨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시그니처 음료인 ‘시그니처 브루잉 티 커피’이다. 화사한 과일 향미의 티와 블렌딩 커피가 섞여 색다른 커피의 맛을 선사한다. 기계로 커피를 내리는 머신 커피가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내려지는 드립 커피로, 과일 향의 차를 함께 블렌딩 하기 때문에 음료가 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커피와 함께 커피에 블렌딩 된 차가 따로 나오는데, 차를 먼저 맛보고 블렌딩 커피를 맛보면 커피에 녹아든 차의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상큼한 과일과 진한 커피의 조합은 이색적이면서도 서로의 향이 잘 어우러지는 맛이다. 또한 커피가 나오는 데도, 커피를 음미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 여유를 가지고 이 공간에서 새로운 맛을 음미하기를 바란다. 차를 주문하면 모래시계와 함께 나오는데, 이 모래시계의 모래가 모두 떨어진 때가 차가 가장 향긋하게 우러난 시간이라고 한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영업시간 월-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67 페이스갤러리

인스타그램 @pacegallery









Editor. 김영서, 김은지, 이지인, 하인애, 한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