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기록하는 습관

‘기록’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텍스트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으므로 하지 않음을 택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제한을 가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기록의 자유를 뒷받침한다. 어쩌면 글자로, 혹은 밑줄이나 도형으로 표시하며 남긴 기록에 어떤 의미가 있나? 


누군가는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몇 퍼센트는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고 어쩌고. 그러나 상투적인 사실을 차치하고서도 기록하는 습관은 다양한 형태로 실현된다. 이를테면 일기 같은 것. 하루를 마무리하는 개념의 일기가 있다면, 나는 하루를 틈틈이 기록하는 개념의 일기를 쓴다. 



오전 8:15 졸려 죽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출근철에서 누가 가방 뒤로 메고 지하철을 타 

오전 8:53 지하철에서 공부하려 했는데 조느라 실패함… 이럴 거면 어제 과제는 왜 미리 했지 

오후 3:32 공부하기싫다집가고싶다 

오후 9:40 저녁 메뉴 치킨이길래 맥주 한 캔 ♡ 



나열하고 보면 차마 보내지 못한 메시지 같기도 한 문장들은 그만큼 순간을 솔직하게 보여 준다. 위에 첨부한 문장들조차 손질을 거쳤다고 하면, 당시의 기록은 얼마나 또렷할지 솔직함의 정도에 맡겨진다. 다만 다듬지 않은 감정일수록 추후 돌이킬 때 순간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러니 이건 성공한 사람들이 설파하는 기록하는 습관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행위를 구태여 소개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성공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유익함과 달리 ‘쓸모없음’으로 치부한 것이 지닌 가능성의 존재를 전파하고자.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지는 순간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을 꺼내어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처럼 당장은 필요 없는 어떤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전제할 때, 이 사소한 습관은 비로소 가치를 띤다. 


일과 중 감정이 짙어질 때마다 핸드폰 속 일기장을 친구 삼아 짤막하게 남겨 둔 기록은 습관이 된다면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훌륭한 창구가 되어 준다. 일종의 1인용 대나무 숲. 힘들다고 말하면 힘들어지는 것 같지만, 말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지는 것처럼. 어떻게든 언어로 치환하는 건 말하지 않는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키우는 행위다. 이렇듯 ‘나와의 채팅’ 같은 기능을 재해석해 언제든 어떤 순간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일기장을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 기록은 각자 정의하기 나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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