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성인의 육체에 태아의 뇌를 이식한다는 끔찍한 상상의 피조물. 영화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 벨라 벡스터는 스스로를 신(God)이라 칭하는 천재 의사 갓윈(Godwin)의 손에서 부활한다. 임신한 채 자살 기도를 한 여자의 몸속에서 태아의 뇌를 적출해 산모의 몸과 태아의 뇌를 결합시킨 것이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은 앞의 설명만 듣고 "장르가 고어물인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여운 것들>은 벨라 벡스터라는 사람의 삶 속 사랑을 다룰 뿐이다. '사람'에서 모음을 빼면 '삶'이 되고,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된다. 세 단어의 필연적 유사성이 하나의 법칙이 되듯, 신체를 개조당한 사람의 삶에도 사랑이 깃들기 마련이다.
작중 대다수의 남자 인물들이 아름다운 여성 벨라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형태는 사람의 형태만큼 각양각색이기에, 벨라를 사랑하는 남성들 또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사랑을 보여준다. 갓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상천외한 인체 실험을 일삼았고, 그 결과 갓윈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저주받은 피조물 같은 흉터투성이의 얼굴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신체기관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잘못된 인체 개조로 인해 성욕조차 느끼지 못한 갓윈은 벨라를 부성로 키우려 했다. 성숙한 외양과 달리 갓난아기의 두뇌를 가진 자신의 피조물에게 체계적인 보살핌과 교육을 제공했지만, 벨라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까 두려워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철저히 통제한다. 급기야 갓윈은 벨라에게 매혹된 조수 맥스에게 자신의 저택에서 함께 사는 조건으로 벨라와의 결혼을 제안한다.
결혼 계약서 작성을 위해 고용된 바람둥이 한량 변호사 덩컨 웨더번 또한 벨라에게 매혹된다. 그는 벨라와 해외로 도주하고, 쾌락과 사치로 가득 찬 생활을 함께한다. 성적 욕망에 눈뜬 벨라는 처음에는 던컨과의 유희를 즐기지만,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던컨과의 육체적 관계보다는 학문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 반면 던컨은 벨라에게 완전히 매혹돼 그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갓윈처럼 그녀를 속박하려 든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에 대해 알게 된 벨라는 던컨이 도박으로 벌어들인 거금을 모두 기아들에게 적선한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던컨은 파리에 벨라를 버린다. 벨라는 후회하며 매달리는 던컨을 무시한 채 유흥업소에서 매춘을 하며 사회주의자 친구를 만나고, 번 돈으로 대학에 다니며 견문을 넓힌다.
그러던 중 벨라는 갓윈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으로 돌아간다. 런던으로 돌아가 자신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된 벨라는 맥스와 결혼하기로 결정하지만, 결혼 직전 나타난 자살하기 전의 남편이 등장하자 그를 택하게 된다. 알고 보니 이전 삶의 남편은 하인들을 총으로 겁박하고, 부인의 성적 욕망을 단속하기 위해 그녀를 거세하려고 했던 파렴치한이었다. 결국 벨라는 남편을 제압하고 그의 신체에 염소의 뇌를 이식하는 잔인한 복수를 자행하고, 의사가 된 벨라와 맥스, 사회주의자 친구 세 명의 단란한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다양한 시각적 장치를 통해 벨라의 자아가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장 속 새처럼 일상을 통제당하는 벨라의 모습은 관객이 감옥의 열쇠 구멍을 들여다 보듯 흑백 화면에 굴절된 렌즈 각도를 통해 나타난다. 벨라가 던컨과 도망쳐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펼칠 때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색감의 스팀펑크스러운 세계가 묘사되고, 벨라가 점점 현실 감각을 가지게 될 수록 미장센도 현실적으로 변한다. 벨라가 저택에 살던 때에 관객은 벨라를 속박하는 주변 환경의 일부가 되어 벨라를 관음하는 시선을 취하게 되지만, 벨라가 자유를 획득한 이후 관객은 그녀의 시선을 통해 그녀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제목 '가여운 것들'은 자유로운 존재인 벨라를 복속하려는 모든 이들을 지칭한다. 벨라를 복속하려 했던 남성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갓윈은 암으로 사망하고, 던컨은 빈털터리로 전락하며, 벨라의 전 남편은 뇌가 염소의 것으로 대체되어버린다. 정복욕과 강압을 사랑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에 외롭고 가여운 삶을 전전하게 된다.
반면 벨라의 자아는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간다. 성적 탐닉의 수준을 넘어서 지식과 이성의 추구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충분조건이다. 자아를 온전히 사랑하여 실현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주체(자아)가 결여된 행위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결국 벨라는 자기애를 터득함으로써 창조주를 능가하는 피조물이 되었고, 이를 통해 프랑켄슈타인 서사는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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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왕수민
designer. 김진
장성한 성인의 육체에 태아의 뇌를 이식한다는 끔찍한 상상의 피조물. 영화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 벨라 벡스터는 스스로를 신(God)이라 칭하는 천재 의사 갓윈(Godwin)의 손에서 부활한다. 임신한 채 자살 기도를 한 여자의 몸속에서 태아의 뇌를 적출해 산모의 몸과 태아의 뇌를 결합시킨 것이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은 앞의 설명만 듣고 "장르가 고어물인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여운 것들>은 벨라 벡스터라는 사람의 삶 속 사랑을 다룰 뿐이다. '사람'에서 모음을 빼면 '삶'이 되고,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된다. 세 단어의 필연적 유사성이 하나의 법칙이 되듯, 신체를 개조당한 사람의 삶에도 사랑이 깃들기 마련이다.
작중 대다수의 남자 인물들이 아름다운 여성 벨라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형태는 사람의 형태만큼 각양각색이기에, 벨라를 사랑하는 남성들 또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사랑을 보여준다. 갓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상천외한 인체 실험을 일삼았고, 그 결과 갓윈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저주받은 피조물 같은 흉터투성이의 얼굴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신체기관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잘못된 인체 개조로 인해 성욕조차 느끼지 못한 갓윈은 벨라를 부성로 키우려 했다. 성숙한 외양과 달리 갓난아기의 두뇌를 가진 자신의 피조물에게 체계적인 보살핌과 교육을 제공했지만, 벨라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까 두려워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철저히 통제한다. 급기야 갓윈은 벨라에게 매혹된 조수 맥스에게 자신의 저택에서 함께 사는 조건으로 벨라와의 결혼을 제안한다.
결혼 계약서 작성을 위해 고용된 바람둥이 한량 변호사 덩컨 웨더번 또한 벨라에게 매혹된다. 그는 벨라와 해외로 도주하고, 쾌락과 사치로 가득 찬 생활을 함께한다. 성적 욕망에 눈뜬 벨라는 처음에는 던컨과의 유희를 즐기지만,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던컨과의 육체적 관계보다는 학문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 반면 던컨은 벨라에게 완전히 매혹돼 그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갓윈처럼 그녀를 속박하려 든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에 대해 알게 된 벨라는 던컨이 도박으로 벌어들인 거금을 모두 기아들에게 적선한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던컨은 파리에 벨라를 버린다. 벨라는 후회하며 매달리는 던컨을 무시한 채 유흥업소에서 매춘을 하며 사회주의자 친구를 만나고, 번 돈으로 대학에 다니며 견문을 넓힌다.
그러던 중 벨라는 갓윈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으로 돌아간다. 런던으로 돌아가 자신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된 벨라는 맥스와 결혼하기로 결정하지만, 결혼 직전 나타난 자살하기 전의 남편이 등장하자 그를 택하게 된다. 알고 보니 이전 삶의 남편은 하인들을 총으로 겁박하고, 부인의 성적 욕망을 단속하기 위해 그녀를 거세하려고 했던 파렴치한이었다. 결국 벨라는 남편을 제압하고 그의 신체에 염소의 뇌를 이식하는 잔인한 복수를 자행하고, 의사가 된 벨라와 맥스, 사회주의자 친구 세 명의 단란한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다양한 시각적 장치를 통해 벨라의 자아가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장 속 새처럼 일상을 통제당하는 벨라의 모습은 관객이 감옥의 열쇠 구멍을 들여다 보듯 흑백 화면에 굴절된 렌즈 각도를 통해 나타난다. 벨라가 던컨과 도망쳐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펼칠 때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색감의 스팀펑크스러운 세계가 묘사되고, 벨라가 점점 현실 감각을 가지게 될 수록 미장센도 현실적으로 변한다. 벨라가 저택에 살던 때에 관객은 벨라를 속박하는 주변 환경의 일부가 되어 벨라를 관음하는 시선을 취하게 되지만, 벨라가 자유를 획득한 이후 관객은 그녀의 시선을 통해 그녀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제목 '가여운 것들'은 자유로운 존재인 벨라를 복속하려는 모든 이들을 지칭한다. 벨라를 복속하려 했던 남성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갓윈은 암으로 사망하고, 던컨은 빈털터리로 전락하며, 벨라의 전 남편은 뇌가 염소의 것으로 대체되어버린다. 정복욕과 강압을 사랑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에 외롭고 가여운 삶을 전전하게 된다.
반면 벨라의 자아는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간다. 성적 탐닉의 수준을 넘어서 지식과 이성의 추구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충분조건이다. 자아를 온전히 사랑하여 실현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주체(자아)가 결여된 행위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결국 벨라는 자기애를 터득함으로써 창조주를 능가하는 피조물이 되었고, 이를 통해 프랑켄슈타인 서사는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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