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 인간의 만남을 떠올렸을 때 뒤따르는 감상은 낭만과 기이함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선행하는지 묻는다면 저마다 다를 것이다. ‘유령’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이함이 선행할까, 유령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낭만이 선행할까, 혹은 기이함과 낭만을 덮을 또 다른 감상이 선행할까.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모습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피를 흘리는 섬뜩한 모습을 연출한 공포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유령을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 등장시키는 것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유령 모티프를 다룬다.
출처: 교보문고, 『유령의 마음으로』
『유령의 마음으로』는 임선우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이자 첫 번째 작품으로 수록된 단편 「유령의 마음으로」의 제목부터 유령 모티프를 확인할 수 있다. 제목을 보면 실재하지 않는 유령에게 마음이 있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생긴다. 그 의문에 답할 유령은 주인공의 일상에 불쑥 나타난다.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던 일상의 미묘한 어긋남을 계기 삼아 시작된다. 동시에 ‘유령’이라 이름 붙여진 존재는 본인이 유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도 모르게 뭐야, 하고 소리쳤다. 죽었는데 어떻게 눈을 뜨지? 안 죽었으니까. 그것이 대답했다. 생김새뿐 아니라 목소리도 소름 끼칠 정도로 나와 똑같았다. 그럼 너는 누구야? 내가 묻자,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는 너야. 그러면서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서로 가까워질수록 추위가 점차 사라졌다. (10쪽)
‘나’는 빵집에서 근무한다. 빵집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주인공이 문득 “무언가가 몸 밖으로 쑤욱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과 함께 극심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을 유령의 출현 전조로 읽을 수 있다. 주인공과 유령의 첫 만남은 기묘하다. 창고에서 담요를 꺼내 온 주인공의 눈에 띈 건 카운터에 자신이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유령은 ‘나’와 같은 형체를 띠고 있다. 다만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다른 자신의 형체를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 여기며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멍하니 선 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 순간 눈을 뜬 유령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유령이 말한다. 안 죽었다고 말하며, ”나는 너야”라고 덧붙인다. 기이하게도 유령과 가까워지면서 극심했던 추위는 가신다. 이 유령을 단순한 ‘유령’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죽음이라는 계기가 뚜렷한 여타 유령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령의 마음으로」 속 유령은 ‘나’다.
악마도 유령도 아닌 것, 다만 ‘나’와 같으며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것. 한편 ‘나’는 꾸준히 그 존재를 유령이라고 서술한다.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자신에게만 보이는 자신과 같은 형체를 띤 그것을. 누구든 눈앞에 이런 유령이 나타난다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한참 동안 그 유령을 쫓아내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유령과 멀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추위를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유령과 함께여야 비로소 가라앉는 추위는 ‘나’와 유령이 지닌 밀접한 연관성을 의미한다. 이 소설의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아닌 “실제는 없는 것”의 뜻과 결부하여 ‘유령 나’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유령과의 관계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살펴보자. ‘나’의 애인 정수는 교통사고로 2년째 식물인간 상태다. 주인공은 매주 토요일 정수를 보러 병원에 간다. 2년 동안 반복되어 온 일상에 유령이 동행하게 되었을 때, 유령은 외면해 왔던 감정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유령은 정수를 보며 말한다. 네가 왜 ‘좋아했는지’ 알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정수를 왜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좋아했는지’라고 말한 유령의 감정이 자신과 같다는 사실에 대해.
주인공은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정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식물인간이 된 애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지쳐 그와 헤어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자신을 지금껏 외면했음을 깨달은 탓에 흐른 눈물이다. 유령이 ‘나’에게 안겨 준 깨달음은 마모된 감정을 덜어 낼 수 있는 방아쇠가 되었다.
유령은 뭐랄까, 나보다 내 감정에 훨씬 더 충실하게 반응했다. (…) 유령은 네가 그렇게 담아 두기만 하니까 얼굴이 울상인 거야, 하고 쏘아붙였다. (24쪽)
나는 유령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전부 그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28쪽)
실망, 분노, 체념을 반복한 끝에 ‘나’는 그 모든 감정을 담아 두기로 한다. 그런 주인공 앞에 유령이 나타났다. 감정을 억누른 일상에 감정을 담은 존재가 나타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정수를 향한 감정을 되짚을 무렵, ‘나’보다 먼저 울음을 터트린 유령을 마주 본 주인공이 손을 뻗는다. 실재하지 않는 유령이 흘리는 눈물은 당연하게도 손에 닿지 않았으나 “분명 따뜻했고,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 수 있었다”. 유령은 주인공이 담아 두기만 했던 감정을 눈앞에서 솔직하게 표출해 주인공의 감정을 끌어냈다. 이 소설 속 ‘유령’은 곧 ‘나’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유령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는 처음에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했다. 이것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충분히 지친 상태였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매주 식물인간이 된 애인을 보러 병원으로 향하던 마음이 텅 비어 버린 시점에서, 유령은 그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유령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매일 출근하고, 빵집에 들른 지원과 잡담을 나누고, 팔리고 남은 빵을 챙겨 한강 물고기들에게 던져 주고, 홀로 잠들었을 것이다. 이때 작가는 ‘나’와 꼭 닮은 유령이라는 초현실적 모티프를 ‘나’의 일상에 일상처럼 삽입하여 또 다른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유령의 마음으로」의 유령은 ‘나’에게 이런 마음을 선사한다. 시들어 버린 일상을 제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위안을 안겨 주는 유령의 역할은 크다.
유령의 소멸은 출현과 마찬가지로 예고 없이 이루어진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애인과의 이별을 마친 뒤 잔잔하게 돌아온 주말 오후다. 유령과의 일상 또한 특별할 것 없다고 여긴 데에는 ‘나’의 일상에 유령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며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령이 속삭인 ‘무언가’는 어떤 의미일까. “유령의 마음”은 곧 ‘나’의 마음과 같다. 유령은 ‘나’에게 “나보다 정확한 마음”을 보여 주며 ‘나’의 마음을 되살린다. 이는 현실에서 얻기 힘든 위로를 초현실적 존재가 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것을 마주할 기회를 주는 위안의 서사로 작동한다. 유령은 때로는 애틋하고 다정한, 또 다른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이 본인에게 내재함을 알려 주곤 아름답게 흩어진다.
우리는 유령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며 위안을 얻곤 한다. 물론 눈에 보이는 유령은 없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에는 실재하지 않아도 족하다. 앞으로 또 어떤 소설에서 독특한 형태로 사용된 유령 모티프가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지 고대해도 좋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유령과 인간의 만남을 낭만적이고도 기이하게 느낄 것이고, 이러한 첫인상을 뛰어넘는 감정을 전달하는 서사가 우리의 마음을 되살릴 것이다.
[참고 문헌]
검색어 「유령」, 『표준국어대사전』
이희우, 「멸망보다 긴 - 김지연, 나푸름, 임선우 소설에 나타난 인간의 유령들」, 『문학들 제70호』, 심미안, 2022, 51-66쪽.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민음사, 2022
황예인 해설,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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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과 인간의 만남을 떠올렸을 때 뒤따르는 감상은 낭만과 기이함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선행하는지 묻는다면 저마다 다를 것이다. ‘유령’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이함이 선행할까, 유령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낭만이 선행할까, 혹은 기이함과 낭만을 덮을 또 다른 감상이 선행할까.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모습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피를 흘리는 섬뜩한 모습을 연출한 공포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유령을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 등장시키는 것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유령 모티프를 다룬다.
출처: 교보문고, 『유령의 마음으로』
『유령의 마음으로』는 임선우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이자 첫 번째 작품으로 수록된 단편 「유령의 마음으로」의 제목부터 유령 모티프를 확인할 수 있다. 제목을 보면 실재하지 않는 유령에게 마음이 있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생긴다. 그 의문에 답할 유령은 주인공의 일상에 불쑥 나타난다.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던 일상의 미묘한 어긋남을 계기 삼아 시작된다. 동시에 ‘유령’이라 이름 붙여진 존재는 본인이 유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도 모르게 뭐야, 하고 소리쳤다. 죽었는데 어떻게 눈을 뜨지? 안 죽었으니까. 그것이 대답했다. 생김새뿐 아니라 목소리도 소름 끼칠 정도로 나와 똑같았다. 그럼 너는 누구야? 내가 묻자,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는 너야. 그러면서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서로 가까워질수록 추위가 점차 사라졌다. (10쪽)
‘나’는 빵집에서 근무한다. 빵집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주인공이 문득 “무언가가 몸 밖으로 쑤욱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과 함께 극심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을 유령의 출현 전조로 읽을 수 있다. 주인공과 유령의 첫 만남은 기묘하다. 창고에서 담요를 꺼내 온 주인공의 눈에 띈 건 카운터에 자신이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유령은 ‘나’와 같은 형체를 띠고 있다. 다만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다른 자신의 형체를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 여기며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멍하니 선 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 순간 눈을 뜬 유령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유령이 말한다. 안 죽었다고 말하며, ”나는 너야”라고 덧붙인다. 기이하게도 유령과 가까워지면서 극심했던 추위는 가신다. 이 유령을 단순한 ‘유령’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죽음이라는 계기가 뚜렷한 여타 유령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령의 마음으로」 속 유령은 ‘나’다.
악마도 유령도 아닌 것, 다만 ‘나’와 같으며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것. 한편 ‘나’는 꾸준히 그 존재를 유령이라고 서술한다.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자신에게만 보이는 자신과 같은 형체를 띤 그것을. 누구든 눈앞에 이런 유령이 나타난다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한참 동안 그 유령을 쫓아내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유령과 멀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추위를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유령과 함께여야 비로소 가라앉는 추위는 ‘나’와 유령이 지닌 밀접한 연관성을 의미한다. 이 소설의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아닌 “실제는 없는 것”의 뜻과 결부하여 ‘유령 나’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유령과의 관계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살펴보자. ‘나’의 애인 정수는 교통사고로 2년째 식물인간 상태다. 주인공은 매주 토요일 정수를 보러 병원에 간다. 2년 동안 반복되어 온 일상에 유령이 동행하게 되었을 때, 유령은 외면해 왔던 감정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유령은 정수를 보며 말한다. 네가 왜 ‘좋아했는지’ 알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정수를 왜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좋아했는지’라고 말한 유령의 감정이 자신과 같다는 사실에 대해.
주인공은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정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식물인간이 된 애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지쳐 그와 헤어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자신을 지금껏 외면했음을 깨달은 탓에 흐른 눈물이다. 유령이 ‘나’에게 안겨 준 깨달음은 마모된 감정을 덜어 낼 수 있는 방아쇠가 되었다.
유령은 뭐랄까, 나보다 내 감정에 훨씬 더 충실하게 반응했다. (…) 유령은 네가 그렇게 담아 두기만 하니까 얼굴이 울상인 거야, 하고 쏘아붙였다. (24쪽)
나는 유령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전부 그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28쪽)
실망, 분노, 체념을 반복한 끝에 ‘나’는 그 모든 감정을 담아 두기로 한다. 그런 주인공 앞에 유령이 나타났다. 감정을 억누른 일상에 감정을 담은 존재가 나타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정수를 향한 감정을 되짚을 무렵, ‘나’보다 먼저 울음을 터트린 유령을 마주 본 주인공이 손을 뻗는다. 실재하지 않는 유령이 흘리는 눈물은 당연하게도 손에 닿지 않았으나 “분명 따뜻했고,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 수 있었다”. 유령은 주인공이 담아 두기만 했던 감정을 눈앞에서 솔직하게 표출해 주인공의 감정을 끌어냈다. 이 소설 속 ‘유령’은 곧 ‘나’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유령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는 처음에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했다. 이것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충분히 지친 상태였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매주 식물인간이 된 애인을 보러 병원으로 향하던 마음이 텅 비어 버린 시점에서, 유령은 그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유령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매일 출근하고, 빵집에 들른 지원과 잡담을 나누고, 팔리고 남은 빵을 챙겨 한강 물고기들에게 던져 주고, 홀로 잠들었을 것이다. 이때 작가는 ‘나’와 꼭 닮은 유령이라는 초현실적 모티프를 ‘나’의 일상에 일상처럼 삽입하여 또 다른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유령의 마음으로」의 유령은 ‘나’에게 이런 마음을 선사한다. 시들어 버린 일상을 제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위안을 안겨 주는 유령의 역할은 크다.
유령의 소멸은 출현과 마찬가지로 예고 없이 이루어진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애인과의 이별을 마친 뒤 잔잔하게 돌아온 주말 오후다. 유령과의 일상 또한 특별할 것 없다고 여긴 데에는 ‘나’의 일상에 유령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며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령이 속삭인 ‘무언가’는 어떤 의미일까. “유령의 마음”은 곧 ‘나’의 마음과 같다. 유령은 ‘나’에게 “나보다 정확한 마음”을 보여 주며 ‘나’의 마음을 되살린다. 이는 현실에서 얻기 힘든 위로를 초현실적 존재가 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것을 마주할 기회를 주는 위안의 서사로 작동한다. 유령은 때로는 애틋하고 다정한, 또 다른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이 본인에게 내재함을 알려 주곤 아름답게 흩어진다.
우리는 유령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며 위안을 얻곤 한다. 물론 눈에 보이는 유령은 없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에는 실재하지 않아도 족하다. 앞으로 또 어떤 소설에서 독특한 형태로 사용된 유령 모티프가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지 고대해도 좋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유령과 인간의 만남을 낭만적이고도 기이하게 느낄 것이고, 이러한 첫인상을 뛰어넘는 감정을 전달하는 서사가 우리의 마음을 되살릴 것이다.
[참고 문헌]
검색어 「유령」, 『표준국어대사전』
이희우, 「멸망보다 긴 - 김지연, 나푸름, 임선우 소설에 나타난 인간의 유령들」, 『문학들 제70호』, 심미안, 2022, 51-66쪽.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민음사, 2022
황예인 해설,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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