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이나경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리뷰

-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

 


(  사진 출처 :  YES24  )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는 소심하면서도 귀여운 이 ‘적절한 부탁’은 자칫 어린아이의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명대사를 꼽으라 한다면 단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책의 제목을 꼽을 것이다. 청춘드라마의 정석 같은, 맹랑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내내 미소를 띠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혼자 제목을 되뇌고 또 감탄하면서, 나는 이 발칙한 소설이 우리 모두의 공통 주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 이레는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상호를 가진 작은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전화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인데, 암에 걸린 할머니를 오랜 시간 혼자 둘 수 없기에 여러 가지 여건에 맞는 ‘들어주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한편 이레의 곁에는 율이라는 소년이 존재한다. 율이는 26살이지만 어린 소년이고, 키는 186cm지만 그 누구보다 작다. 율이의 마음은 엄마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과 그럼에도 억누를 수 없는 애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인지 몇 년간 자신을 짝사랑해온 이레의 마음을 알아차리기에는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레는 곁에 있는 할머니와 긴 세월 동안 짝사랑하는 율이 덕분에 마음앓이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두 인물의 영향에 의해 움직이고 변화하며, 더 나아가 성장한다. 이레는 할머니가 말한 감정과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을 마음껏 누리고자 다짐하고, 그 길로 율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짐가방을 꾸린다.

 

“백 년 전에도 백 년 후에도, 전생에도 현생에도, 천재에게도 범인에게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임마누엘 칸트처럼 매일 같은 시간 개미슈퍼에 방문해 최근 이레와 부쩍 가까워진 이레의 친구 칸트는 방에 벽화를 그려주는 일을 한다. 칸트에게 들어온 문의는 대개 자신이 좋아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의뢰가 대부분이었다. 날씬한 몸매에 대한 과한 집착으로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던 모델 친구는 도넛 가게를, 알코올중독이었던 친구는 양조장을, 당뇨병을 앓는 친구는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레는 율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 하면 음식이나 사물을 떠올리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이레는 이 순간에도 율이가 가득 들어찬 자신의 방을 상상했다.

 

      이레는 율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고, 턱 끝까지 차오른 사랑한다는 말 대신 밥은 잘 먹고 있냐는 말을 건넨다. 이레는 율이를 지렁이 똥만큼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율이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떠난다. 이렇듯 이레의 사랑은 쓸쓸하지만 따뜻하다.

 

      순수하면서도 위태로운 소년과 소녀는 긴 여정으로 남을 여행을 시작했다. 이레는 율이에게 그동안 못다 한 말을 전할지도, 계속해서 삼킬지도, 그것도 아니라면 모른 척 대화의 싹을 잘라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들만의 해답을 찾을 것이며, 성장할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성인이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어른처럼 바뀐다고 믿었다. 법으로도 만 19세를 성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더 이상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숫자에 불과한, 법적 성인에 그친 스무 살을 생각하면 희끗한 기억 사이로도 창피한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모두의 치기 어렸던 지난날은 이레와 율이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W. 이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