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조진경] 용기의 역사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중 좋아하는 일만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나지만, 돈을 많이 주면 싫어하는 일도 기꺼이 감당하고 싶어진다. 나에게 할당된 돈을 보는 순간 싫어하는 일은 능히 해내고 싶은 일이 되는 것이다. 페이가 높은 일은 꼭 내가 싫어하는 일이며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남들도 싫어함이 필연적이라 나는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감당할 용기를 마음 깊이 넣어두곤 했다. 소싯적에는 집안의 음식물 쓰레기를 밖으로 열심히 나르며, 구정에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새배 인사를 올리며, 대학생 시절에는 장학금을 위해 공부하며 돈에 대한 용기의 역사가 쓰였다.


이제는 최저시급보다 840원 높은 돈을 받으며 수학을 가르친다. 수학 선생님은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아도 감당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일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의무교육을 받던 시절의 나는 내가 지극히 문과적인 사람임을 일찍이 깨닫고 수학 과목에서는 맘 편히 아랫물에서 부유했지만, 돈을 받는 순간부터는 돈에 내가 수학을 공부해야 할 정당성이 부여됐다. 그래서 나는 출근 전마다 늦깎이 입학생의 마음이 된다. 제때 풀지 못했던 문제를 뒤늦게 푸는 내 손놀림에는 의무감과 함께 어느 정도의 쾌감과 흥미로움이 가미되어 있다. 그 기분을 품고 나는 선생님이 되어 학원에 출근한다.


4시의 학원은 사칙연산을 배우는 초등학생들로 가득하다. 파쿠르로 의자에 폴짝 앉고 폴짝 뛰어나가는 초등학생 하준이와 중1 수학을 선행학습하는 승준이와 포동포동한 젖살에 장난기와 부끄러움이 밴 민준이가 있다. 


다섯 시에는 뭍에 소중한 물건을 깜빡 두고 온 아이처럼 다리를 떨며 집중하지 못하는 중학생 도윤이와 꼭 나에게서 지우개를 찾는 중학생 병하와 졸린 눈으로 알아볼 수 없는 숫자를 날려 적는 중학생 동현이와 나에겐 새침하지만 친구와는 다정 어린 포옹을 주고받는 중학생 아랑이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금방이라도 학원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 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느적거리던 아이라도 하원 시간이 되면 용수철처럼 밖으로 튀어 나간다. 어쩌면 수학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아이들은 몸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하러 가야 한다는 양 꼭 그런다. 


그래도 아이들은 되도록 학원에 매일 온다. 틀린 문제를 다시 틀리지 않는 아이도 매일 오고 틀린 문제를 다시 틀린 아이도 매일 오고 항상 의연하게 잘 해내는 것 같아 보이는 아이도 매일 온다. 12년 전 내가 훌훌 떠나보낸 수학을 아이들은 이렇게도 힘껏 쥐고 있다. 


난 그런 아이들의 옆에 앉아 풀이 방법을 몰라 머뭇거리는 기류를 빨리 파악해 문제 풀이 유형을 알려준다거나 앞으로 더 풀어야 할 오답 문제의 개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거나 한숨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철렁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며 4시간을 빡빡하게 흘려보낸다.


틀린 문제를 앞에 두고 한숨 쉬며 다시 푸는 아이들을 우두망찰 바라보고 있으면 깊은 바다에 빠진 보물선을 보는 것처럼 애틋해진다. 당장이라도 아이들을 수면 위로 띄워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나도 며칠 전까지 이 문제를 못 풀었지만 지금의 난 이렇게나 건재하다고, 이것 말고도 이런 재밌는 것들을 나는 했다는 둥의 말을 해주고 싶지만 입을 꾹 다문다. 아무래도 과묵함은 좋은 수학 선생이라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들의 몸을 수학학원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무엇이 싫어하고 못하는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일로 만드는가. 못하는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어디로 향하는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 퇴근한다.


4시간의 노동이 끝나고 퇴근할 때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고등학생들이 학원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럼 나는 근무 일지에 오늘의 4시간을 정확하게 쌓아두고 신속하게 학원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학원을 나서면서 생각한다. 


야속하리만큼 천천히 쌓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낭패감이 든다. 긴장하며 보내는 출근 전 몇 시간과 실제 일하는 시간과 퇴근 후에 기진맥진한 시간을 합치면 내 하루를 수학에 몽땅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수학선생님으로 일하게 된 것은 나의 만용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하면 나의 엄마 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많이 힘들어?” 

“아니 안 힘들어”

“힘들지”

“아니 안 힘들다니까?”


이런 패턴의 말을 몇 번 반복하면 옥과 내 입에서 웃음이 설핏 새어 나온다.

내가 안 힘들대도 본인이 일한 것처럼 피곤에 전 표정을 짓는 옥을 보며 내 힘듦은 옷을 훌훌 벗는다. 일순간 옥은 나의 동력자가 된다. 


“가르치는 일이 진짜 보통 일이 아니지”

옥과 함께 식탁에서 참외를 먹던 이모 숙이 옆에서 거든다

이제 옥은 동력자1이 되고 숙은 동력자2가 된다.


9시에는 남자친구 현이 옥과 숙의 말을 이어 받아 좀 더 따뜻하게 나의 고생을 거든다.

그렇게 현은 동력자3이 되고, 나는 내일도 나의 동력자들과 보이지 않는 힘을 주고받으며 수학 문제집을 풀고 학원에 출근한다. 자신의 동력자로부터 힘을 받은 아이들과 나는 수학학원에서 만난다. 




Editor. 조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