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Tattooist 키란

INTRO

 

세상에서 무언갈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이들은 항상

묵묵하고 조용히, 자신의 확신과 즐거움을 좇아 나아가던 이들이었다.

세상의 한구석에서 고요하게 요동치면서, 

단 하나의 사랑과 열정의 불을 피워내면서.

그런 불은 누군가의 몸과 마음에 영원토록 잊지 못할 의미를 새겨주기도 한다.

 

 

w. 이은재





반갑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을지로에서 타투이스트로 활동한 지 5년 정도 된 키란입니다. 귀여운 그림 위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타투이스트가 흔한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처음부터 타투이스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얼 할지 고민하다 평소 제가 좋아했던 타투를 배우기로 했는데, 감사하게도 일이 순조롭게 이어져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타투에도 다양한 기술과 장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중에서 저는 머신을 많이 쓰고요. 핸드포크*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디테일과 크기를 더 살릴 수 있는 머신을 애용해요. 또 트렌디한 스타일을 좇기보다는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스타일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핸드포크: 바늘로 잉크를 찍어서 도안을 표현하는 타투의 기법

 


원래 그림을 잘 그리셨나요?

    네. 옛날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쭉 그려오기도 했고, 관련 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무려 5년이나 베테랑 타투이스트로 활동하셨는데요. 작업을 하시면서 인상 깊었던 기억도 많으실 것 같아요.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표현하는 걸 좋아하세요. 특히 반려동물 관련한 문의가 가장 많고요. 개개인의 사연과 이야기를 엮어 자기만의 상징을 만드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런 특별한 이야기를 제가 함께 새긴다는 과정 자체가 참 보람차고 재밌죠. 기억에도 많이 남고요.




그림을 보면 키란이라는 타투이스트만의 세계관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색이 눈에 띄어요.

    말씀해주신 대로 항상 쓰는 색을 저만의 시그니처로 만들어요. 특히 보라색과 파란색 계통의 색을 많이 사용하고 신경을 많이 써요. 또 제가 레트로하고 빈티지스러운,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해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1940, 50년대 디즈니 스타일을 많이 참고했어요. 제가 디즈니를 정말 좋아해요. 어릴 때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디즈니만 봤고, 특히 백설 공주를 정말 많이 봤어요. 지금도 많이 봐요.(웃음) 그 외 제 취향 한 스푼 두 스푼을 가미하다 보니 지금의 제 그림에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하거나, 뭐든 앞으로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있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 세 박자를 고루 다루는 것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키란 님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해오던 일이 지금에 이르러 본인의 세계와 꿈, 업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인생 선배님으로서 후배 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저도 그 세 박자가 다 맞은 사람은 아니에요. 대학에서 제가 공부한 건 패션이었어요. 무작정 ‘난 옷을 좋아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대학에 갔는데 제 생각과 현실은 다르더군요.  보통 사람들은 ‘난 OO을 좋아해’ 하고 뛰어들지만, 막상 그 분야에 들어가 보면 정말 세분화되어 있어요. 어디든 그럴 거예요. 어렸을 때 저는 그 사실을 몰랐죠. 그림을 좋아하면 그림만 그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분야에서도 스스로 세분화해서 ‘나는 어떤 자리에 들어가고 싶은가?’라는 고민을 하는 게 필요해요. 

    저는 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직업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했죠. 그런데 화가나 만화가가 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 같고…. 그런 면으로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해보면서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아닌 것 같아, 모두 부딪히면서요.

    그러다 타투를 시작했는데 ‘어? 이건 재밌네? 이건 해볼 만하겠는데?’를 느꼈어요.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요. 좌우지간 내가 어떤 걸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 분야에 있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 그렇게 내 메타인지를 높여서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무엇에 취약한지 경험을 쌓아나가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든든한 조언 고맙습니다. 타투이스트는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영업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자영업자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손님을 대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맞아요. 힘든 점 정말 많죠.(웃음) 좋아서 하지만 100%에서 반은 하기 싫고 반은 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근데 이걸 참아야 할 수 있으니까!

    참 웃긴 점인데요, 타투라는 게 예술은 물론이고 디자인, 미용, 의학적 지식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지식이 요구돼요. 그래서 아직도 힘들어요. 타투이스트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할수록 모르겠다, 할수록 힘들다’를 절감해요. 이건 정말 끝없이 연마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요. 또 한국에서는 타투가 아직 불법이지만, 뛰어난 타투이스트들이 많은 만큼 기술도 법도 발전하고 있어요. 저도 열심히 공부해야죠.

    손님을 대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몇몇 손님들은 저를 순수 아티스트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저의 보이는 면면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요. 궁극적인 고충은 그림 스타일도 계속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면 안 되고 스스로 계속 변화를 추구해야 해요. 그림의 발전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타투가 상당히 종합적인 면면이 있는 분야인 것 같네요. 말씀하신 고민들도 사실 끝나지 않을 고민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어떤 타투이스트로 남고 싶으신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제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년, 20년이든 직업으로 가져가야 할 일이니까요. 가다 보면 힘든 일도 생기고 질리기도 하는데, 그 와중에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꾸준히 롱런 하는 게 목표예요. 더 나아가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 가져왔던 것들을 활용해 다른 분야와 접목하며 제 세계를 확장해보고 싶어요. 





프랑스에서도 타투 작업을 하신 걸로 아는데요. 관련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인스타그램으로 저를 아시는 분들은 다들 저를 외국인으로 알고 계시더라고요.(폭소) 제가 프랑스에 머물렀던 기간은 2개월 정도예요. 원래 프랑스에 갈 생각은 없었는데, 프랑스에서 숍을 차린 한 타투이스트분이 제 작업을 보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림 너무 잘 보고 있고 좋아하는데, 여기 와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프랑스에 가본 적이 없지만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가봤어요. 그런데 의외로 유럽의 고객들과 제가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내년 1월부터는 1년간 프랑스에서 일할 예정이랍니다.

 


한국 고객분들이 많이 아쉬워하시겠는데요! 그래도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니까요. 사실 한때 인생 노잼 시기가 왔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버겁고 힘들까? 이런 생각들이 밀려오고…. 그런 시기에 온 연락이에요. 그 연락으로 인해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까 인생도 타투도 다시 재밌어지더라고요. 사람은 역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프랑스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요.

    조심스럽지만 유럽 고객들과 한국 고객들과의 차이점을 언급하자면, 한국 고객들은 상당히 까다로우신 편이에요. 유행에 민감하고 보이는 것에도 예민해요. 타투 문의를 할 때도 시각적인 것에 집중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아주 작은 옥에 티도 용납하지 않으세요. 반면 유럽 고객들은 타투에 새기는 가치나 의미에 좀 더 중점을 두세요. ‘이 좋은 날, 프랑스에 와서 네 그림을 내 몸에 새기는 건 정말 기념비적이다’라고 행복해하시는 느낌이랄까요. 타투 시술을 받으러 올 때는 본인들만의 파티처럼 한껏 꾸미면서 오기도 하시고요. 그런 점에서 따라오는 의미 있는 작업들도 많아요.

 


요즘은 타투이스트라는 직종도 많이 늘어나고 희망하시는 분들도 많아졌지만, 시작에 있어서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혹시 조언해 주실 게 있을까요?

    첫째도 둘째도 그림이 중요해요. 기술은 하다 보면 어쨌든 늘게 되어있어요. 근데 그림이 생활의 루틴으로 자리 잡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덤벼들면 위험해요. 지도가 없는 항해와 같죠. 그래서 무조건 그림을 먼저 내 삶의 일부로 삼은 뒤에 뛰어드는 게 맞아요.

    또 단순히 ‘할 게 없어서’,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서’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건 절대 안 돼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그림이 좋고 예술이 좋으니까 할래’ 해도 업이 되면 더 이상 즐길 수가 없어요.(웃음) 내 생계가 걸려 있고 손님들의 몸도 걸려 있으니까 순수 재미로 들이기에는 책임이 너무 커져요. 둘째로는 한국에서는 아직 불법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요. 물론 회사원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죠. 하지만 국가에서 주는 여러 복지는 기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익이 많아도 많지는 않은 거죠. 

  


한국만 타투가 불법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본도 최근까지 타투가 불법이었는데 2년 전에 의료 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어요. 제도나 면허가 생기기 이전에 의료 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의미로 일본은 이제 합법화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불법이 된 이유는 타투가 의료 행위로 지정된 일본의 판례를 베껴왔기 때문인데요. 일본의 타투가 타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도 불법이었던 이유는 과거부터 일본의 지배층이 문신의 유행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근대에 들어서는 야쿠자 탓도 있었어요. 일본과 한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런 재고 없이 무작정 판례만 가져온 것이죠. 또 의료법까지 얽히면서 더 복잡해진 것 같고요. 이외에도 한국 정서와 통속적으로 그리 맞지 않는 점 등등 여러 사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풀기가 쉽지는 않아 보여요.



그래도 옛날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타투가 훨씬 더 대중적으로 퍼지고 인식도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옛날에 비하면 당연히 지금이 더 좋죠.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특히 반영구 시술 쪽이 두각을 드러내더라고요. 분야의 정치적 입김도 제법 강해지고요. 이렇게 되면 앞으로 타투가 합법화될 수도 있겠다고 최근에 실감하긴 했어요. 다들 활동도 열심히 하실 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새로 기술을 배우거나 기존의 노동자들을 위해 힘쓰시는 분들도 많아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는 틀림없어요. 

 


타투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예술에도 새 희망이 피어오를 것 같아요. 그런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술이 사라지기에는 인간이 너무 유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재미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거든요. 재미가 없으면 뭐든지 안 하고 싶고요. 밥만 먹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다채롭고,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확고해요.

 


마지막으로 나에게 타투란?

    나에게 타투란 애증이다.(웃음) 좋을 때는 좋고 싫을 땐 너무 싫은, 오래된 연인처럼. 그래도 이만한 건 없기 때문에 계속하는 그런 애증의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걸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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