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Scenario 이 린


INTRO


파랗게, 불그스름하게, 샛노랗게, 까맣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의 ‘색’은 일상적이지만 늘 새로운 감각을 선물한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을 닮은 영화,

작지만 소중한 순간을 그려내는 ‘하늘색’과 같은 아티스트 이린.

정해지지 않은 하늘의 색처럼 그녀의 예술은 자유롭게 쓰인다.


W. 박효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인 20학번 이린입니다. 영화감독 겸 작가를 꿈꾸고 있어요.

 


지금 활동하고 계신 분야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아직 학부생이라 학교 영화 워크숍에서 단편영화를 연출하거나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어요. 그 외에 개인적으로는 모션그래픽이나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개인 연출작은 아직 1~2개 정도예요.


 

분야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 교내 UCC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칭찬을 많이 받아 재미를 느끼면서 영상을 기획, 편집, 연출하는 것에 점점 관심이 가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작품 비하인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블랙아웃>이라는 작품은 주인공이 블랙아웃(일시적 기억상실)을 겪은 다음 끊긴 기억 사이에 관한 이야기예요. 대학교 1학년 때 워크숍 수업에서 제작했고, 실제로 단편영화 형태로 촬영했어요.

    술을 마시면 솔직해지잖아요. 자신의 본성이나 숨기고 싶었던 점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블랙아웃>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평소 주인공이 눌러놓았던 욕망을 분출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를 쓰기 직전에 제가 술을 마셨는데 세 시간 정도 블랙아웃을 경험했고, 아직도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다음 날 ‘혹시 내가 그 시간 동안 남들을 해했더라도 나는 기억을 못할 텐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고 ‘아! 이거 재밌겠다.’ 해서 시나리오로까지 이어졌어요.


 




    <그늘>은 상당히 빨리 완성했던 작품이에요. 예산을 최소한으로 들이면서 한 장소 안에서 서사를 전개하는 원 로케이션 형태로 촬영이 가능한 작품을 쓰다 보니 이런 작품이 탄생했어요.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집안에 틀어박혀 환영을 보는 내용이에요. 실제로 우리 사회에 아직 자신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이 공감할 수 있게 연출하려고 노력했고, 결말을 통해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 작품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누구였나요?

    <블랙아웃>의 주인공 친구 역할로 나오는 ‘해찬’이라는 인물에 제일 애정이 가요. 다른 인물들이 진지한 와중에 해찬이는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이거든요. 해찬을 통해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을 느껴서, 쓰면서 가장 정이 많이 갔던 역할이에요.

 

 

캐릭터 설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진짜 매력적인 캐릭터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인물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 인물이 영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이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무슨 일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캐릭터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 형성 과정에서 캐릭터의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 궁금해요.

    처음에 쓸 때는 이름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시작하거나 아무 이름이나 넣어서 쓴 뒤 바꾸는 편이에요. <블랙아웃> 주인공의 이름인 ‘수’도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에 많이 고민하다 정한 이름인데, 처음에 붙인 이름은 ‘제임스’였어요. 그러다 제가 누군가를 죽이는 내용의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때 죽은 인물의 이름이 ‘수’였어요. 마침 쓰고 있던 시나리오의 내용과 비슷해서 주인공 이름을 ‘수’라고 정했어요.

    그 외의 인물들은 웬만하면 있을법한 한국 이름을 찾으려고 해요. 이름을 지어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기도 해봤고요. 마침 남자친구가 앞에 있길래 “네 친구 이름을 모두 대봐”라고 해서 한 20~30명 정도의 이름을 써놓고, 캐릭터에 이름을 매치시키기도 했어요. (웃음)

 

 

본인만의 작업 루틴이나 특징이 있나요?

    저는 주로 시나리오를 쓰는데, 학교에서는 줄글로 간단하게 작성하는 트리트먼트를 시나리오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식에 대해 배워요. 먼저 트리트먼트를 쓴 다음, 시나리오 형태로 발전시키는 과제를 내주세요. 그런데 저는 그 틀을 꼭 따르려고 하지는 않아요. 머릿속에 특정 장면이 떠오르면 앞뒤 상황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블랙아웃>이 이러한 방식의 결과예요. ‘수’가 술을 마신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에 쌓인 연락을 확인하는 장면이 먼저 떠올랐고, 앞뒤 내용에 살을 붙여가는 방식으로 완성했어요.

    아예 다른 활동으로 눈을 돌려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그림을 보는 것도, 직접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실제로 책에 삽화 작업을 한 적도 있어요. 영화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지루해질 때쯤 그림을 그리면 복잡했던 머리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학교 수업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교육 분위기가 궁금하네요. 과 특유의 문화나 관습 같은 것이 있나요? 수업 중 가장 좋았거나 배우고 싶은 과목이 있었나요?

    저희 학교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전국의 모든 영화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를 촬영할 때 비용이 많이 들어요. 그중 인건비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서로 스태프를 도맡아 해주는 보직 품앗이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긴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뒤로 실습보다는 이론 위주로 많이 배웠던 터라 직접 카메라나 조명기기를 만져볼 수 있었던 ‘영화 촬영 실습’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교수님이 잘생겨서 좋았어요. (웃음) 앞으로는 실기와 관련한 수업이 듣고 싶고, 사운드 쪽에 관심이 있어서 음향 장비를 다루고 배울 수 있는 수업이 개설된다면 듣고 싶어요.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과 장르, 혹은 활동에 영감을 줬던 작품이나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아주 오래된 흑백 영화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장소에서 방안의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로만 진행이 되는데도 너무 재밌고 흥미진진했어요. 옛날 영화임에도 좋아하고 ‘저렇게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 영화예요.

    그리고 픽사의 영화를 모두 좋아해요. 저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별개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픽사가 가진 감성과 철학적인 내용을 좋아해요.

 

 

시나리오 작가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시나리오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 레드오션이 되는 추세이기도 하죠. 저는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린’이라는 인물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는 내용의 문장이 있어요. 같은 문장 앞뒤에 어떤 장면을 붙이는지, 어떻게 촬영하는지,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져요. 따라서 세세한 디테일과 전반적인 신(장면)의 연출을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게 쓰는 것이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계 시나리오 작가의 입지는 어떤지,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영화계는 문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물론이고, 전공자들도 막연한 루트로 더듬더듬 접근해가는 분야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가가 굳이 필요한가, 무엇이 그들의 장점인가?’라고 묻는다면 ‘시나리오와 연출 각각의 장점 극대화’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라는 종합예술을 잘 연출하는 사람이 있고, 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훌륭한 연출가에게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이 뒷받침된다면, 각 분야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춘 예술가이자 예술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느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예술하는 사람들의 공통 고민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느냐’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글을 쓰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잖아요. 저 또한 ‘어떤 작업으로 내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돈벌이와는 별개로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해야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감독, 작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앞으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첫 작품인 <블랙아웃>에 아쉬운 점이 많아요. 연출이나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있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싶어요. 또 졸업 전에 단편영화를 많이 촬영하고 싶어요.

    직업으로 말하자면 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굳이 영화라는 플랫폼에 한정되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림도 좋고, 영화도 좋고, 기회가 된다면 연극연출도 해보고 싶어요.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오락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을 보면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비치지만, 그들은 대중의 관심이 있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에요. 대중이 심심함과 무료함을 느껴 재미와 자극을 찾게 되면서부터 오락의 용도로 시작한 것이 영화나 다른 형태의 예술로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인간은 더 새롭고 자극적인 오락을 찾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예술이란 것은 사라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해요.

 

 

Dear. A 16~18호 주제가 ‘색깔’인데 작품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지, 또 ‘색깔’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일화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굳이 정의하자면 하늘색이요. 하늘은 아침에는 남색이었다가, 낮에는 하늘색이었다가, 저녁에는 주황색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시간대에 따라 색이 변하잖아요.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작품이에요. 무심코 지나치는 소중한 순간 속 일상을 담고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색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색깔에 대한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블랙아웃>을 촬영하면서 가짜 피를 만들어야 했어요. 촬영 전날에 가짜 피를 만드는데, 아무리 봐도 피 색깔이 아니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나온 그대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화면에서도 역시나 피가 아닌 잼 색깔처럼 보이더라구요. 그때의 색이 아쉬워서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부탁드려요.

    저는 작가님이라고 불리기에 과분한 학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 인터뷰할 수 있었어요. 좋은 기사 만들어주셨으면 좋겠고,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dela_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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