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Producing&Playing 이민주


INTRO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오해를 계속 생성해내며 질문이 뒤따르는 작업이야말로

자유로운 사고의 양분이 된다.

 

잠시 바깥에 머물며 스스로를 바라볼 여유가 있는가.

그리하여 자신을 감수하는 법을 알게 되고,

나만의 감성을 온전히 피울 수 있다.

 

새로운 예술공간을 창조하는 동시에

외부세계도 존중하며 소통하는 태도가

비결이 아닐까.

끊임없이 진동하며 울림을 일으키는.


W. 이루아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The subjekt’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민주라고 합니다. 테크노와 익스페리멘탈 장르의 전자음악을 플레이하고 프로듀싱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려본 것이고요. 장르를 구분 지어놓고 음악을 하지는 않아요.

 

 

전자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왜?’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글 쓰는 것을 즐겼어요. 그런 저를 처음으로 들뜨게 했던 장르가 힙합이었어요.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이 아니라, 세상에 가감 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 거죠. 당시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되게 많았거든요.

     그러다 중학생 시절에 전자음악을 알게 되었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음악이 있지? 나도 남들과는 다른 소리, 이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고 싶다’라는 충동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실용음악 학원을 찾아가서 피아노, 작곡, 기타, 미디 등을 배웠고, 제가 원했던 길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네요.



소개해주신 곡의 작업 의도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어비스>라는 곡은 바다와 심연에 관한 곡이에요. 저는 스폰지밥 필통, 티셔츠, 머그잔, 인형, DVD까지 다 있을 정도로 바다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바다의 끝엔 무엇이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잖아요. 사람도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가끔은 사람의 구색을 내려놓고 감정의 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심연까지 밀려들어 가 보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끝도 없이 우울해지고 싶을 때가 있고, 그 순간에 머물다 가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저는 감정이 간소화되는 과정을 늦추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제 음악을 듣는 시공간 안에선 감정을 충분히 음미하다가 가셨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앨범이 기대되는데, 발매 준비 중이신가요?

     곡을 세상에 내놓을 때 되게 신중한 편이에요. 그래서 상반기에 마무리하고,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다 해서 9월쯤에 발매할 예정이었는데 조금 더 지체되었어요.

     앨범을 준비할 때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몰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내가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죠. 감정의 스펙트럼도 되게 넓잖아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심어줄 것인지 고민해야 해요. 만약 불편함을 주고 싶은 의도가 있었다면 불협이 좋은 것이라, 화음에 맞춰 수정하지 않는 편이에요. 단지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내 의도대로 딱 전달이 될 것 같은데?’ 싶으면 그때 ‘내가 생각해도 멋있다. 잘했네’ 이런 느낌이 들어요

 

 

믹싱하실 때는 주로 어떤 점을 신경 쓰시나요?

     아무리 좋은 곡을 써도 믹싱 마스터링을 잘못하면 원래 의도가 전달되지 않아요. 믹싱 마스터링에서 담당하는 기술적인 부분도 되게 크거든요. 저는 소리가 쌓이고 합쳐서 나는 것을 되게 좋아해요. 그러려면 모든 소리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또 양보해야 다채롭게 들릴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라도 버리기 싫은 욕심을 내려놓고 소리 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공연을 준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요?

     플레이하러 공연을 가면, 한 2시간 반 정도 흐름을 길게 끌고 가야 해요.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10분 만에 신나게 해버리면 사람들이 지쳐요. 천천히 사람들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나서 ‘이제 내가 이만큼 더 올려 볼게’라는 식으로 유동적으로 해야 해요.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그냥 방구석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음악하는 게 맞죠. 그래서 그 흐름을 준비하느라 엠비언트 장르를 중간중간에 넣는 사운드트랙이라든지, 테크노도 미니멀하게 간다든지 등의 구상을 하고 있어요.



 


본인만의 특정한 작업 루틴이 있나요?

     작업 과정이 매번 다르고 들쑥날쑥해요. 어떤 날엔 사운드만, 어떤 날엔 멜로디 라인만, 어떤 날엔 코드나 화성 부분만 집중하기도 해요. 작정하면 칼같이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저부터가 와닿지 않더라고요. 루틴을 중요시하는 일정 장르의 음악을 한다면 매번 작업물을 꾸준하게 수확하지는 못할 거예요. 어찌 보면 창의적인 창작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네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소리가 좋아요. 제가 쌓은 트랙 위에 다양한 소리가 쌓이면서 서로 대응하고 합이 맞춰지는 게 재밌어요, 그래서 곡 위에 계속 덧붙이거나 빼보면서 작업을 해나가고요.

     안되는 곡을 붙잡고 있지도 않아요. 안되면 지금 이 곡에서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쓴 거예요. 계속 자신에 대해 의심하면서 확실하게 판단이 들지 않으면 그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에 휩쓸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시간적 공백을 뒀다가 이어 작업해요. 재음미하는 시간을 가지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기회를 얻는 것 같아요.

 

 

특히 소리에 예민하실 것 같은데, 소리를 기록하기도 하시나요?

     청각이 주는 정보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귀가 닫힐 때는 잘 때밖에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시각이나 미각, 촉각보다 청각에 대한 감각이 무뎌요. 차 소리나 이런저런 노랫소리 같은 도시 소음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청각적인 능력이 발현될 기회를 놓치게 돼요. 저는 귀가 닫힐 때 세상도 닫힌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소리를 머리에 기록해요. 일단 순간의 장면을 캡처해서 머리에 저장해요. 까먹으면 제 것이 아닌 거예요. 캡처한 그 짧은 순간의 느낌을 제 공간으로 끌고 와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요.

 

 

일상에서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무언가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면 파보는 성격이에요. 예를 들어 인간의 분노에 호기심이 생기면, 현재 느끼는 이 감정의 근본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등을 많이 생각해보며 파고들어요. ‘왜?’라고 자주 질문하는 것은 삶의 관점을 넓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구축해 놓은 것이나 학습한 것을 허물고, 그 허문 것들을 주워서 내가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법도 있어요. 예전부터 케이크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커서 보니까 케이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저를 한층 도약하게 하고, 음악적으로도 영감을 줘요. 그러려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한 다양한 감각을 찾는 것과 새로이 발견되는 오류들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오랜 시간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워오시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우선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 힘들었죠. 갑자기 나 음악 해야겠어, 학교 그만 다닐래 라고 하니까 어머니께서 거신 조건이 있었어요. 중학교 때까지만이라도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전교 2등을 하고 나서 드디어 음악하는 것을 허락 받았어요.

     또, 제가 4수를 했어요. 지금이야 이뤄놓은 게 있으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입시를 2년, 3년 하다 보면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성장하는 것 같이 느껴져 죽을 맛이었어요. 입시의 성패가 내 실력의 반증인가 하고 생각할 때도 많았고요.

     특히 힘들었던 건 입시에는 정형화된 틀이 있다는 거였어요. 개성을 입시 곡 포맷에 맞춰야 하는데, 실험적인 음악이 하고 싶은 고집이 있어 힘들었죠. 그때 느낀 점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수많은 실패작을 만들면서 자신의 개성이 없는 부분을 제거해야 작품에 강점과 개성이 실리게 되거든요. 저는 4수 동안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고 선생님을 설득하면서 작업했어요. 그만큼 제 작업 자체를 참고서이자 안내서로 삼았기에, 저만의 세부적인 취향을 찾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짜 좋은 노래를 들으면 전율을 느껴요. 소름이 돋는데 청각적인 부분만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커피숍에서 재즈 대신 이디엠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어색하죠. 장소가 주는 편안함과 음악이 합쳐져 공간을 만들어내거든요. 여행가는 차 안에서 들었던 노래를 일상에서 들었을 때, 정말 생생하게 여행 갔을 때가 딱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뭘 먹었고, 밤하늘은 어땠고, 그때의 공기와 온도는 어땠고, 모기 몇 방 물렸고 이런 거 다 기억이 나죠. 음악은 귀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 언제든지 머물러 있게 만들어서 신비롭다고 느껴요.

     저는 청각적인 요소인 음악을 만들고 제공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듣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거나 어떤 촉감이 느껴지게 할 수도 있죠. 항상 인간의 오감이 맞물려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으신가요?

     음악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제시해보고 싶어요. 청각 예술인, 시각 예술인 분들과 협업도 해보고 싶고요. 제 음악이 난해하다는 평을 종종 듣는데, 그런 사람들을 제 음악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게 목표예요. ‘이번에 대중적인 거 했거든 한 번만 들어줘라.’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만큼 배우고 성장해서 떳떳해지고 싶어요.

     또, 좋아하고 잘하는 게 직업이 되면 즐기는 것에 대해 한계가 오기 마련이니까 내가 하는 일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자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찾으려고 해요.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에게는 자신을 표현하고, 외부와 관계를 완성하려는 욕구가 있어서예요. 본인이 맛본 것을 전해주고 싶다든가, 혹은 간극을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요. 예술 작품은 수많은 관계들의 연결이기 때문에 생활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이 결합해 있어요. 건물의 통창 유리에도,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것마저도 예술이 없었으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잖아요.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핵심 아닐까요? 자기 철학과 맞으면 예술이라 생각하거든요. 예술을 탐구하는 것은 창작자의 세계를 경험하고 맛보는 것이라, 의도를 읽는 게 되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고 예술의 정의가 다르잖아요. 하나의 예술 문제에 대해 다양한 답이 있을 수도 있고요. 간혹 자기 기준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의 예술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핍박하기도 하죠. 그래서 외부와의 끊임없는 마찰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심지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부탁드릴게요!

     매거진에서 꽤 활동하신 분들이나 작업물이 많으신 분들을 보고 걱정을 조금 했거든요. 앨범이라도 미리 많이 냈으면 더 풍부하게 인터뷰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담스럽지 않도록 질문을 되게 잘 짜주셔서 재밌었어요. 작품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라, 저라는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심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https://meinzoopark.bandcamp.com/track/abyssssss

https://soundcloud.com/thesubjekt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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