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아이덴티티를 글에 압축시켜,
첫 만남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예술가,
원더키 디자이너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상상을 전달한다.
w. 황재형
Q. 안녕하세요.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디어에이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원더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오지원이라고 합니다. 타이포그래피 작업도 하지만 전반적인 그래픽 디자인도 하고있어요. 이름 유래에 관해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여럿 계시는데요. 제 이름인 지원의 ‘원’과 열쇠를 뜻하는 ‘key’가 합쳐진 말입니다. 클라이언트 분들이나 제 작업물을 봐주시는 분들의 ‘디자인적인 열쇠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그래픽 디자인은 일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인데요. 그래도 아직 생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 그래픽 디자인, 특히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그래픽 디자이너는 주로 인쇄물이나 광고, 패키지 등 평면적인 표현을 한다고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대로 타이포그래피도 평면적인 시각물에 많이 활용되죠.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기획서 등을 분석하고, 컨셉을 도출합니다. 마지막으로,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까지가 모두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의 일입니다. 다만 메시지를 글자만으로 표현해서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이 다른 것 같아요. 글자에 목적성을 담고 있는 게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에요.
(작업 진행 과정의 경우) 보통은 클라이언트 측에서 먼저 컨셉을 제시해 주시고, 그에 맞추어 작업하는 편입니다. 사실 레퍼런스를 구체적으로 주시는 경우가 많이 없어요. ‘이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정도로만 말씀하십니다. 의뢰 중 반 정도는 제가 처음부터 빌드업 하고, 나머지 반 정도는 주어진 컨셉에 맞추어 발전시키는 편입니다.
Q. 컨셉이 정해지는 방식이 다르군요. 그렇다면 컨셉에 대한 작가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영감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활용하는 참고용 이미지 사이트에서 레퍼런스를 보는 거예요. 이 경우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걸 만들어낼 때 힘든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영감의 7할은 일상생활에서 얻는 편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에서 영감을 받을 때 결과물이 더 잘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에서 자극을 받거든요. 그래서 레퍼런스를 보는 것보다는 일상에서 영감을 더 얻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영화를 보거나, 대화하거나, 전시를 보거나, 노래를 듣는 것처럼 사소한 행위들로부터요.
요즘에는 자연에 시선이 많이 가는데, 일상 속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노트에 정리해두곤 해요. 소풍이나 산책을 나갈 때 꼭 챙기기도 하고…. 시간을 들여서라도 자주 기록하려 합니다. 평소 작은 노트와 큰 노트 두 종류를 많이 활용하는데요. 작은 노트에는 일상에서 받는 영감을 적고, 큰 노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용도로 사용해요. 태블릿도 사용하기는 하는데, 디지털과 종이의 느낌이 달라서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Q. 작업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아끼는 작품이 여러개 있는데요, 그중 하나만 꼽아보자면 ‘세일러문’이라는 개인 작업물을 선정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부분 SNS로 활동하는데, 시작할 때 계정 규모가 작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해당 작업물을 통해 팔로워가 100여 명이 유입됐어요. ‘노트폴리오’라는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홈페이지가 있는데, 그 홈페이지에서 해당 작업물을 올려주셨거든요. 당시 열감기로 고생했어서 실눈을 뜨고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나요. 고생 끝에 완성한 작업물을 그 홈페이지에서 좋게 봐주시기까지 하니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나도 뭔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작업은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의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오는 게 중요했어요. ‘세일러문을 그려야지’하고 생각하니까 머릿속에 도화지가 펼쳐지더라고요. 레트로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 분위기에 맞는 색이나 느낌을 조합했어요. 의식적으로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동시에 다른 디자인과 차별성을 두며 저만의 개성을 살려야 했어요. 그래서 작곡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노래를 안 듣는 것처럼 저도 기존 디자인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Q. 케이팝 그룹 NCT DREAM의 ()scape 앨범에서 레터링 작업하신 것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작업물들과 페어링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이 작품의 컨셉이 ‘인연'이었고 그것을 빨간 실과 함께 디자인으로 잘 풀어내야 했어요. 작업 지시를 주셨던 피디님들과 여러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결과물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마음과 마음이 빨간 실로 연결된 것처럼 글자가 이어진 모습을 최종 디자인에 적용하게 되었어요.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기도 했고요(웃음).
타이포그래피는 주로 시각물의 타이틀이나 로고 형식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작업물의 얼굴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맨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포스터나 책을 볼 때도 제목이 의도가 담긴 디자인으로 포장되어 있을 때 눈길이 가잖아요. 마찬가지로 타이포그래피의 디자인도 사람들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도와줘요. 그래서 글자를 디자인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Q. 그래픽 디자인의 경우 초안으로 구상한 디자인이 채택되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기는데요. 가장 아쉬웠던 경험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CJ Onstyle과 협업한 <What’s In My App> 타이틀 작업이 기억납니다. 최종 결과물로 통과됐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중 일부만이 채택됐어요. 아쉬웠지만 그래도 얻은 게 있었어요. 처음으로 큰 회사와 함께 일해봤고, 회사 피디님과 일대일로 작업 대화를 길게 할 수 있었거든요.
다음에도 외주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면 그때는 저만의 색깔을 시안에 더 넣고 싶어요. 개성이 나타나는 타이포그래피 제작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거든요. 글자 그리는 습관을 시안에 담거나, 요청받은 내용 옆에 저만의 개성을 조그맣게 넣는 방식으로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네가 한 게 아닌 줄 알았어.‘’ 라는 말을 들으면 속상할 것 같아요.
Q. 타이포그래피가 글로써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한계는 없었나요?
A. 질문해주신 부분이 저도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입니다. 타이포그래피가 그림과 글 사이에 있는 작업물이다보니 둘 중 어디에 더 집중해야할지 항상 고민이 돼요. 그림에 집중하면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글이 잘 읽히지 않게 돼요. 그렇게 되면 글의 기능이 퇴색되잖아요. 반면, 글에 치중하면 글이 잘 읽히긴 하지만 작가의 개성이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해요. 그래서 항상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편입니다.
Q. 그렇다면 그냥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된 문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A. 글자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잖아요. 따라서 읽을 때 정보만 캐치해서 읽으면 돼요. 반면 타이포그래피는 글자에 작가의 메시지를 더한다는 점에서 구분되는 것 같아요. 목적성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죠. 똑같은 글씨라도 곡선의 정도, 색 선택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뀌거든요. 그런 점에서 정보 제공에만 그치지 않고 예술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공자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타이포그래피라고 생각합니다.
Q. 2023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 동안의 작업물들을 콜라주 해 올리신 걸 봤어요. 2024년에 올라올 모음집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 2025년이 오기 전 도전하고 싶은 작업물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2024년은 저에게 있어서 작년보다 상업적인 작업이 많이 들어왔던 해였어요.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계단처럼 한 걸음씩 발판을 딛어 나갈 수 있었어요. (혼자 작업하다가 이제는 준프로가 되었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작업량이 많아진 만큼 질적인 차원에서도 성장하는 해였어요.
2025년이 오기 전에는 문학 작가님들과 협업하여 책과 관련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상상하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Q. 상상력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작가님이 작업하신 ‘눈동자에 비친 꿈과 힘’이라는 게시글이 떠오르는데요. ‘눈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요? 무엇이 꿈과 힘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해주나요?
A. 그 작업물은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과 처음 데이트한 날 만든 거예요. 집에 돌아오니 상대방의 눈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그 사람의 눈에서 꿀이 떨어졌거든요(웃음). 그리고 그 사람 눈에 비친 제 모습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그에게도 저의 눈빛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았죠. 여기에서 ‘눈빛에 말이 있다’는 컨셉이 떠올랐고, 눈동자 안에 글자를 넣어봤습니다. 다른 글자도 많은데 ‘꿈’과 ‘힘’을 사용한 이유는 그 시기에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원동력은 가족과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이에요. 그 사람들이 저에게는 전부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디어에이 공식 질문인데요. 삶의 수많은 순간 중 ‘청년’일 때 예술을 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무조건 청년일 때 예술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2030의 나이대에 표현할 수 있는 풋풋함이 있거든요. 따라서 젊을 때부터 예술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일부러 청춘을 생각해 내거나 회고하는 작업은 쉽지 않잖아요. 만약 제가 청춘이나 청년이라는 글자를 타이포그래피로 만든다면,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게 디자인할 거 같아요. 보통 파란 하늘 아래에서 땀을 흘리는 밝고 에너지 있는 모습의 청년을 생각하지만 저는 조금 우울하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하는 청년이 떠오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며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디자인 분야보다 더 쉽게 입문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두 글자를 써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글씨를 활용하는 타이포그래피가 우리게게 친근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글자를 그릴 수 있는 만큼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걱정도 되시겠지만, 많이 경험하고 많이 그려보면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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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이트에 게시된 작품 사진과 매거진의 저작권은 작품의 아티스트 및 매거진 에디터에게 있으며, 무단 복제 및 2차 가공을 금합니다.
director. 최한결
editor. 김승현, 김진
proofread by. 이수빈, 한다현, 황재형
artwork. 김은지
INTRO
아이덴티티를 글에 압축시켜,
첫 만남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예술가,
원더키 디자이너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상상을 전달한다.
w. 황재형
Q. 안녕하세요.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디어에이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원더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오지원이라고 합니다. 타이포그래피 작업도 하지만 전반적인 그래픽 디자인도 하고있어요. 이름 유래에 관해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여럿 계시는데요. 제 이름인 지원의 ‘원’과 열쇠를 뜻하는 ‘key’가 합쳐진 말입니다. 클라이언트 분들이나 제 작업물을 봐주시는 분들의 ‘디자인적인 열쇠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그래픽 디자인은 일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인데요. 그래도 아직 생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 그래픽 디자인, 특히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그래픽 디자이너는 주로 인쇄물이나 광고, 패키지 등 평면적인 표현을 한다고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대로 타이포그래피도 평면적인 시각물에 많이 활용되죠.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기획서 등을 분석하고, 컨셉을 도출합니다. 마지막으로,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까지가 모두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의 일입니다. 다만 메시지를 글자만으로 표현해서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이 다른 것 같아요. 글자에 목적성을 담고 있는 게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에요.
(작업 진행 과정의 경우) 보통은 클라이언트 측에서 먼저 컨셉을 제시해 주시고, 그에 맞추어 작업하는 편입니다. 사실 레퍼런스를 구체적으로 주시는 경우가 많이 없어요. ‘이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정도로만 말씀하십니다. 의뢰 중 반 정도는 제가 처음부터 빌드업 하고, 나머지 반 정도는 주어진 컨셉에 맞추어 발전시키는 편입니다.
Q. 컨셉이 정해지는 방식이 다르군요. 그렇다면 컨셉에 대한 작가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영감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활용하는 참고용 이미지 사이트에서 레퍼런스를 보는 거예요. 이 경우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걸 만들어낼 때 힘든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영감의 7할은 일상생활에서 얻는 편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에서 영감을 받을 때 결과물이 더 잘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에서 자극을 받거든요. 그래서 레퍼런스를 보는 것보다는 일상에서 영감을 더 얻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영화를 보거나, 대화하거나, 전시를 보거나, 노래를 듣는 것처럼 사소한 행위들로부터요.
요즘에는 자연에 시선이 많이 가는데, 일상 속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노트에 정리해두곤 해요. 소풍이나 산책을 나갈 때 꼭 챙기기도 하고…. 시간을 들여서라도 자주 기록하려 합니다. 평소 작은 노트와 큰 노트 두 종류를 많이 활용하는데요. 작은 노트에는 일상에서 받는 영감을 적고, 큰 노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용도로 사용해요. 태블릿도 사용하기는 하는데, 디지털과 종이의 느낌이 달라서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Q. 작업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아끼는 작품이 여러개 있는데요, 그중 하나만 꼽아보자면 ‘세일러문’이라는 개인 작업물을 선정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부분 SNS로 활동하는데, 시작할 때 계정 규모가 작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해당 작업물을 통해 팔로워가 100여 명이 유입됐어요. ‘노트폴리오’라는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홈페이지가 있는데, 그 홈페이지에서 해당 작업물을 올려주셨거든요. 당시 열감기로 고생했어서 실눈을 뜨고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나요. 고생 끝에 완성한 작업물을 그 홈페이지에서 좋게 봐주시기까지 하니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나도 뭔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작업은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의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오는 게 중요했어요. ‘세일러문을 그려야지’하고 생각하니까 머릿속에 도화지가 펼쳐지더라고요. 레트로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 분위기에 맞는 색이나 느낌을 조합했어요. 의식적으로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동시에 다른 디자인과 차별성을 두며 저만의 개성을 살려야 했어요. 그래서 작곡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노래를 안 듣는 것처럼 저도 기존 디자인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Q. 케이팝 그룹 NCT DREAM의 ()scape 앨범에서 레터링 작업하신 것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작업물들과 페어링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이 작품의 컨셉이 ‘인연'이었고 그것을 빨간 실과 함께 디자인으로 잘 풀어내야 했어요. 작업 지시를 주셨던 피디님들과 여러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결과물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마음과 마음이 빨간 실로 연결된 것처럼 글자가 이어진 모습을 최종 디자인에 적용하게 되었어요.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기도 했고요(웃음).
타이포그래피는 주로 시각물의 타이틀이나 로고 형식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작업물의 얼굴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맨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포스터나 책을 볼 때도 제목이 의도가 담긴 디자인으로 포장되어 있을 때 눈길이 가잖아요. 마찬가지로 타이포그래피의 디자인도 사람들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도와줘요. 그래서 글자를 디자인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Q. 그래픽 디자인의 경우 초안으로 구상한 디자인이 채택되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기는데요. 가장 아쉬웠던 경험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CJ Onstyle과 협업한 <What’s In My App> 타이틀 작업이 기억납니다. 최종 결과물로 통과됐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중 일부만이 채택됐어요. 아쉬웠지만 그래도 얻은 게 있었어요. 처음으로 큰 회사와 함께 일해봤고, 회사 피디님과 일대일로 작업 대화를 길게 할 수 있었거든요.
다음에도 외주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면 그때는 저만의 색깔을 시안에 더 넣고 싶어요. 개성이 나타나는 타이포그래피 제작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거든요. 글자 그리는 습관을 시안에 담거나, 요청받은 내용 옆에 저만의 개성을 조그맣게 넣는 방식으로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네가 한 게 아닌 줄 알았어.‘’ 라는 말을 들으면 속상할 것 같아요.
Q. 타이포그래피가 글로써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한계는 없었나요?
A. 질문해주신 부분이 저도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입니다. 타이포그래피가 그림과 글 사이에 있는 작업물이다보니 둘 중 어디에 더 집중해야할지 항상 고민이 돼요. 그림에 집중하면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글이 잘 읽히지 않게 돼요. 그렇게 되면 글의 기능이 퇴색되잖아요. 반면, 글에 치중하면 글이 잘 읽히긴 하지만 작가의 개성이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해요. 그래서 항상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편입니다.
Q. 그렇다면 그냥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된 문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A. 글자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잖아요. 따라서 읽을 때 정보만 캐치해서 읽으면 돼요. 반면 타이포그래피는 글자에 작가의 메시지를 더한다는 점에서 구분되는 것 같아요. 목적성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죠. 똑같은 글씨라도 곡선의 정도, 색 선택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뀌거든요. 그런 점에서 정보 제공에만 그치지 않고 예술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공자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타이포그래피라고 생각합니다.
Q. 2023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 동안의 작업물들을 콜라주 해 올리신 걸 봤어요. 2024년에 올라올 모음집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 2025년이 오기 전 도전하고 싶은 작업물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2024년은 저에게 있어서 작년보다 상업적인 작업이 많이 들어왔던 해였어요.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계단처럼 한 걸음씩 발판을 딛어 나갈 수 있었어요. (혼자 작업하다가 이제는 준프로가 되었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작업량이 많아진 만큼 질적인 차원에서도 성장하는 해였어요.
2025년이 오기 전에는 문학 작가님들과 협업하여 책과 관련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상상하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Q. 상상력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작가님이 작업하신 ‘눈동자에 비친 꿈과 힘’이라는 게시글이 떠오르는데요. ‘눈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요? 무엇이 꿈과 힘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해주나요?
A. 그 작업물은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과 처음 데이트한 날 만든 거예요. 집에 돌아오니 상대방의 눈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그 사람의 눈에서 꿀이 떨어졌거든요(웃음). 그리고 그 사람 눈에 비친 제 모습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그에게도 저의 눈빛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았죠. 여기에서 ‘눈빛에 말이 있다’는 컨셉이 떠올랐고, 눈동자 안에 글자를 넣어봤습니다. 다른 글자도 많은데 ‘꿈’과 ‘힘’을 사용한 이유는 그 시기에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원동력은 가족과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이에요. 그 사람들이 저에게는 전부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디어에이 공식 질문인데요. 삶의 수많은 순간 중 ‘청년’일 때 예술을 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무조건 청년일 때 예술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2030의 나이대에 표현할 수 있는 풋풋함이 있거든요. 따라서 젊을 때부터 예술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일부러 청춘을 생각해 내거나 회고하는 작업은 쉽지 않잖아요. 만약 제가 청춘이나 청년이라는 글자를 타이포그래피로 만든다면,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게 디자인할 거 같아요. 보통 파란 하늘 아래에서 땀을 흘리는 밝고 에너지 있는 모습의 청년을 생각하지만 저는 조금 우울하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하는 청년이 떠오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며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디자인 분야보다 더 쉽게 입문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두 글자를 써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글씨를 활용하는 타이포그래피가 우리게게 친근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글자를 그릴 수 있는 만큼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걱정도 되시겠지만, 많이 경험하고 많이 그려보면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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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최한결
editor. 김승현, 김진
proofread by. 이수빈, 한다현, 황재형
artwork. 김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