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심장을 울릴 소리의 감각,
당신을 새로운 공간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w.정해원
INTERVIEW
Q. 반갑습니다. 디어에이 독자분들께 인사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볼까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음향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스물네 살 박유진입니다.
Q. 음향이라는 분야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음향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A. 일단 음향이라고 하면 다들 음악 쪽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음악보다는 기술 쪽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보통 극장에서 소리를 들을 때 스피커를 통해 듣잖아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루는 게 제 일인 거죠.
음향은 크게 세 가지로 분야를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레코딩이에요. <무한도전>을 보시면 지디랑 박명수가 녹음실에서 같이 작업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지디가 레코딩을 하는 역할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소리를 녹음하고, 이후 별도의 후반 작업을 통해 음악을 더 좋은 소리로 깔끔하게 만드는 걸 ‘믹싱 및 마스터링’이라고 합니다. 그것까지가 레코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영화 음향 분야예요.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 줄여서 ‘P.P’라고도 해요. 영화를 보면 적당한 사운드로 대사나 배경 음악이 정리가 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영상의 동시 녹음, 후반 믹싱, 대사 작업 등을 하시는 분들이 영화 음향의 종사자들이에요.
마지막으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무대 음향 분야는 콘서트,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 예술 속 음향을 생각하시면 돼요. 콘서트장에 가면 말 그대로 ‘심장이 뛴다’는 걸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스피커 소리에 맞춰 쿵쿵쿵, 하고요. 스피커에서 현장감 있는 좋은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단순 확성이 아닌, 라이브 엔지니어로서의 현장 음향을 다루는 일을 무대 음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작업하신 것들을 보면 대체로 연극 같은 무대 공연 작업들이 많았는데요, 언급하신 다양한 음향 작업 분야 중에서 무대 공연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아티스트와 호흡하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티스트의 사인을 시작으로 제가 음악을 틀 때도 있고, 반대로 제가 곡을 시작하면 아티스트가 이에 맞춰 대사를 시작하기도 하는 것처럼요. 공연 중에는 그런 사인이 많이 이루어져요. 배우가 창문을 닦는 모션을 취할 땐 “28번큐 고”, 기침을 할 땐 “31번큐 고”. 이런 사인이요. 관객들은 알 수 없는, 배우와 저만의 약속인 거죠.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Q. 각 분야마다 구체적인 업무는 물론 다르겠지만,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음향 감독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A. 음향 감독은 관객들이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무대 위 아티스트분들을 위한 최선의 음악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맡는 사람들이죠. 소리에 대한 것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감각도 필요해요.
보통 음향 감독은 극장에 상주하면서 음향 시스템을 전담하는 총책임자를 말하고요, 음향 오퍼레이터는 공연 단위로 참여해서 음향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고 구분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감독님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네요.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약력에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화학·생명과학에서 음향 제작과로 학교와 전공을 옮기고, 현재 대학교 공부와 현장 작업을 병행하고 계신다는 부분인데요. 이공계열 공부를 하다가 음향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그 계기가 있을까요?
A. 저는 원래 이과였어요. 과학수사라는 분야를 엄청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국과수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화학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막상 전공을 해 보니까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그런 괴리감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신입생 때 방황하던 중,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해 보고 생각을 이어오다 보니 음악으로 귀결되더라고요.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 다루는 취미가 있고, 케이팝과 클래식을 좋아해서 공연장도 자주 다니고. 그러다가 ‘아, 나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그러면 음악과 공연을 다루는 일을 한번 직업으로 삼아 보자’라고 생각이 정리됐죠. 그게 바로 음향 감독이었어요.
Q.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용기의 근원이 된 것이 있나요?
A. 저한테 좌우명이 있는데, ‘시작은이 반이다’예요. 제가 사실 조금 게을러요. 그래서 ‘시작’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게으른 편인 데다 생각까지 많아서 웬만하면 시작을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때, 계기 하나만 짠, 하고 생기면 바로 행동까지 이어져요.
음향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랬어요. 저에게는 정말 문외한인 분야였는데, 그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건 말 그대로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거잖아요? 학교는 가르쳐 주는 곳이고요. 학교에서 맞닥뜨려서 배워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니까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더라고요.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짜릿함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예술 대학교만의 자유로움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Q. 사실 무대라고 하면 배우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반대로 음향 감독을 비롯하여 무대 뒤에 계시는 분들은 스포트라이트를 잘 못 받는 편인데, 이 부분이 아쉽진 않으신가요?
A.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 아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무대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이 분야를 전공하며, 음향을 공부한다는 건 제 행동반경이 오로지 무대 뒤편에만 제약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더 느꼈어요. 공연을 배우면서 저만큼 무대를 사랑하는 대학교 친구들이랑 밴드부 공연도 해 볼 기회가 오기도 하고,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분들만큼이나 무대를 많이 횡단하고 다니기도 해요. 어떤 형태로든 무대에 서 볼 기회의 선두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무대에 대한 욕심은 이런저런 기회로 다 충족된 것 같아요.
Q. 무대의 바깥에 있는 관객의 입장이다 보니, 언제나 무대의 안쪽 사정이 궁금하기 마련입니다. 연극 혹은 공연 작품 하나를 무대에 정식으로 올려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독자분들께 살짝 엿보게 해 주세요.
A. 밴드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전체적인 커리큘럼은 비슷해요. 우선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각본이 필요한 곳은 연출이 기획을 해요. 창작극을 하겠다고 하면 각본부터 새로 쓰거나, 기존에 있던 공연을 올리겠다고 하면 그 각본의 라이센스를 따온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각본이 완성되면 무대 구성도 간략하게 하고요.
그 다음에는 무대팀, 미술팀, 의상팀 등처럼 크루 모집을 시작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기술 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우팀이 모집되면 배우들은 연습을 시작해요.
다른 팀들은 각각의 무대를 위해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음향팀 같은 경우는 연습 참관을 갑니다. 배우들 연습하는 걸 보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여기서는 빗소리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요. 만약 빗소리에 배우의 목소리가 묻힐 것 같으면 이를 빼는 방식으로 연출팀과 조율하면서 음향 디자인을 합니다. 그럼 빗소리는 대사가 언제 끝날 때 들어갈 건가, 어떤 모션을 취할 때 들어갈 건가, 이렇게 타이밍을 배우들과 맞춰 보기도 하죠.
Q. 아까 말씀하신 배우분들과의 ‘사인’을 만드는 거네요.
A. 맞아요, 그렇게 사인을 조율하면 이제 무대 셋업을 시작합니다. 공연을 이틀 간 한다고 하면, 재정적인 문제와 그날 대관 일정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3일을 더 추가로 대관해요. 그러면 그 3일 동안 음향팀은 스피커가 잘 나오는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시스템 점검을 합니다. 상주 감독님들이 계셔서 관리를 꾸준히 해 온 극장들은 컨디션이 좋아서 괜찮아요. 하지만 그런 관리가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체크를 일일이 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써요.
Q. ‘소리에 대한 것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만큼 소리가 공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거겠죠. 하지만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처럼, 연출 과정 중 무대의 공간적 측면에서 소리의 한계를 느끼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A. 저희는 이미 있는 공간에서 최대한 좋은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그 공간이 소리를 내기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공연을 올려야 하는데, 그 공간이 벽의 재질이나 층고 높이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반사음이 많이 생겨 웅웅거리는 곳인 거예요, 그럼 공연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살려내기가 정말 어려워지죠. 그럴 때는 기술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진짜 이상적인 소리를 관객한테 들려주고 싶다, 하면 그냥 스피커를 관객 상하좌우에다 두곤 합니다. (웃음)
Q. 무대를 그냥 가려 버리고요? (웃음)
A. 그렇죠, 제 역할은 어쨌든 좋은 소리를 다루는 거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으니 무대팀이나 연출팀과 끝없이 소통을 하는 거죠. 물론 반영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안 된다면, 그때부터는 저의 능력 선에서 최대한 좋은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고요.
Q,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책임자들끼리 치열한 소통이 이루어지겠네요.
A. 사실 ‘음향 사고만 안 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몸은 편하지만, 저는 조금 더 섬세하게 확인하려고 하죠. 보다 끈질기게 체크를 해야 공연의 질과 가치가 높아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Q. 음향 감독의 사명감이군요.
A. 맞아요, 제가 담당한 부분에서는 욕심을 내서 최대한 좋은 조건을 챙겨야 하니까요.
Q. 수많은 연습과 섬세한 확인으로 무대가 올라가겠지만, 공연을 많이 진행하다 보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고 역시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잖아요. 음향 분야도 마찬가지겠죠.
A. 현장은 정말 사고의 연속이에요. 지금 제가 일하는 뮤지컬 극장을 예로 들자면, 하울링이 정말 자주 일어나요.
‘하울링’은 스피커에서 출력된 어떤 특정 주파수가 반복적으로 돌아서 특정 주파수 대역이 증폭되는 현상이에요.
여기서 ‘소리가 돈다’는 표현은, 스피커와 마이크의 위치에 관한 표현이에요. 보통 무대 위편에 스피커가 있고, 그 앞에 관객이 있죠. 그런데 공연을 하다 보면 아티스트분들이 노래하다가 관객 쪽으로 나올 때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배우의 마이크로 들어가요. 그게 소리가 돈다는 표현이에요. 그런 상황을 제가 미리 알고 있으면 소리가 돌지 않게끔 조작해 둘 수 있지만, 만약 공연 중에 하울링이 일어나면 바로 EQ*로 잡는 작업을 하죠. 사전에 방지한다고 해서 공연 중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처가 빨라야 해요. (*악기나 목소리 따위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조정하는 기기)
Q. 아티스트분들과 호흡을 많이 맞춰 봐야 하는 필요성이 나오는군요.
A. 정말로요. 그리고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늘 느낍니다. ‘아, 이럴 때 사고가 많이 나는구나’라는 감각을 터득할 수 있는 거죠.
Q. 음향 일을 비롯해 조명 일도 종종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향과 조명 두 작업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유사점이라고 하면요, 저는 두 분야의 일이 도파민 중독을 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는, 실수하면 티가 많이 나요. 그리고 잘해야 본전 찾기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항상 긴장한 상태인데, 그 긴장 끝에 공연을 무사히 마쳤을 때 나오는 성취감과 아드레날린이 너무 중독적입니다.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면, 조명과 음향은 작업 스케줄의 흐름이 비슷해요. 디자인과 오퍼레이터가 들어가거든요. 디자인은 말 그대로 설계에 가까운 작업이에요. 조명으로 예를 들자면, 재생된 노래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는 차가운 분위기니까 파랗게 간다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조명기를 사용해서 어떻게 분위기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디자인을 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디자인을 콘솔에 메모리 작업을 한 후, 그 메모리된 것을 공연 때 시행하는 오퍼레이터로 넘어가는 거고요. 음향도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 어떤 효과와 음악을 넣는지를 디자인하고, 그렇게 디자인한 걸 메모리 처리한 후 공연 때 오퍼레이팅을 하는 거죠. 이런 식의 전반적인 작업 스케줄 흐름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 부분들을 제외한 세부적인 요소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조명 오퍼레이팅 일을 했는데, 또 색다르게 재미있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라는 곡을 한다고 했을 때, 3분 남짓 되는 곡 박자에 맞춰서 일일이 조명을 바꿔야 돼요. 노래의 흐름과 배우분들의 액션 타이밍에 마치 저도 같이 공연하듯 직접 조절하는 거죠. 그런데 음향은 노래를 틀고 다음 노래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음향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콘솔을 보고 있어요.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Q. 조명이 조금 더 실시간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거네요.
A. 사실 제가 말한 건 장르가 뮤지컬이어서 더 그럴 거예요.
Q. 장르마다 특성이 많이 다른가요?
A. 콘서트는 사람들이 소리를 들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음향을 꽤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아티스트마다 추구하는 음향 스타일이 있어서 아티스트 전담 엔지니어도 많죠.
Q. 참여했던 작품 중 유진 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A. <Our Photograph>라는 밴드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 학교 실음과 학생들로 이루어진 무대였는데, 제가 모니터 엔지니어 역할을 맡았습니다. 항상 음향 크루로서 일을 해 왔다가 처음 엔지니어로서 책임자의 일을 담당하게 된 무대였죠.
한창 여름방학 때 매주 연습하고, 음향 전공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해야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을지 공부하고, 배우고, 셋업을 어떻게 하고, 철수를 어떻게 하고…….
Q. 말 그대로 청춘이었네요. 여름방학에 모여서 다 같이 무대를 만드는.
A. 그래서 기억에 더 남는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었죠. 물론 실수는 했지만. (웃음) 그때 많은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그래도 끝냈다는 성취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3월 초에 직장인 뮤지컬 <영웅>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조명으로 첫 작업을 수행하게 된 뮤지컬이었는데요. 조명 디자인에도 참여했고, 이틀 간 4회 차의 공연을 오퍼레이팅했어요. 저는 주로 연극이나 밴드를 하면서, 음향 큐가 100개가 넘어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뮤지컬은 500개에 육박하는, 볼륨이 엄청 큰 공연이었던 거예요.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고, 중간에 정말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만둘까’ 생각도 했어요.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끝까지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서 무사히 공연을 잘 마쳤던 기억이 나네요.
Q. 듣기만 하는데도 같이 숨이 차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겠어요.
A.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
Q. 어떻게 보면 극한의 상황에서 작업했던 작품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거네요.
A. 맞아요, 재미있어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도파민 중독을 야기한다고.
Q. 유진 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훗날 올리고 싶은 작품이나 목표로 두고 있는 공연장이 있으신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볼까 합니다.
A. 저는 정말 음악을 가리지 않아요. 그래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생각나는 걸 물어보신다면, ‘DAY6’ 콘서트의 음향 감독을 해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네요.
Q. ‘DAY6’라면 밴드의 콘서트 음향 감독을 한번 해 보고 싶으시다는 거죠?
A. 네, 밴드 음향 일에는 언제나 욕심이 있어요.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해 보자면, 직관적으로 ‘음향 및 무대시설이 기술적으로 정말 뛰어난 공연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영종도에 최근에 ‘인스파이어 아레나’ 라는 공연장이 생겼습니다. 정말 큰 규모의 공연장인데, 언젠가 거기서도 공연을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클래식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좋아해서, 클래식 무대가 자주 열리는 예술의 전당도 오랜 꿈의 공연장 중 하나입니다.
Q. 마지막으로 드리는 디어에이 공식 질문입니다.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A.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예술 없이 살 수 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는 있어요.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맛있는 초코 프레첼을 먹으면 살아갈 힘이 생기잖아요. (웃음)
예술은 저한테 초코 프레첼이에요. 삶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어도, 더 행복하고 풍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죠. 팍팍한 출근의 품 한편에 초코 프레첼 하나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더 풍요로운 것처럼. 예술이 저희 삶의 어느 한 부분에 존재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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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성민, 유수연, 이채원, 김민재
designer.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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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울릴 소리의 감각,
당신을 새로운 공간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w.정해원
INTERVIEW
Q. 반갑습니다. 디어에이 독자분들께 인사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볼까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음향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스물네 살 박유진입니다.
Q. 음향이라는 분야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음향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A. 일단 음향이라고 하면 다들 음악 쪽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음악보다는 기술 쪽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보통 극장에서 소리를 들을 때 스피커를 통해 듣잖아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루는 게 제 일인 거죠.
음향은 크게 세 가지로 분야를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레코딩이에요. <무한도전>을 보시면 지디랑 박명수가 녹음실에서 같이 작업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지디가 레코딩을 하는 역할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소리를 녹음하고, 이후 별도의 후반 작업을 통해 음악을 더 좋은 소리로 깔끔하게 만드는 걸 ‘믹싱 및 마스터링’이라고 합니다. 그것까지가 레코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영화 음향 분야예요.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 줄여서 ‘P.P’라고도 해요. 영화를 보면 적당한 사운드로 대사나 배경 음악이 정리가 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영상의 동시 녹음, 후반 믹싱, 대사 작업 등을 하시는 분들이 영화 음향의 종사자들이에요.
마지막으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무대 음향 분야는 콘서트,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 예술 속 음향을 생각하시면 돼요. 콘서트장에 가면 말 그대로 ‘심장이 뛴다’는 걸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스피커 소리에 맞춰 쿵쿵쿵, 하고요. 스피커에서 현장감 있는 좋은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단순 확성이 아닌, 라이브 엔지니어로서의 현장 음향을 다루는 일을 무대 음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작업하신 것들을 보면 대체로 연극 같은 무대 공연 작업들이 많았는데요, 언급하신 다양한 음향 작업 분야 중에서 무대 공연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아티스트와 호흡하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티스트의 사인을 시작으로 제가 음악을 틀 때도 있고, 반대로 제가 곡을 시작하면 아티스트가 이에 맞춰 대사를 시작하기도 하는 것처럼요. 공연 중에는 그런 사인이 많이 이루어져요. 배우가 창문을 닦는 모션을 취할 땐 “28번큐 고”, 기침을 할 땐 “31번큐 고”. 이런 사인이요. 관객들은 알 수 없는, 배우와 저만의 약속인 거죠.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Q. 각 분야마다 구체적인 업무는 물론 다르겠지만,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음향 감독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A. 음향 감독은 관객들이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무대 위 아티스트분들을 위한 최선의 음악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맡는 사람들이죠. 소리에 대한 것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감각도 필요해요.
보통 음향 감독은 극장에 상주하면서 음향 시스템을 전담하는 총책임자를 말하고요, 음향 오퍼레이터는 공연 단위로 참여해서 음향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고 구분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감독님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네요.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약력에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화학·생명과학에서 음향 제작과로 학교와 전공을 옮기고, 현재 대학교 공부와 현장 작업을 병행하고 계신다는 부분인데요. 이공계열 공부를 하다가 음향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그 계기가 있을까요?
A. 저는 원래 이과였어요. 과학수사라는 분야를 엄청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국과수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화학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막상 전공을 해 보니까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그런 괴리감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신입생 때 방황하던 중,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해 보고 생각을 이어오다 보니 음악으로 귀결되더라고요.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 다루는 취미가 있고, 케이팝과 클래식을 좋아해서 공연장도 자주 다니고. 그러다가 ‘아, 나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그러면 음악과 공연을 다루는 일을 한번 직업으로 삼아 보자’라고 생각이 정리됐죠. 그게 바로 음향 감독이었어요.
Q.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용기의 근원이 된 것이 있나요?
A. 저한테 좌우명이 있는데, ‘시작은이 반이다’예요. 제가 사실 조금 게을러요. 그래서 ‘시작’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게으른 편인 데다 생각까지 많아서 웬만하면 시작을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때, 계기 하나만 짠, 하고 생기면 바로 행동까지 이어져요.
음향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랬어요. 저에게는 정말 문외한인 분야였는데, 그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건 말 그대로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거잖아요? 학교는 가르쳐 주는 곳이고요. 학교에서 맞닥뜨려서 배워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니까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더라고요.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짜릿함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예술 대학교만의 자유로움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Q. 사실 무대라고 하면 배우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반대로 음향 감독을 비롯하여 무대 뒤에 계시는 분들은 스포트라이트를 잘 못 받는 편인데, 이 부분이 아쉽진 않으신가요?
A.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 아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무대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이 분야를 전공하며, 음향을 공부한다는 건 제 행동반경이 오로지 무대 뒤편에만 제약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더 느꼈어요. 공연을 배우면서 저만큼 무대를 사랑하는 대학교 친구들이랑 밴드부 공연도 해 볼 기회가 오기도 하고,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분들만큼이나 무대를 많이 횡단하고 다니기도 해요. 어떤 형태로든 무대에 서 볼 기회의 선두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무대에 대한 욕심은 이런저런 기회로 다 충족된 것 같아요.
Q. 무대의 바깥에 있는 관객의 입장이다 보니, 언제나 무대의 안쪽 사정이 궁금하기 마련입니다. 연극 혹은 공연 작품 하나를 무대에 정식으로 올려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독자분들께 살짝 엿보게 해 주세요.
A. 밴드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전체적인 커리큘럼은 비슷해요. 우선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각본이 필요한 곳은 연출이 기획을 해요. 창작극을 하겠다고 하면 각본부터 새로 쓰거나, 기존에 있던 공연을 올리겠다고 하면 그 각본의 라이센스를 따온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각본이 완성되면 무대 구성도 간략하게 하고요.
그 다음에는 무대팀, 미술팀, 의상팀 등처럼 크루 모집을 시작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기술 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우팀이 모집되면 배우들은 연습을 시작해요.
다른 팀들은 각각의 무대를 위해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음향팀 같은 경우는 연습 참관을 갑니다. 배우들 연습하는 걸 보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여기서는 빗소리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요. 만약 빗소리에 배우의 목소리가 묻힐 것 같으면 이를 빼는 방식으로 연출팀과 조율하면서 음향 디자인을 합니다. 그럼 빗소리는 대사가 언제 끝날 때 들어갈 건가, 어떤 모션을 취할 때 들어갈 건가, 이렇게 타이밍을 배우들과 맞춰 보기도 하죠.
Q. 아까 말씀하신 배우분들과의 ‘사인’을 만드는 거네요.
A. 맞아요, 그렇게 사인을 조율하면 이제 무대 셋업을 시작합니다. 공연을 이틀 간 한다고 하면, 재정적인 문제와 그날 대관 일정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3일을 더 추가로 대관해요. 그러면 그 3일 동안 음향팀은 스피커가 잘 나오는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시스템 점검을 합니다. 상주 감독님들이 계셔서 관리를 꾸준히 해 온 극장들은 컨디션이 좋아서 괜찮아요. 하지만 그런 관리가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체크를 일일이 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써요.
Q. ‘소리에 대한 것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만큼 소리가 공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거겠죠. 하지만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처럼, 연출 과정 중 무대의 공간적 측면에서 소리의 한계를 느끼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A. 저희는 이미 있는 공간에서 최대한 좋은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그 공간이 소리를 내기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공연을 올려야 하는데, 그 공간이 벽의 재질이나 층고 높이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반사음이 많이 생겨 웅웅거리는 곳인 거예요, 그럼 공연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살려내기가 정말 어려워지죠. 그럴 때는 기술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진짜 이상적인 소리를 관객한테 들려주고 싶다, 하면 그냥 스피커를 관객 상하좌우에다 두곤 합니다. (웃음)
Q. 무대를 그냥 가려 버리고요? (웃음)
A. 그렇죠, 제 역할은 어쨌든 좋은 소리를 다루는 거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으니 무대팀이나 연출팀과 끝없이 소통을 하는 거죠. 물론 반영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안 된다면, 그때부터는 저의 능력 선에서 최대한 좋은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고요.
Q,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책임자들끼리 치열한 소통이 이루어지겠네요.
A. 사실 ‘음향 사고만 안 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몸은 편하지만, 저는 조금 더 섬세하게 확인하려고 하죠. 보다 끈질기게 체크를 해야 공연의 질과 가치가 높아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Q. 음향 감독의 사명감이군요.
A. 맞아요, 제가 담당한 부분에서는 욕심을 내서 최대한 좋은 조건을 챙겨야 하니까요.
Q. 수많은 연습과 섬세한 확인으로 무대가 올라가겠지만, 공연을 많이 진행하다 보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고 역시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잖아요. 음향 분야도 마찬가지겠죠.
A. 현장은 정말 사고의 연속이에요. 지금 제가 일하는 뮤지컬 극장을 예로 들자면, 하울링이 정말 자주 일어나요.
‘하울링’은 스피커에서 출력된 어떤 특정 주파수가 반복적으로 돌아서 특정 주파수 대역이 증폭되는 현상이에요.
여기서 ‘소리가 돈다’는 표현은, 스피커와 마이크의 위치에 관한 표현이에요. 보통 무대 위편에 스피커가 있고, 그 앞에 관객이 있죠. 그런데 공연을 하다 보면 아티스트분들이 노래하다가 관객 쪽으로 나올 때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배우의 마이크로 들어가요. 그게 소리가 돈다는 표현이에요. 그런 상황을 제가 미리 알고 있으면 소리가 돌지 않게끔 조작해 둘 수 있지만, 만약 공연 중에 하울링이 일어나면 바로 EQ*로 잡는 작업을 하죠. 사전에 방지한다고 해서 공연 중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처가 빨라야 해요. (*악기나 목소리 따위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조정하는 기기)
Q. 아티스트분들과 호흡을 많이 맞춰 봐야 하는 필요성이 나오는군요.
A. 정말로요. 그리고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늘 느낍니다. ‘아, 이럴 때 사고가 많이 나는구나’라는 감각을 터득할 수 있는 거죠.
Q. 음향 일을 비롯해 조명 일도 종종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향과 조명 두 작업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유사점이라고 하면요, 저는 두 분야의 일이 도파민 중독을 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는, 실수하면 티가 많이 나요. 그리고 잘해야 본전 찾기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항상 긴장한 상태인데, 그 긴장 끝에 공연을 무사히 마쳤을 때 나오는 성취감과 아드레날린이 너무 중독적입니다.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면, 조명과 음향은 작업 스케줄의 흐름이 비슷해요. 디자인과 오퍼레이터가 들어가거든요. 디자인은 말 그대로 설계에 가까운 작업이에요. 조명으로 예를 들자면, 재생된 노래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는 차가운 분위기니까 파랗게 간다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조명기를 사용해서 어떻게 분위기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디자인을 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디자인을 콘솔에 메모리 작업을 한 후, 그 메모리된 것을 공연 때 시행하는 오퍼레이터로 넘어가는 거고요. 음향도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 어떤 효과와 음악을 넣는지를 디자인하고, 그렇게 디자인한 걸 메모리 처리한 후 공연 때 오퍼레이팅을 하는 거죠. 이런 식의 전반적인 작업 스케줄 흐름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 부분들을 제외한 세부적인 요소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조명 오퍼레이팅 일을 했는데, 또 색다르게 재미있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라는 곡을 한다고 했을 때, 3분 남짓 되는 곡 박자에 맞춰서 일일이 조명을 바꿔야 돼요. 노래의 흐름과 배우분들의 액션 타이밍에 마치 저도 같이 공연하듯 직접 조절하는 거죠. 그런데 음향은 노래를 틀고 다음 노래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음향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콘솔을 보고 있어요.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Q. 조명이 조금 더 실시간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거네요.
A. 사실 제가 말한 건 장르가 뮤지컬이어서 더 그럴 거예요.
Q. 장르마다 특성이 많이 다른가요?
A. 콘서트는 사람들이 소리를 들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음향을 꽤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아티스트마다 추구하는 음향 스타일이 있어서 아티스트 전담 엔지니어도 많죠.
Q. 참여했던 작품 중 유진 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A. <Our Photograph>라는 밴드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 학교 실음과 학생들로 이루어진 무대였는데, 제가 모니터 엔지니어 역할을 맡았습니다. 항상 음향 크루로서 일을 해 왔다가 처음 엔지니어로서 책임자의 일을 담당하게 된 무대였죠.
한창 여름방학 때 매주 연습하고, 음향 전공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해야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을지 공부하고, 배우고, 셋업을 어떻게 하고, 철수를 어떻게 하고…….
Q. 말 그대로 청춘이었네요. 여름방학에 모여서 다 같이 무대를 만드는.
A. 그래서 기억에 더 남는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었죠. 물론 실수는 했지만. (웃음) 그때 많은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그래도 끝냈다는 성취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3월 초에 직장인 뮤지컬 <영웅>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조명으로 첫 작업을 수행하게 된 뮤지컬이었는데요. 조명 디자인에도 참여했고, 이틀 간 4회 차의 공연을 오퍼레이팅했어요. 저는 주로 연극이나 밴드를 하면서, 음향 큐가 100개가 넘어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뮤지컬은 500개에 육박하는, 볼륨이 엄청 큰 공연이었던 거예요.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고, 중간에 정말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만둘까’ 생각도 했어요.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끝까지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서 무사히 공연을 잘 마쳤던 기억이 나네요.
Q. 듣기만 하는데도 같이 숨이 차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겠어요.
A.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
Q. 어떻게 보면 극한의 상황에서 작업했던 작품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거네요.
A. 맞아요, 재미있어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도파민 중독을 야기한다고.
Q. 유진 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훗날 올리고 싶은 작품이나 목표로 두고 있는 공연장이 있으신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볼까 합니다.
A. 저는 정말 음악을 가리지 않아요. 그래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생각나는 걸 물어보신다면, ‘DAY6’ 콘서트의 음향 감독을 해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네요.
Q. ‘DAY6’라면 밴드의 콘서트 음향 감독을 한번 해 보고 싶으시다는 거죠?
A. 네, 밴드 음향 일에는 언제나 욕심이 있어요.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해 보자면, 직관적으로 ‘음향 및 무대시설이 기술적으로 정말 뛰어난 공연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영종도에 최근에 ‘인스파이어 아레나’ 라는 공연장이 생겼습니다. 정말 큰 규모의 공연장인데, 언젠가 거기서도 공연을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클래식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좋아해서, 클래식 무대가 자주 열리는 예술의 전당도 오랜 꿈의 공연장 중 하나입니다.
Q. 마지막으로 드리는 디어에이 공식 질문입니다.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A.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예술 없이 살 수 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는 있어요.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맛있는 초코 프레첼을 먹으면 살아갈 힘이 생기잖아요. (웃음)
예술은 저한테 초코 프레첼이에요. 삶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어도, 더 행복하고 풍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죠. 팍팍한 출근의 품 한편에 초코 프레첼 하나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더 풍요로운 것처럼. 예술이 저희 삶의 어느 한 부분에 존재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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