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귀로만 듣지 않고 눈으로도, 몸으로도.
음악을 듣는데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에 묻어나 있었다.
그의 자유롭고도 깊은 상상의 바다에 '잠식'되어 있다보면
고요히 흐르는 물결이 곧장 전신을 타고 돌아 어느새 우리의 일상과 함께 흐르고 있다.
그 속에서 들리는 음표는 삶의 여러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의 점을 닮아 마음을 번지게 하는 물감 한 방울이 된다.
W. 김하랑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 시립대학교 음악학과 작곡과를 전공하고 있는 박주연이라고 합니다.
작곡과에 세부 분야가 있다면 현재 활동하시는 분야에 관해 소개 부탁드려요.
저희 학교는 음악학과로 통칭되어 있고 기악, 성악, 관현악, 작곡으로 구성되어 있어 작곡과에서의 세부분야는 따로 없습니다. 작곡과 친구들은 입시 때는 클래식을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현대음악을 공부하게 되어 폭 넓은 음악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요. 저는 작곡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영상이나 미술도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장르와 결합을 시켜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작곡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적 부모님과 TV 볼 때 주로 음악방송을 봤었는데, 여러 음악을 듣다가 이러한 음악들은 누가 만드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이런 생각들 덕분에 작곡가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어요. 그 뒤로 저는 음악을 많이 듣고 좋아하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가는 게 좋은 것 같고, 저 부분은 저렇게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음악적인 상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작곡에도 자연스레 흥미가 생겼어요. 부모님의 반대로 전공으로 삼기까지는 오랜 설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작곡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공으로 활동하시면서 소개해주신 작품들이 많았는데, 작품들의 제목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먼저 이번에 졸업 연주회 곡으로 무용과 첼로 그리고 전자 음향으로 쓴 <유리 인간>이라는 곡이 있어요. 제 자아상을 무용과 음악으로 표출한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곡 속에 유리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깨지고, 또 깨지는 삶을 살며 고통스러워하고,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가끔 제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감정들로 인해 그 감정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나약해지는 제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음악이 끝나면서 무용가께서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는 모습은 나중에 제가 제 자신을 받아들이고 저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하게 되었어요. 또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는 분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한 모습들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우주의 숨소리>라는 제목의 곡은 2021년 세계 문화예술주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참여한 작품이에요. 우주를 소재로 곡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작곡에서 필드 레코딩이라는 작업이 있는데, 직접 일상의 소리를 녹음한 후 이를 사운드화 시켜서 작업하는 방식이에요.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에서 이 작업을 본 뒤에 직접 필드 레코딩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우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문득 ’우주가 숨을 쉰다면 어떤 숨을 마시고 들이 내쉴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더욱 구체화 시켜서 이 곡에 우주의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아냈어요.
마지막으로 <질식>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영상으로 제작했는데, 스토리와 영상을 직접 만든 뒤에 영상에 맞게 작곡했어요. 우울감이 들 때 바다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잠길 것 같은, 잠식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생각났어요. 그런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산소호흡기를 바다에 던져 놓고,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질식감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 영상은 바다에 잠겨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흐름의 영상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리 인간> 사진 클릭시 유튜브 영상 재생
비하인드를 들으니 작품이 더 깊고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혹시 소개해주신 작품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모두 애정이 가지만, 지금은 가장 최근에 작업한 <유리 인간>이라는 곡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곡을 졸업 연주회에서 발표했는데, 졸업 연주회가 얼마 전에 끝났기 때문에 지금으로써는 제게 가장 많은 잔상을 남기고 있는 작품이에요.
영상과 음악, 여러 방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작가님이 작품 활동하실 때 작업 루틴이나 특징이 있는지 궁금해요.
과 특성상 특별한 루틴은 없지만 평소에 사색하는 것들, 근래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나 저의 상황을 작품으로 표출해내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감정이나 생각, 상황을 다른 예술 장르와 결합했을 때 어떠한 것을 담을 것인가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서 먼저 건반으로 음들을 쳐보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무언의 확신이 들면 그 소리를 제 머릿속에 있는 사운드로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술을 전공으로 삼는 창작자로서,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술은 범위를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우리의 삶에서도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예술은 작게는 오브제나 가구, 제품의 디자인이나 브랜드. 크게는 건축과 오픈 스페이스를 만드는 조경 등 일상에 녹아있는 모든 것들이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과 예술은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과 음악 그리고 미술 작품에서 감정을 위로받고, 공감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이런 선순환을 이루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예술은 하나의 분야라고 생각해요. 표현의 도구에 따라 작품의 결과물이 다양해지기에 예술은 더욱더 사라질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셨을 때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만이 지닌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음악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상대적으로 러닝타임이 길고, 미술 같은 경우도 보고 느끼는 감정과 그 시간 또한 사람마다 다르지만, 음악은 더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해내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사지 않나 싶어요. 사운드적으로도 그렇고 가사가 들어가 있는 곡이면 가사에 좀 더 영향을 받겠지만, 음악은 청각적으로 다가오기에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어요.
작가님이 소개해주신 작품들을 보면 가사가 있는 곡보다 가사가 없는 곡들이 주된 것 같은데, 가사를 덜 쓰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사가 들어가면 대중성이 조금 더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곡이라는 것도 있지만 내용을 분명하게 담다 보니 대중적인 요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작품들은 가사가 없긴 하지만 전하고 싶은 내용을 분명하게 담고 있어요. 가사가 들어가면 더욱 명확해질 수는 있겠지만 가사가 없어도 전달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소개해드린 작품들은 음악은 가사가 없는 음악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저는 가사도 쓰며 대중음악, 가사가 있는 음악도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가사가 있는 음악도 없는 음악도, 가사도 모두 창작물이잖아요. 흔히 예술을 창작할 때 영감을 얻는다고들 하는데, 작가님께서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만약 있다면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미술 작품을 통해서 받는다거나 영화를 보면서 받거나 때로는 저의 과거에서 영감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그 영감이 직접적인 ‘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다가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치고 있는 화성이나 코드 진행에서 영감의 일부분으로 나타나요. 저는 제 주변을 보고 어떤 주제에 대한 저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다 보니, 삶에서 느끼는 모든 게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질식> 사진 클릭시 유튜브 영상 재생
작품 중 <질식>은 직접 영상을 촬영하신 것 같은데, 아까 말씀하셨던 필드 레코딩처럼 작곡에 쓰이는 소리를 직접 녹음하시나요?
저는 밖에서 녹음할 수 있는 장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소리가 나는 것들을 녹음하는데 야외에서 녹음을 하다 보면 소음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우주의 숨소리>라는 곡은 주로 집에서 녹음을 진행했어요. 컵 소리나 물소리, 양치 소리 등 일상적인 소리를 녹음하고 사운드로 변형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질식> 같은 경우에는 자연적인 외부소리와 함께 악기와 조화롭게 음악을 나타내고 싶어서 촬영된 영상의 사운드도 함께 넣었습니다.
제게 필드 레코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작가는 비오는 날이라든지 숲 속이라든지, 주로 바깥에서 많은 소리를 채집하세요. 이렇게 자연스러운 소리를 가지고 변화 시키는 과정이 필드 레코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주의 숨소리> 사진 클릭시 유튜브 영상 재생
작가님께서는 음악만 단독으로 사용하기보다 무용이나 영상처럼 음악을 다른 예술 장르와 같이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음악만 사용할 때와 음악을 다른 예술과 함께 표현했을 때 무엇이 다르다고 느끼시는지, 더 선호하시는 표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일단 다른 요소 없이 음악만을 들었을 때는 음악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음악이 주된 요소로 사용되니까요. 반대로 음악이 다른 요소들과 결합할 때 음악이 백그라운드적 요소로 작용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음악이 빠지게 되면 생각했던 이미지의 구상이 어려워져요. 실제로 단편 영화를 촬영할 때 사운드적인 요소의 존재 혹은 부재에 따라 그 차이를 직접 느낀 적이 있어요. 또 음악은 뮤지컬, 연극, 영화, 관극 등에 많이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음악은 다른 요소들과 어울려 굉장히 많은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둘 중 무엇을 선호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대중적인 음악을 할 때는 (뮤직비디오 안에도 음악이 들어가긴 하지만) 조금 더 음악에 중점을 두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고, 다른 장르와 결합했을 때는 음악과 함께 하는 예술의 시너지가 좋아서 더 선호하게 될 때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내는 시너지가 좋아서 두 방식 모두 흥미롭게 작업하고 있어요.
작곡을 통해서 작가님께서 가장 표현하고 싶은 주제나 단어를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조금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답을 내리자면, ‘삶을 담아내고 싶다’라는 의미가 가장 강한 것 같이요. 저의 생각이나 이런 영감들은 어쨌든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 아니면 제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무형의 생각들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저는 표현을 할 때 삶을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곡이 영향을 주는 작가님의 일상생활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사람들이 말할 때나 노래를 부를 때 피치라고 하죠, 음이 조금 내려가거나 높아지면 조금 거슬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소음에 민감해져서 좀 큰 소리가 많이 들리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영화를 볼 때 스토리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음악을 분석하게 돼요.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스토리도 중요한 주체로 보지만, 한 쪽 귀로는 ‘음악을 이렇게 쓰고 저렇게 썼구나’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앞으로 바라는 모습 또는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그려질까요?
어떻게 보면 꿈에 가까운 질문이네요, 나중에 되고 싶은 사람을 그린다면 저는 사회에 조금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 뱅크시는 길거리에 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미술 경매에서 본인의 작품이 낙찰된 후 분쇄기에 그 작품을 파쇄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이념을 표현했고요, 존 케이지라는 작곡가는 <4분 33초>라는 곡을 통해 음악이 연주를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이 곧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잖아요. 저도 이런 분들처럼 새로운 시선이나 사고방식,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을 나누면서 사회에 보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개인적으로 작가님께서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우리는 반사적으로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경계하고 배척하잖아요. 자신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받아들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도 환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호 주제가 “겨울”이에요. 작가님께서는 겨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겨울이 주는 이미지는 대중적으로는 차가움이 연상되지만 동시에 뜨거운 것도 함께 연상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반되는 이러한 온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겨울이라는 색으로 덮인 자연이 주는 심상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부탁드려요.
저도 여러 번의 연합 동아리 경험이 있는데, 대학생분들이 이런 매거진을 만드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Dear. A 매거진이 예술을 하는 다른 대학생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귀감을 주며 창작자에게 성장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뜻깊은 시간이었고 좋은 경험으로 남을 인터뷰였어요. 감사합니다.
@muju__u
compomuj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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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귀로만 듣지 않고 눈으로도, 몸으로도.
음악을 듣는데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에 묻어나 있었다.
그의 자유롭고도 깊은 상상의 바다에 '잠식'되어 있다보면
고요히 흐르는 물결이 곧장 전신을 타고 돌아 어느새 우리의 일상과 함께 흐르고 있다.
그 속에서 들리는 음표는 삶의 여러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의 점을 닮아 마음을 번지게 하는 물감 한 방울이 된다.
W. 김하랑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 시립대학교 음악학과 작곡과를 전공하고 있는 박주연이라고 합니다.
작곡과에 세부 분야가 있다면 현재 활동하시는 분야에 관해 소개 부탁드려요.
저희 학교는 음악학과로 통칭되어 있고 기악, 성악, 관현악, 작곡으로 구성되어 있어 작곡과에서의 세부분야는 따로 없습니다. 작곡과 친구들은 입시 때는 클래식을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현대음악을 공부하게 되어 폭 넓은 음악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요. 저는 작곡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영상이나 미술도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장르와 결합을 시켜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작곡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적 부모님과 TV 볼 때 주로 음악방송을 봤었는데, 여러 음악을 듣다가 이러한 음악들은 누가 만드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이런 생각들 덕분에 작곡가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어요. 그 뒤로 저는 음악을 많이 듣고 좋아하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가는 게 좋은 것 같고, 저 부분은 저렇게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음악적인 상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작곡에도 자연스레 흥미가 생겼어요. 부모님의 반대로 전공으로 삼기까지는 오랜 설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작곡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공으로 활동하시면서 소개해주신 작품들이 많았는데, 작품들의 제목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먼저 이번에 졸업 연주회 곡으로 무용과 첼로 그리고 전자 음향으로 쓴 <유리 인간>이라는 곡이 있어요. 제 자아상을 무용과 음악으로 표출한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곡 속에 유리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깨지고, 또 깨지는 삶을 살며 고통스러워하고,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가끔 제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감정들로 인해 그 감정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나약해지는 제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음악이 끝나면서 무용가께서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는 모습은 나중에 제가 제 자신을 받아들이고 저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하게 되었어요. 또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는 분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한 모습들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우주의 숨소리>라는 제목의 곡은 2021년 세계 문화예술주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참여한 작품이에요. 우주를 소재로 곡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작곡에서 필드 레코딩이라는 작업이 있는데, 직접 일상의 소리를 녹음한 후 이를 사운드화 시켜서 작업하는 방식이에요.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에서 이 작업을 본 뒤에 직접 필드 레코딩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우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문득 ’우주가 숨을 쉰다면 어떤 숨을 마시고 들이 내쉴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더욱 구체화 시켜서 이 곡에 우주의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아냈어요.
마지막으로 <질식>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영상으로 제작했는데, 스토리와 영상을 직접 만든 뒤에 영상에 맞게 작곡했어요. 우울감이 들 때 바다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잠길 것 같은, 잠식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생각났어요. 그런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산소호흡기를 바다에 던져 놓고,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질식감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 영상은 바다에 잠겨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흐름의 영상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리 인간> 사진 클릭시 유튜브 영상 재생
비하인드를 들으니 작품이 더 깊고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혹시 소개해주신 작품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모두 애정이 가지만, 지금은 가장 최근에 작업한 <유리 인간>이라는 곡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곡을 졸업 연주회에서 발표했는데, 졸업 연주회가 얼마 전에 끝났기 때문에 지금으로써는 제게 가장 많은 잔상을 남기고 있는 작품이에요.
영상과 음악, 여러 방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작가님이 작품 활동하실 때 작업 루틴이나 특징이 있는지 궁금해요.
과 특성상 특별한 루틴은 없지만 평소에 사색하는 것들, 근래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나 저의 상황을 작품으로 표출해내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감정이나 생각, 상황을 다른 예술 장르와 결합했을 때 어떠한 것을 담을 것인가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서 먼저 건반으로 음들을 쳐보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무언의 확신이 들면 그 소리를 제 머릿속에 있는 사운드로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술을 전공으로 삼는 창작자로서, 예술이 우리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술은 범위를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우리의 삶에서도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예술은 작게는 오브제나 가구, 제품의 디자인이나 브랜드. 크게는 건축과 오픈 스페이스를 만드는 조경 등 일상에 녹아있는 모든 것들이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과 예술은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과 음악 그리고 미술 작품에서 감정을 위로받고, 공감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이런 선순환을 이루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예술은 하나의 분야라고 생각해요. 표현의 도구에 따라 작품의 결과물이 다양해지기에 예술은 더욱더 사라질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셨을 때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만이 지닌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음악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상대적으로 러닝타임이 길고, 미술 같은 경우도 보고 느끼는 감정과 그 시간 또한 사람마다 다르지만, 음악은 더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해내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사지 않나 싶어요. 사운드적으로도 그렇고 가사가 들어가 있는 곡이면 가사에 좀 더 영향을 받겠지만, 음악은 청각적으로 다가오기에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어요.
작가님이 소개해주신 작품들을 보면 가사가 있는 곡보다 가사가 없는 곡들이 주된 것 같은데, 가사를 덜 쓰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사가 들어가면 대중성이 조금 더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곡이라는 것도 있지만 내용을 분명하게 담다 보니 대중적인 요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작품들은 가사가 없긴 하지만 전하고 싶은 내용을 분명하게 담고 있어요. 가사가 들어가면 더욱 명확해질 수는 있겠지만 가사가 없어도 전달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소개해드린 작품들은 음악은 가사가 없는 음악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저는 가사도 쓰며 대중음악, 가사가 있는 음악도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가사가 있는 음악도 없는 음악도, 가사도 모두 창작물이잖아요. 흔히 예술을 창작할 때 영감을 얻는다고들 하는데, 작가님께서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만약 있다면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미술 작품을 통해서 받는다거나 영화를 보면서 받거나 때로는 저의 과거에서 영감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그 영감이 직접적인 ‘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다가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치고 있는 화성이나 코드 진행에서 영감의 일부분으로 나타나요. 저는 제 주변을 보고 어떤 주제에 대한 저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다 보니, 삶에서 느끼는 모든 게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질식> 사진 클릭시 유튜브 영상 재생
작품 중 <질식>은 직접 영상을 촬영하신 것 같은데, 아까 말씀하셨던 필드 레코딩처럼 작곡에 쓰이는 소리를 직접 녹음하시나요?
저는 밖에서 녹음할 수 있는 장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소리가 나는 것들을 녹음하는데 야외에서 녹음을 하다 보면 소음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우주의 숨소리>라는 곡은 주로 집에서 녹음을 진행했어요. 컵 소리나 물소리, 양치 소리 등 일상적인 소리를 녹음하고 사운드로 변형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질식> 같은 경우에는 자연적인 외부소리와 함께 악기와 조화롭게 음악을 나타내고 싶어서 촬영된 영상의 사운드도 함께 넣었습니다.
제게 필드 레코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작가는 비오는 날이라든지 숲 속이라든지, 주로 바깥에서 많은 소리를 채집하세요. 이렇게 자연스러운 소리를 가지고 변화 시키는 과정이 필드 레코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주의 숨소리> 사진 클릭시 유튜브 영상 재생
작가님께서는 음악만 단독으로 사용하기보다 무용이나 영상처럼 음악을 다른 예술 장르와 같이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음악만 사용할 때와 음악을 다른 예술과 함께 표현했을 때 무엇이 다르다고 느끼시는지, 더 선호하시는 표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일단 다른 요소 없이 음악만을 들었을 때는 음악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음악이 주된 요소로 사용되니까요. 반대로 음악이 다른 요소들과 결합할 때 음악이 백그라운드적 요소로 작용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음악이 빠지게 되면 생각했던 이미지의 구상이 어려워져요. 실제로 단편 영화를 촬영할 때 사운드적인 요소의 존재 혹은 부재에 따라 그 차이를 직접 느낀 적이 있어요. 또 음악은 뮤지컬, 연극, 영화, 관극 등에 많이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음악은 다른 요소들과 어울려 굉장히 많은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둘 중 무엇을 선호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대중적인 음악을 할 때는 (뮤직비디오 안에도 음악이 들어가긴 하지만) 조금 더 음악에 중점을 두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고, 다른 장르와 결합했을 때는 음악과 함께 하는 예술의 시너지가 좋아서 더 선호하게 될 때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내는 시너지가 좋아서 두 방식 모두 흥미롭게 작업하고 있어요.
작곡을 통해서 작가님께서 가장 표현하고 싶은 주제나 단어를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조금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답을 내리자면, ‘삶을 담아내고 싶다’라는 의미가 가장 강한 것 같이요. 저의 생각이나 이런 영감들은 어쨌든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 아니면 제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무형의 생각들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저는 표현을 할 때 삶을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곡이 영향을 주는 작가님의 일상생활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사람들이 말할 때나 노래를 부를 때 피치라고 하죠, 음이 조금 내려가거나 높아지면 조금 거슬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소음에 민감해져서 좀 큰 소리가 많이 들리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영화를 볼 때 스토리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음악을 분석하게 돼요.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스토리도 중요한 주체로 보지만, 한 쪽 귀로는 ‘음악을 이렇게 쓰고 저렇게 썼구나’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앞으로 바라는 모습 또는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그려질까요?
어떻게 보면 꿈에 가까운 질문이네요, 나중에 되고 싶은 사람을 그린다면 저는 사회에 조금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 뱅크시는 길거리에 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미술 경매에서 본인의 작품이 낙찰된 후 분쇄기에 그 작품을 파쇄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이념을 표현했고요, 존 케이지라는 작곡가는 <4분 33초>라는 곡을 통해 음악이 연주를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이 곧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잖아요. 저도 이런 분들처럼 새로운 시선이나 사고방식,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을 나누면서 사회에 보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개인적으로 작가님께서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우리는 반사적으로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경계하고 배척하잖아요. 자신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받아들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도 환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호 주제가 “겨울”이에요. 작가님께서는 겨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겨울이 주는 이미지는 대중적으로는 차가움이 연상되지만 동시에 뜨거운 것도 함께 연상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반되는 이러한 온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겨울이라는 색으로 덮인 자연이 주는 심상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부탁드려요.
저도 여러 번의 연합 동아리 경험이 있는데, 대학생분들이 이런 매거진을 만드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Dear. A 매거진이 예술을 하는 다른 대학생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귀감을 주며 창작자에게 성장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뜻깊은 시간이었고 좋은 경험으로 남을 인터뷰였어요. 감사합니다.
@muju_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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