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예술이 지나온 길, 예술은 정의가 가능한가?


<예술이 지나온 길>



작품을 보면 내가 투영되어 보일 때가 있다. 작품에서 우리를 볼 수 있듯, 예술은 곧 삶이다.

그러나 예술을 정말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삶의 전반에 영향을 주는 예술에 범위가 존재할까?

 모호한 질문을 안고 예술이 지나온 길을 다시 걸어보고자 한다

w. 황이연.



 

# 예술은 정의 가능한가?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감정 활동의 산물이다. 예술의 초기 모습은 현실세계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과거에는 거울에 비추는 듯이 실체가 있는 것을 그대로 구현해내는 것, 그것을 예술의 정의라고 보았다. 때문에 예술의 중요한 요소는 창의성보다 사실성, 정확성이었고 예술가들은 현실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한 사실적인 표현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의 본래 목적은 사진 기술이 등장하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기존의 방식 외에도 영상을 촬영하거나, 음악을 녹음하여 대중들에게 공연하는 등 예술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팝아트, 플럭서스,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 등 새로운 형태의 현대미술이 도래하였다. 현대미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예술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어디까지가 예술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로 인해 현대미술에 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는 뒤샹의 <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뒤샹’ 혹은 ‘샘’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전시장에 우두커니 있는 소변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지만, 이를 계기로 예술의 정의가 더욱 불명확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예술을 한 문장에 가두기에는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의도나 이유가 내재되어 있는 심미적으로 표현된 모든 것에 범위를 두게 되었다. 따라서 예술의 정의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예술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에는 사람의 주관과 해석이 1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적 문제, 개인의 고뇌나 감정 등 공공연한 소재들이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독창적으로 재해석되고 표현된다. 이는 ‘예술=비평’으로 보는 다원주의 미학과 연결된다. 다원주의란,  사회는 여러 독립적인 이익 집단이나 결사체로 이루어져 있기에 권력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기 보다는 그 집단의 경쟁, 갈등, 협력 등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비평의 정의는 ‘예술의 가치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며 논하는 일’ 이다. 때문에 다원주의 관점에서 비평은 집단의 발전을 위해 이루어지는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따라서 비평을 독창적인 자기 주관이 담긴 2차 창작물로 평가한다. 비평가가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몰입하여 감상하고 이를 평가하는 과정 중에 작품의 작가도 인지하지 못한 독창성을 찾아 2차 창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을 시작하기 이전에 1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주관과 해석이 이러한 비평이 된다. 즉, 예술은 예술가의 주관을 겸비한 2차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고, 작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 표현의 도구이기도 하다.


예술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예술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는 있지만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앞서 보인 사례와 같이 예술은 때에 따라 잠정적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작가의 기준과 작품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에 절대적으로 나타낼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은 이런 자율성 덕분에 세계 시민사회에서 인간성 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소통과 합의를 가능케하고, 의식을 육성하는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예술의 정의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기 바란다.



 

# 예술의 변화

 

1. 전시예술의 변화,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관객 참여형 전시까지

 

예술이 지나온 길은 인류가 걸어온 길과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방대한 이야기들 중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사회 속에서 예술은 시각 예술, 전시 예술, 공연 예술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우리는 예술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공연, 시각, 전시예술의 기원은 생각보다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의 대중들도 현대인들처럼 시각, 전시, 공연 예술을 즐겼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오늘날의 전시예술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 전시 시장은 그 크기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5월 기준 네이버에 ‘전시’를 검색했을 때 보이는 전시는 서울 지역만 해도 대략 300건에 달한다. 과거의 전시와 비교하자면, 과거에는 회화 위주의 전시로 관객들은 단순히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정도에 그쳤다. 또한, 일반 서민보단 귀족 등 높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향유하는 문화였다. 반면 지금의 전시는 미술관에 국한되지 않고 백화점, 낡은 교회, 길목 등 장소에도 제한을 두지 않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SNS의 등장과 함께 직접 사진을 찍으며 체험도 할 수 있는 ‘관객참여형 전시’로 흐름이 변화하기도 했다. 관객참여형 전시 중 SNS형 전시가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런 전시는 감상 태도도 완전히 바꾸었다. 도슨트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관람객은 일행들과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거나 혼자 천천히 전시를 감상했던 과거와 달리, 인증샷을 찍으면 바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등 관뢈문화가 완전히 변화했다.






(출처: 바티망 인스타그램)

대표적인 전시로는 작년 노들섬에서 전시됐던 현대미술의 아이콘,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바티망’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설치미술과 사진 그리고 미디어 아트로 이뤄져 있으며, 모든 관객들이 주체가 되어 즐기고 사진으로 남기기에 최적화된 전시이다. 그의 작품 중 <빌딩>은 빌딩 모형 위에 대형 거울을 설치하여 관객이 직접 빌딩에 매달린 모습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작품은 모두 ‘이머시브 아트’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관객을 에워싸는 대형 작품들로 하여금 전시의 몰입감을 더 높여준다.








(출처: 그라운드 시소 인스타그램)

다음으로 ‘웨스앤더슨 사진전’이다. 기존의 사진전은 벽면에 사진을 걸어두는 단순한 방식이었다면, 웨스앤더슨을 비롯한 오늘날의 사진전은 사진 테마에 맞게 공간을 꾸며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기차 창가의 풍경을 스크린에 띄어 놓고 해당 공간을 기차역으로 연출하는 것이 그 예이다. 관객들은 사진 속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되고, SNS에 올린 게시글 이 홍보 효과를 내며 더 많은 관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전시에도 한계가 있다. 전시의 목적이 단순히 스튜디오의 역할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시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되면 정작 작품의 질과 집중도는 하락하고 전시를 진중하게 감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더불어 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게재한 화려한 광고와 달리 정작 실제 전시된 작품 수가 적었다는 등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관객참여형’ 예술이라는 타이틀도 좋지만 전시의 본질도 잃지 않는다면 ‘관객’과 ‘퀄리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 마술로 일컬어졌던 시각예술의 과거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이미지들은 상당 부분에서 착시 현상이나 시각적 환상에 근거하고 있다. 움직임의 환영을 보는 영화 관람도 이런 착시 현상을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보는 것’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은 르네상스 시대에 망원경의 발명 이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시각 기구와 장치들은 과학기술의 향상과 더불어 발달되어 왔으며, 오늘날 시각문화(visual culture)의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18~19세기에는 과연 어떻게 영상문화를 즐겼을까?


10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그림자 극인 ‘피잉시(皮影戏)’는 가죽이나 종이로 만든 다채로운 인형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공연하는 형태로, 연주와 노래가 곁들여진다. 이러한 그림자 극을 이어 중국의 <불꽃놀이>가 생성되었다. 그림 뒤에서 불빛을 비추면 그림 앞에서는 시각적 환상을 자극하는 화려한 그림이 생겨난다.


또한, 마술환등(Magica)은 근대의 영상문화를 주도하던 핵심적인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 기구를 통해 사람이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슬라이드들로 영상을 보여주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여러 장의 그림들이 연결되며(디졸브 효과) 현재의 동영상처럼 보여지게 발전되었다. 





초기 애니메이션/ ·머이브릿지의 저서와 그가 찍은 것을 상영하는 DVD 화면

사진출처 해외문예 | 함부르크〈영상의 역사〉전

(말이 달리는 모습을 찍음으로써 최초로 생물의 움직임을 필름에 기록한 머이브릿지의 책과 그림.)


18~19세기 때에 사람들은 이런 그림상자와 마술환등을 보고 즐겼다. 이때, ‘영상을 본다’는 것은 마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영상문화는 인간의 일상생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놀이기구나 오락들에 적용되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기의 영화 영사기들을 진열해 놓은 전시장

사진출처 해외문예 | 함부르크〈영상의 역사〉전

 

시각 기구와 시각문화의 발전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전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 이야기로 시각예술의 발전을 살펴보자. 2009년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화제작이었던 영화 <아바타>는 초기 단계의 가상 제작 프로세스(Virtual Production Process)를 처음으로 개발 도입하여 제작된 사례이다. 아바타로 시작된 초기 가상 제작 기술은 존 파브로 감독의 (T영화 <라이언 킹>과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만달로리안> 같은 최근 작품에서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상 제작 기술은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더욱 빛나고 있다. 영상 문화가 만개된 현 시대에 ‘영상의 역사’를 이렇게 둘러보며, 영상 매체의 기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았다.




 

James Cameron in Avatar (2009). Picture: Mark Fellman

Avatar (2009) behind the scenes. Picture: Mark Fellman

출처 Y.M.CINEMA MAGAZINE





3. 고대의 공연예술, 드라마와 서커스

 

공연예술은 예술적인 표현과 창작을 곁들인 대중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감정적, 정신적인 공감과 인식을 이끌어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현대에서는 연극, 음악회, 무용 공연, 미술전시 등이 공연예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공연장에서 감상하는 공연 문화가 잠시 주춤하였지만, 매체의 발달로 직접 현장에 가서 감상해야 했던 공연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는 등 공간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공연 예술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공연예술의 시작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 ‘드라마’가 있다. 연극과 가까운 형태로 공연예술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드라마는 비극(Tragedy), 희극(Comedy)으로 나뉜다. 비극은 인생의 슬픔과 비참함을 제재로 하여 주인공의 파멸, 패배, 죽음 따위의 불행한 결말을 갖는 극 형식을 뜻한다. 당시의 대중적인 주제로는 신화, 전설, 역사 등이 있고, 주로 엘리시움(Elysium)의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조종하고 인간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영국 극립극장의 공연 <오레스테이아>에서 ‘카산드라’와 코러스. (출처: nobby clark)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클리타임네스타. (출처: https://th.bing.com/th/id/OIP.vNORFavQ0Q9b07_dgEx9mwHaHS?pid=ImgDet&w=84&h=84&c=7&dpr=1.5 )


당시 대표적인 비극 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의 작품들은 비극을 통한 깨달음을 주며, 특히 <오레스테이아>는 살인으로 이어지던 복수를 법이라는 이성적인 도구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기존의 야만적인 시대를 비판하고 이성을 통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다.


희극은 풍자적이며, 권력자들의 허영과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주로 진행되었다. 인간의 실수와 혼란을 다루며 불륜, 유머, 낙천주의 등의 주제가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희극 작가로는 아리스토파네스, 메난드로스 등이 있으며, 그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구름 (Nephelai)>이 후대까지 전해진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을 재해석한 현대극. (출처: 뜬, 구름 극공작소 페이스북)


<구름>은 기원전 423년경에 쓰여진 작품으로 소피스트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구름>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돈만 주면 젊은이들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소피스트의 원흉으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다. 아리스토파네스 작품은 대개 비논리적인 전개와 느슨한 구성을 보이지만, 재치있는 풍자와 참신한 소재로 현재까지도 다양하게 재해석되어 공연되고 있다.


그리스의 가면. (출처: 최용훈, 페르소나, 그리스 연극의 가면)


이 외에도 다양한 비극과 희극 작품들이 대중 앞에서 공연되었으며, 마스크를 착용한 배우들이 대사와 동작으로 연기를 펼친 후 이어지는 코러스의 합창으로 내용을 전달했다. 대사 뒤에 이루어지는 합창의 형태는 현대의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연은 비극 경연대회인 디오니소스(Dionysia) 축제의 일환으로 열렸으며, 이 축제는 그리스의 술과 환란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종교적인 의식과 예술의 중요한 행사였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의 공연은 현재에도 연극 예술의 기초로 여겨지며, 그 영향력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Circus Maximus의 유적. (출처https://romesite.com/images/circus-maximus.jpg)


또 다른 고대의 공연예술로는 로마제국의 ‘서커스’를 들 수 있다. 현대의 ‘서커스’는 곡예와 각종 묘기들을 관람하는 형태이지만, 고대 로마의 ‘서커스’는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대규모의 전차 경기장 이름으로 서커스 막시무스(Circo Massimo)로 불렸다. 이곳에서는 전차 경기나 말 경주 등 각종 오락과 경기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로마 제국은 승마와 말 경주를 중요한 군사적, 사회적 활동으로 여겼기에 ‘서커스’는 로마 제국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이벤트였으며, 절대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가졌다고 한다.




검투사의 모습이 담긴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 (출처https://ancient-rome.info/images/Ancient-Roman-Gladiators1.jpg)


특히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들에게 빵과 서커스 관람권을 무료로 제공하는 로마의 무상 복지 정책으로 인해 로마에서 공연 관람 문화가 크게 확산되었다. 서커스에서는 말에 올라타서 선수들이 다양한 기교를 선보이는 약술 경기, 그리고 전투와 전쟁 재현을 위한 검술 경기 등 스릴감 있는 경기가 이뤄졌다. 또한 현대의 서커스와 비슷한 점은 동물을 이용한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사자, 곰, 코끼리 등의 큰 동물들이 서커스 아레나의 관중들 앞에서 특별한 기교와 동작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서커스는 다양한 예술과 스포츠 요소를 결합한 다목적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커스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인 축제와 결합되어 열렸으며, 이는 로마 신화 속 신들에 대한 예배와 함께 이루어져 로마제국의 힘과 영광을 상징했다고 전해진다.





# 현대 예술의 이슈와 분석


서울역 고가공원에 설치된 ‘슈즈 트리’… 흉물인가 예술인가

2017년, 서울역 고가공원에 ‘슈즈 트리’ 라 불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3만 켤레의 헌 신발로 이루어진 높이 17m, 길이 100m의 거대한 작품이다. 정부가 1억원이 넘는 금액을 들인데다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가 디자인한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흉물이라는 비판과 철거 요청이 쇄도하였다. 구조물의 디자인이 미학적이기 보다는 쓰레기 더미에 가깝게 보이고, 헌 신발을 야외에 설치하였으니 악취와 해충 문제 등 시민들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슈즈 트리’를 본 시민들은 ‘공공미술 작품이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이나 힐링을 찾기 힘들다.’ 라는 반응을 보이며 주변과 잘 어울리는 조경으로 디자인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슈즈트리의 전경. (출처: https://photohistory.tistory.com/m/17223)


‘슈즈 트리’의 사회적인 논란은 예술의 공공성과 자유성이 대립되는 문제이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제작된 공공예술은 시민들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아니면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의견이 나뉘어지고 있다.


예술의 공공성은 예술이 대중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마치고 참여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예술의 접근성, 예술의 사회적 역할, 정부의 예술에 대한 개입, 대중의 수용과 의견 다양성 등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공공예술은 일부 단체나 개인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 있어 사회의 관심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예술의 공공성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작가는 항상 사회적 이슈나 감상자들의 반응에 귀 기울여야 한다.




(출처: https://photohistory.tistory.com/m/17223)


결국 시민들의 반발로 인해 ‘슈즈 트리’는 전시 9일 만에 철거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술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주로 이러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예술이 항상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며, ‘슈즈 트리’가 ‘정크 아트’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정크 아트’란 재활용 재료, 즉 쓰레기로 인식되는 것들을 모아서 만든 예술이기에 ‘슈즈 트리’가 헌 신발로 구성된 것에 대해 불쾌감을 제시하며 반대하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작품이 완성되기 전, 악의적으로 편집된 기사와 작품의 단편적인 면 만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슈즈트리에서 신발을 화분으로 사용한 모습. (출처: https://photohistory.tistory.com/m/17223)



한편, ‘슈즈 트리’의 황지해 작가는 “서울역 광장이 만남과 이별의 공간이고, 노숙자나 수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곳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 것이었다. 작품이 온전히 완성되고 꽃과 풀이 심겨진 후 평가해도 늦지 않은데, 작품 설치 도중에 미리 보도되어 매우 안타깝다.”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작품에 관한 시민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작품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여기겠다고 밝였다.


예술, 특히 공공예술의 경우 대중들의 다양한 평가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분명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중 또한 단순히 작품의 겉모습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작품의 일면만을 보고 이루어지는 성급하고 과도한 비판은 오히려 예술의 발전을 저해한다. 작품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과 시각들이 서로 존중되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 예술의 검열, 변화의 징조


예술은 다양한 사회적 시선과 의견들을 작품에 반영하곤 하는데, 사회적으로 비난받으며 예술에서도 금기시되던 주제가 있다. 이러한 주제의 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적 논쟁과 예술의 검열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등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시대적 아이콘이 있다. 그 주인공인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여성, 인종, 성소수자와 같은 문제들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투영했다. 오브제화 된 남성 성기, 굵은 쇠사슬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 항문에 꽂고 대담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 검은색 구강성교 가죽 장치로 신체를 뒤덮은 사진 등 문제의 포트폴리오 연작들이 있다. 당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내 20세기 중반 뉴욕의 성적 욕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후대에 와서는 ‘사진의 범주를 초월하여 일상성 안에서 마술적 환상성과 영화적 서사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9년,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사망한 뒤 워싱턴예술프로젝트에서 열린 회고전 <로버트 메이플소프: 완벽한 순간(Robert Mapplethorpe: The Perfect Moment)>에는 3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작품에 담긴 동성애적 페티시, 에이즈, 꽃으로 은유한 성기, 사도마조히즘 같은 소재는 자유의 물결이 거세던 당시 미국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파격적이었다. 미국 신시내티 현대미술센터(CAC: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는 메이플소프의 사진전을 개최했으나 이에 반발한 사람들은 반대시위를 벌이고 CAC 관장 데니스 베리를 ‘외설(obscenity)’죄목으로 고발했다.


사회적 주체는 크게 다수자와 소수자로 나뉜다. 다수자란 백인 남성 이성애자, 엘리트 등 사회가 정한 표준 모델에 부합하는 사람들인 반면 소수자 또는 타자로 분류되는 존재는 이 사회 표준모델에서 벗어난 모든 이를 지칭한다. 다수자에 의해 경계 밖으로 내몰렸던 타자의 인권이 보장을 받기까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1969년 미국의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과 연이은 게이해방전선의 결성(Gay Liberation Front) 등과 같은 사건을 계기로 동성애자들이 문학 미술, 사회운동 등에서 적극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치적 입장과 예술적 표현의 경계가 허물어져 결합되면서 성소수자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표현하게 되고 동성애를 하나의 성적 지향으로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 방송 매체가 발달하면서 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이 대중에게 자신들의 일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도 증가했다. 본인의 성적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 혹은 유명인들의 동성연애 관련 기사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양가적이다. 오늘날의 다원주의적 사회에 당면한 사회적 소수자의 그 위치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야 한다.

 

Ai가 그림을? 예술계의 새로운 흐름

챗 GPT의 등장으로 편리함이 더 증가했지만 인간의 영역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예술만큼은 대체될 수 없다고 여겨졌지만 Ai가 그림을 그려주고 음악, 소설도 쓰는 등 예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출처: DALL-E 홈페이지)

예술계에 뻗어있는 이 혼란의 대표적인 예가 ‘DALL-E’이다. Chat GPT와 같은 Open Ai에 속한 프로그램으로, 영어로 문장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그림을 그려준다. 상업 혹은 비공식적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놀랍다. 실제로 한 장난감 회사는 DALL-E를 이용해 자동차 장난감 휠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텍스트만으로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디자이너의 역할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출처: 아트넷 인스타그램)

Ai의 작품이 고가로 거래된 사례가 있는데, 바로 <에드몽 벨라미의 초상화>이다. 19세기 인상주의 작가인 세잔의 작품과 같은 분위기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예상 낙찰가보다 훨씬 높은 43만2500달러(약 5억원)에 낙찰되어 예술계에 큰 이슈를 만들었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우선 ‘Ai도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이다. 예컨대 그림의 경우 모두 창작자의 의도가 있다. 어린이가 그린 작품에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Ai는 기존의 그림을 학습한 후 조합을 하는 방식이기에 현재까지의 기술력으로 보면 그림에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Ai의 작품들이 설명이 가능한지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Ai가 그린 작품의 저작권에 대한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Ai는 기존의 그림을 학습하여, 회사나 개인이나 소속된 프로그램이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그림을 그려준다. 그렇다면 저작권은 샘플 그림의 작가, Ai 제작 프로그래머, 프로그램 사용자 중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빠른 트렌드의 변화 속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중들에게 현재의 예술과 다른 형태의 작품인 Ai의 작품이 큰 흥미로 다가올 것이다. 예술의 폭을 안전하게 확장하고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예술의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선 급진적인 성장 속 발생한 윤리적 공백에 대한 해결책이 우선적으로 제시돼야 할 것이다.






editor. 이루아, 한다현, 황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