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호] 제 95회 아카데미



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사건에 휘말린 에블린은 자신이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개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각 세계 속 에블린의 능력을 빌려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영화<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작품상을 비롯해 7관왕을 거머쥐었다. 10개 부문 11개 상에 최다 노미네이트되어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남녀조연상까지 수상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는 SF, 액션, 판타지, 코미디 장르의 영화로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커티스 등이 출연하였으며 주연 배우인 양자경은 동양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는 백인과 흑인 배우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동양계 배우가 주요 역할을 맡기 어려운데,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인 홍콩 배우 양자경과 베트남계 화교 출신인 미국 배우 키호이 콴이 주인공을 맡아 영화에 신선함을 더했다. 로튼 토마토 지수 신선도 94%와 관객 점수 86%를 받으며 영화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인공지는 챗봇 챗GPT로 분석한 영화의 흥행 요소는 무엇일까? B급 유머 코드뿐만 아니라 마블이나 DC에서 주로 다루는 멀티버스 장르에 휴머니즘 메시지를 더해 관객을 감동시켰다. 액션과 SF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새로운 장르를 창출하였으며 고도의 시각적 효과와 인상적인 장면들이 관객의 호응을 얻었을 것이라 제시했다. 다음으로는 작품에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을 섭외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 가능성이다. 과거 서구권에서는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중적인 영화에서 출연하는 경우가 적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러한 추세가 변화하며 더 많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목받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은 현재 서구권의 대중들이 공감하는 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챗GPT는 분석했다.


2.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서부 전선에 합류한 17살 파울. 초기의 들뜬 기분은 곧 참호에서의 삶이라는 암울한 현실로 인해 산산이 조각나 버린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독점 영화로 1930년 판과 1979년 판에 이은 세 번째 영화화이다. 에드바르트 베르거가 감독을 맡았으며, 알브레히트 슈흐, 에딘 하사노빅, 다니엘 브륄 등이 출연하였다. 독일에서 제작한 영화이기 때문에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독일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촬영상, 국제장편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7관왕에 이어 4관왕을 차지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1%와 관객 점수 90%를 받은 만큼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좋은 영화이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참혹한 전장과 독일-프랑스의 협정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로 진행되며, 원작의 사건들을 가져오되 사건의 순서를 재배치하고 일부 상황을 과감히 생략한 뒤 전쟁과 협상단의 상황 묘사에 살을 붙였다는 점에서 1930년, 1979년의 버전과 차별화된다.


3. 이니셰린의 밴시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 파우릭과 콜름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 정도로 다정하고 돈독한 사이다. 어느 날, 돌연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콜름. 절교를 받아들일 수 없는 파우릭은 그를 찾아가 이유를 묻지만 돌아오는 건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다’는 변심한 친구의 차가운 한마디일 뿐이다. 관계를 회복해 보려 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가기만 하고 평온했던 그들의 일상과 마을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절교 선언, 평온했던 삶이 뜨겁게 타오른다.


아일랜드가 낳은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는 콜린 퍼렐, 브렌단 글리슨, 케리 콘돈 등의 배우들이 출연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6%와 관객 점수 75%를 받은 작품으로,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편집상까지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우정과 단절, 외로움, 슬픔, 죽음, 애도, 폭력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주제들을 잘 녹여냈다는 평이다. 영화의 배경은 아일랜드의 내전 시기로,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우정 이야기를 아일랜드의 역사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그려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사색하게 한다. 작중 콜름이 작곡한 노래의 제목이자, 영화의 제목인 <이니셰린의 밴시>는 이니셰린에는 밴시 귀신이 없다는 대사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4. 파벨만스

<파벨만스>는 제95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미술상 총 7개의 분야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영화로, 영화화를 위해 도입된 설정 몇 가지를 제외하면 실제 자신의 청소년기에 겪었던 일들이 거의 그대로 담겨있다.

주인공 새미와 스필버그가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영상을 찍으며 영화 감독의 꿈을 키운 점, 처음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기차의 충돌 장면인 점, 동네 극장에서 자신의 작품 상영회를 연 점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술과 가족은 인간을 반으로 갈라놓는다는 새미의 삼촌 보리스의 말처럼, 영화는 끊임없이 예술과 삶의 관계를 보여준다.


5. 애프터썬

<애프터썬>의 폴 메스칼이 영화의 ‘캘럼’ 역으로 제9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성인이 된 소피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애프터썬>은 스코틀랜드 출신 영화감독 샬롯 웰스의 데뷔작으로,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와 실제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오래된 캠코더 속에 담긴 아버지와 딸의 20여 년 전의 튀르키예 여행을 담고 있다. 이혼한 부모님 중 어머니와 함께 하는 11살 소피는 아버지 캘럼과 단 둘이 튀르키예로 여름방학 여행을 떠난다. 소피와 캘럼은 매일 같이 수영을 하고, 당구를 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번 여행이 너무나 즐거운 소피와는 달리, 캘럼은 종종 11살 소피가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애프터썬>은 여행에서의 아버지와 딸의 추억의 시간이 지나고 그 당시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 딸이 다시 곱씹어 보았을 때 알아차리게 되는 불안과 우울을 담은 영화인 동시에 기억과 기록을 넘나드는 연출을 뽐내는 작품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대한 각 에디터들의 리뷰


-소연

“날 선 현대사회에서 다정함을 찾는다는 것”


가끔 아침에 눈을 뜨면 삶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비가시적인 여러 일과 감정들로 아침부터 고달파진다. 삶은 지긋지긋하게도 지루하며 끈질기지만 아쉬울 정도로 짧고 조마조마하다. 삶에 압도당한다는 기분이 들 때 가장 곤란한 점은 다른 문제들과는 달리 절대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약한 인간의 몸으로 그 압력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만 한다. 이러한 삶의 특성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에게도 해당된다. 영화에서 에블린의 삶은 굉장히 정신없이 흘러간다.


세금 신고를 잘못해 세탁소는 탈세 혐의로 가압류 당하기 일보직전이며, 국세청 조사관은 마치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에블린을 매섭게 몰아붙인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도 모셔야 하는데 딸인 조이는 왠지 모르게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고 항상 긍정적인 남편은 귀찮기만 하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정신없는 삶을 마치 투사처럼 헤쳐나간다. 동양계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투쟁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투쟁했으며 자잘하게 닥치는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투쟁하고 있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투사로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에블린에게 어느 날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난다. 에블린은 그가 말해주는 멀티버스니 다중우주니 하는 것들은 모르겠고, 여전히 정신없을 뿐이다.


그렇게 정신없는 가운데 여러 우주를 방문하며 보게 된 다른 우주의 에블린들은 너무나 멋지다. 웨이먼드를 따라가지 않고 배우가 된 에블린, 유명 음식점의 간판 요리사인 에블린 … ‘만약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는 상상일 것이다. 특히나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할수록 상상은 더 다양해지고 구체화된다.

지금 자신이 가장 최악의 다중우주라는 이야기를 들은 에블린이 허탈함, 혹은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삶을 향한 지금까지의 투쟁이 무의미해짐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렇게 허무함을 느낀 에블린은 모든 우주에 있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에블린과 조부가 블랙홀로 들어가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기 직전, 에블린은 잠시 뒤를 돌아보고 현재 우주의 다른 갈림길에서 웨이먼드가 국세청 조사관 디어드리와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에블린은 "내 멍청한 남편이 또 일을 망치려고 한다."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말하지만, 웨이먼드는 이번에도 역시 디어드리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현재 우주의 웨이먼드 또한 알파점퍼들과 에블린의 싸움을 중재한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알고 있는 건 친절해지는 것뿐이다. 특히나 혼란스러울 땐 친절함을 보여달라"며 호소하고, 배우 에블린 앞에 선 웨이먼드는 "당신은 스스로를 투사로 여기잖아. 당신과 아버지는 내가 너무 착하고 무르다고 하였지만, 나 역시 투사이며 이 방식으로 살아남아왔어."라고 말한다.

결국 웨이먼드의 친절함과 진정성이 에블린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과 에블린 모두는 그녀만이 삶에 투쟁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웨이먼드 역시 투사로서, 그러나 그녀와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남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피곤하고 지친다. 강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한 탕 거하게 사기를 당하거나 상처받기 너무나 쉽다. 이렇게 피곤하고 날 선 현대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하고자 노력한다는 것.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을 향한 투쟁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웨이먼드처럼 ‘친절한 투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은지

‘내가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사람들은 한번쯤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를 안아보며 살아간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은 멀티버스 세계관에서 모든 실패와 후회를 겪은 사람으로, 비참한 자신의 삶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인물이다. 지난 에블린의 삶에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누군가 끼어들 틈조차도 없다.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스스로에 대한 원망은 곧 타인을 향한 화살이 된다. 마치 에블린의 원망이 웨이먼드와 조이에게 번졌던 것처럼 말이다. 에블린은 버스 점프를 통해 멀티버스에서 자신의 다른 선택으로 더 나은 여러 에블린의 삶을 보며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를 확신하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멀티버스에서 가장 능력있는 히어로가 주인공이 되는 것과는 다르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는 가장 많은 실패로 인해 보잘것없는 최악의 멀티버스 속 에블린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고통없이 성장하고 싶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장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일까? 에블린은 많은 후회에서 비롯된 가장 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조부 투바키의 검은 베이글과 웨어먼드의 플라스틱 눈알, 서로 상반된 이미지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악의 존재로 그려지는 조부 투바키는 또 다른 멀티버스의 에블린의 딸인 ‘조이’다. 파괴할 검은 베이글은 사실 에블린을 죽이기 위한 소용돌이가 아니라 조부 투바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 부질없는 거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이 사라지잖아.’

파괴적이고 우울한 삶이자, 극단적으로 모든 걸 포기한 조이의 마음을 검은 베이글로 투사한 것은 아닐까? 에블린에게 검은 베이글을 보여준 이유 또한, 어쩌면 블랙홀처럼 커진 자신의 상처를 알아달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웨이먼드의 플라스틱 눈알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말한 대사이다. 자기 자신에게 조금만 다정해지면 어떨까. 삶에 대해 다정해지는 것이 무의미한 삶을 바꾸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에블린은 결국 조이의 엄마로서, 웨이먼드의 아내로서, 돌고 돌아 삶에 대한 선택에서 행복을 찾는다. 모든 것, 모든 곳,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이 있다는 자각은 삶에 대한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다정한 웨이먼드의 말로 에블린은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잊고 있던 삶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항상 미소만 지으며 무능하게만 보였던 남편 웨이먼드는 ‘싸우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헤쳐나가고 있었으며, 자신의 속을 썩인다고만 생각했던 조이의 상처를 그제야 바라보게 되었다. 인생에는 옳은 선택과 틀린 선택이란 없다. 인생은 정답이 없으며, 오로지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