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K-POP이 더 이상 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Intro

 

오랫동안 사람은 사랑을 사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사랑한다. 

대상이 타인에서 ‘나’로 변했을 뿐이다. 


‘나’에게서 비롯되어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

새로운 메시지로 확장하는 K-POP의 가능성은 짚어본다. 


w.이예은






 #K-POP 가사의 변화와 영향 


요즘 K-POP 가사에 새로운 열풍이 불고 있다. 첫사랑, 고백, 이별 등 타인을 향한 사랑에 한정되어 있던 K-POP 가사의 주제가 변화했다. 타인이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노래, 그룹의 고유한 세계관을 담은 노래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 변화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MZ세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MZ세대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미래보다는 현재를,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자신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는 사랑 노래는 이제 예전만큼 큰 매력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출처 : 아이브 공식 트위터

     

두 번째 이유는 K-POP 여성 소비자들이 가진 영향력의 변화이다. 걸그룹의 여성 팬덤의 크기가 남성 팬덤보다 커지며 영향력이 더 강해진 것이다. 과거 수많은 걸그룹은 신체 부위의 노출이나 선정적인 춤 등을 중점적으로 이미지화하여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성 팬덤은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원치 않은 대신에 주도적인 여성상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인 K-POP 산업은 이제 시대에 맞춰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노래를 내고 있다.


출처 : BOYNEXTDOOR 공식 트위터 

   

노래 가사는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가볍게는 10대와 20대 또래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사가 듣는 이에게 친근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는 성별, 나이, 인종 등 어떤 것에도 차별 받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세상, 사회적 약자가 존중받는 세상, 다양한 생명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구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가사는 단순하게 노래의 일부를 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넌 너의 길로 난 나의 길로 

: 사랑도 우정도 아닌 ‘나’를 택한다. 


지금 당장 플레이리스트만 들어가도 사랑 노래가 만연하다. 대중가요의 역사에서 빼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며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K-POP 노래 가사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가슴 떨리는 사랑 이야기 대신 ‘나’의 능동적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올해 화제가 된 노래 <Unforgiven>, <I AM>,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손오공>의 가사만 보아도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탐구하며 솔직한 자아를 표현하는 태도는 정형화된 가사의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각종 소셜 네트워크에서 가사 관련 콘텐츠가 제작되면서 그 속에 숨은 메시지를 파고드는 것이 요즘 대중가요 소비층들의 소비 방식이다.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K-POP의 소비층들이 보다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한 가지 소재에만 편향되어있던 가사들이 새로운 메시지를 담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출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유튜브 공식 채널 I AM 뮤직비디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는 그룹 아이브(IVE)가 있다. 아이브는 사랑에 있어서 주체적인 모습을 담은 노래 <ELEVEN>, <LOVE DIVE>, <After LIKE>를 통해 나르시시즘 세계관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올해 4월에 발매한 첫 정규앨범 [I've IVE]에서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나 자신을 가사로 드러냈다. 특히 타이틀곡 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기 확신에 대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뮤직비디오 역시 인생의 굴곡을 이겨내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아이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을 뜻하는 노래 제목과 달리 후렴 가사의 첫 시작은 ‘너는’ 이다. 이에 김이나 작사가는 “나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는 내가 정하고 그린대로 매일 정해진다는 내용으로 아이브다운 당당함을 담아봤고, ‘너는’으로 시작하니 너 또한 그렇다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즉, <I AM>은 나(아이브)뿐만 아니라 너(대중과 청자) 또한 길을 잃어도 자신이 지나가는 대로 길이니 자신감을 가지고 날아오르면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이라고 모르지 않아’부터 ‘그땐 사랑을 몰랐어’까지 

: K-POP 가사가 만들어내는 콘텐츠 


변화한 K-POP의 가사는 음악산업에 두 가지 전환점을 가져왔다.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건, 대중가요의 서사화다. 대부분의 연예인과 연예 산업 관계자들은 작품 활동 혹은 광고와 같은 외적인 이슈를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 캐릭터나 인스턴트 커피 광고 ‘카누’의 공유처럼 현실에서 그들만의 이미지가 생성된다. K-POP에서 가사는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서사에 몰입하기 쉽게 스토리 형식으로 가사를 완성하고, 이후 발매하는 노래마다 해당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구성한다. 샤이니의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는 이후 발매된 <Love Sick>, <Marry You>라는 곡을 통해 <누난 너무 예뻐>의 주인공과 결혼까지 이어진다는 스토리를 담으며 샤이니에게 서사적 기원과 내용을 부여했다. 이러한 서사화는 팬덤과 아이돌을 공동체화하며, 팬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의 인식을 마련한다. 즉, 팬과 아이돌이 같은 시공간 속에 살고 있다는 효과를 주면서 K-POP의 새로운 콘텐츠가 된다. 


출처: 하이브 공식 홈페이지

       

출처: ATEEZ 공식 트위터  

      

이러한 콘텐츠는 ‘텍스트화’를 불러일으켰다. 이전의 대중가요 가수들은 단지 무대, 예능, 화보 등의 미디어에서만 자신을 보여줄 수 있었고 각 앨범마다 선보이는 콘셉트는 단편적이었다. 가사는 지금껏 단편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던 K-POP에 새로운 문화를 생산해냈다. 가사를 통해 아이돌들에게 여러 서사가 덧씌워지고, 가사 속 ‘떡밥’, 즉 활동 곡의 여러 설정들에 의해 의미가 제시되었다, 더불어 가사와 MV, 세계관을 해석하고 연결하며 팬들끼리 토론을 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를 통해 BTS는 ‘BU Universe’가, ATEEZ에게는 ‘할라티즈’부터 ‘원랜티즈’까지 이어지는 해적 스토리로 세계관을 연결했다. 또한 TXT는 ‘동화’라는 서사와 캐릭터 설정을 가지게 되면서, 이를 인용하는 팬픽, 팬아트, 편집영상과 해석 영상 등의 2차 창작물이 증가했다. 가사는 또 다른 ‘텍스트’를 양산하면서 애정의 대상 뿐 아니라 분석과 재창조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팬들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 가사의 창작자, 연구자, 리뷰, 관객이 되며 K-POP이라는 산업을 다양한 방면에서 확장해나가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냥 불러봐, Ay-yo 

: 세계관 양립을 위한 가사 


K-POP에서 세계관은 유구했다. 여섯 개의 수정을 표현했던 젝스키스부터 메타버스 세계관을 담은 에스파까지 각 그룹의 개성을 보여주는 세계관은 그룹에 서사를 부여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화제성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런 그룹의 세계관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가사이다. 하지만 ‘ae’, ‘초능력’, ‘무한확장’, ‘청춘’ 등 생소한 단어들의 나열은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 가사를 보면 다소 난해한 경험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세계관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닌 스타일이 되었다. 가사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표현 방식에서 세계관이라는 콘텐츠에 속해 이를 설명하는 전달매체로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현상은 <텔미>나 <하루하루>같은 메가히트곡의 제작을 어렵게 한다. 세계관은 기존 팬덤만이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어버릴 것이고 대중가요가 더 이상 ‘대중’가요가 아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출처 : SM aespa 공식 사이트 

    

K-POP 시장에서 세계관이 활용되는 것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세계관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일반 대중에게 피로도와 거부감을 유발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팬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흥행 공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이에 더해 아티스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와 퍼포먼스이며, 세계관은 그저 보조 역할에 불과하므로 과도한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몇몇 평론가들은 세계관은 아이돌 산업이 다른 산업 분야와도 연계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실제로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올해 신제품 광고 영상을 그룹 아이브의 세계관을 활용하여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면성이 있는 만큼 세계관 활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최대화하되, 그것이 K-POP의 본질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Dear.A의 경험담

 

민지: 노래를 들을 때 집중하게 되는 것은 반주와 가사, 멜로디죠. 특히 가사는 노래의 흐름을 잡고 주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고요. 다양한 주제와 형식이 담긴 만큼, 각자 가지고 있는 가사의 취향도 다 다를 것 같아요. 


지은: 저는 라임(운율)이 맞춰진 가사를 좋아해요. AKMU의 라는 노래 중에서 ‘난 몰래 뒤에서 긍긍전전해 점점 해가 지면 달빛 정전에 용기가 나 내 맘을 전부 전해’라는 가사가 있는데, ‘전전해’, ‘점점해’, ‘정전에’, ‘전부 전해’라는 부분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이 노래를 감상할 때마다 해당 파트는 더 집중해서 들었던 거 같아요.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가사를 곱씹을수록 화자의 간절한 마음이 잘 느껴졌어요. 이처럼 AKMU 노래에 는 센스 있는 라임을 포함한 가사가 참 많아요. 같은 앨범의 수록된 곡 <200%>에도 ‘난 strawberry처럼 very very 상큼한 사람 don't worry worry 어리바리한 그대 주위 사람들은 모두 다 이기주의’라는 가사가 있어요. 두 곡 모두 발매된 지 꽤 오래됐지만 흥미로운 가사 때문에 지금도 즐겨 들어요. 


채원: 저는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가사에 넣은 뒤 약간 모호하게 불러서 언뜻 들으면 이 단어 같기도, 혹은 저 단어 같기도 한 느낌을 주는 가사를 좋아해요. 예를 들면 'BOYNEXTDOOR'의 노래 <뭣같아>에서 ‘사양할게’ 라는 가사가 특히 그러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아요. 언뜻 보면 네 글자로밖에 안 이루어진 아주 단순한 가사죠. 하지만 헤어진 연인이 미우면서도 보고 싶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이 노래에서 ‘사양할게’라는 가사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온대도 사양하겠다는 뜻이 되지만 비슷한 발음인 ‘사랑할게’로 들릴 때면 미워도 결국은 그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서도 그 가사가 ‘사랑할게’로 들린다고 좋아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가영: 저는 원래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잘 보는 편이 아니었어요. 가사보단 멜로디를 더 중시해서 한 노래를 100번을 들어도 가사를 못 외울 때도 있을 정도였거든요. 사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K-POP을 꾸준히 들어왔고, 실제로 열성적인 팬이었기 때문에 K-POP에서 사랑을 주제로 얼마나 많은 노래를 선보였는지 잘 알고 있었었거든요. 그래서 더 가사를 안 봤어요. 그러다 우연히 음악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왼쪽 하단에 작게 띄운 가사가 더 이상 사랑을 주제로 얘기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게 바로 저의 음악적 편식이 깨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보았던 가사가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속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였어요. 성인이 되고 사랑보다, 그 상대보다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저 노래 가사가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민지: 저는 비유를 사용한 가사를 좋아해요. 비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인 만큼, 그러한 가사를 발견하면 의미를 해석하고 상상하는 것에 재미를 느껴요. 그러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노래를 만나기도 하고요. 그중에서 저는 AKMU의 <시간과 낙엽>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해요.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떨어지는 낙엽에 그간 잊지 못한 사람들을 보낸다’나 ‘시간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난 추억이란 댐을 놓아 미처 잡지 못한 기억이 있어’라는 가사를 보고, 주제를 아름다우면서도 흔하지 않게 표현한 점에 놀랐어요. ‘낙엽’이나 ‘댐’처럼 주제와 관련된 단어를 빗대어 나타내서 노래를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비유는 가사가 눈앞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주어서, 이를 발견할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 기분이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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