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미美의 꽃밭에서
짙은 여운을 남기고 사는 꽃들의 이야기
w. 김민지
# 위의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평범해 보이는 이 소변기가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켜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만약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가?
마르셀 뒤샹은 상점에서 구입한 남성 소변기에 R. Mutt라고 서명한 후,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1917년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그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 이전의 예술 개념을 전복시키고 20세기 이후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더니즘 이전 시기 전통 미술의 주제는 성서나 신화같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었다. 중세의 많은 작품들이 성서를 기반으로 탄생했고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 기반한 작품은 꾸준하게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과거에 통용되었던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든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혹은 이야기나 대상 자체가 배제되어 작품이 기호화되기도 한다.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표면적인 주제가 배제된 현대미술은 대중성을 잃게 되었다.
<샘>이 논쟁 끝에 대중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철수된 것처럼, 현재에 이르러서도 많은 대중들은 현대미술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그리고 이는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생각과 현대미술에 대한 심리적 장벽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왜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느끼는 걸까? 현대미술을 좀 더 쉽고 재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러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먼저 컨템포러리 아트, 다원주의 미술 등 예술사의 다양한 개념 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현대미술 (Modern Art)과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어떻게 구분될까?
모던 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는 큰 범주에서 ‘현대미술’로 총칭되며 혼용되기도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엄연히 구분된다. 모던 아트는 근대미술이 끝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미술로 인상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의 수많은 사조들을 포함한다. 컨템포러리 아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점에 만들어지는 미술로, 모던 아트와 같은 특정한 사조들로 정의되지 않고 작가의 개인적인 주제 탐구로 발전해나갔다. 모더니즘의 종말과 함께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탄생하였다. 모던 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를 작품의 창작 시기로 나누기보다는 창작 확장의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어떤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
미니멀리즘 이후, 일상적 사물과 예술 작품이 시지각적으로 구분되지 않게 되어 그러한 성질에서 회화의 본질을 찾아온 모더니즘식 미술이 종말하게 되었다. 미술 개념의 종말 이후 미술의 순수성은 어떤 것이든 미술이 될 수 있게 하였다. 미술의 본질은 인식 가능한 지각적 특성이 아니라 작품과 사물을 구분시켜주는 미술 제도와 이론적 상황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미술을 평가할 수 있는 고유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고, 미술은 다양한 목적과 요구에 따라 생산된다.
“미니멀리즘의 즉물적 작품 (Literalist Art)에서 감각은 관람자가 작품과 대면하는 실제 상황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연극적이며, 연극이 미술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있다.”
-Michael Fried
마이클 프리드는 미술가가 작품이 속한 실제 장소, 시간, 관객 등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나타나게 되는 '연극성'을 순수미술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프리드가 미니멀리즘에 대한 공격과 비판의 요소로 사용했던 ‘눈 앞에서 경험할 때에만 존재 가능한 ‘연극성’을 전면적으로 차용하여 가지고 와 대상화되는 물질이 없이도 예술 창작이 가능하다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 미니멀리즘 이후 다양한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 사조들이 등장하였다. 마이클 프리드가 주창한 '연극성'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가들의 핵심 전략으로 기능하여 현대미술의 장르 확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미술에 대한 지각을 정적이고 시각 중심적인 방식에서 유동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모던 아트의 종말 이후 컨템포러리 아트와 다원주의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더 이상 현대미술은 몇 개의 미술 사조에 국한되지 않기에, 작품과 작가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다원주의란?
다원주의는 20세기 후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다양한 가치관, 이념, 문화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공존을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술계에서 다원주의는 1960년대 후반의 사회문화적 격변에 따라 등장했으며, 이론보다는 감각을, 동질성보다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 다원주의 이후 현대미술의 특징은?
• 주제의 분화
기존의 거대 담론이 무너지며, 여러 미시적 담론이 자리잡게 되었다. 대중문화, 여성문화, 노동자 예술,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등 주목받지 못하던 소수자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인종차별, 환경보호문제 등 정치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다루어졌으며, 미술의 영역이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행위와 참여
다원주의 이후, 직접적인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예술이 퍼포먼스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는 곧 예술이 행위를 통하여 시공간 또는 연출자들에 의해 완성됨을 의미한다. ‘놀이’ 개념을 토대로 하여, 전통의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나 ‘과정’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고,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 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가 중요시되었다.
• 재료의 다양화
재료가 다양하게 변모한 것 역시 다원주의 이후 현대미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보다 잘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작품을 보는 관객이 신선함과 새로움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캔버스 위에 나비를 붙여놓은 '데미안 허스트', 배설물과 혈액을 사진으로 담아낸 '안드레 세라노' 등이 있다.
출처: The Page Gallery
# 다원주의 작품들의 예시는 무엇이 있을까?
• 지나 손의 대지미술
대지미술이란 암석·토양·눈 등의 자연 재료를 활용하여 대지를 미술 작품으로 삼는 예술로, '어스 워크(earth )' 또는 '랜드 아트(land art)'라고도 불린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출발한 미술로서, 다원주의 미술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허공에 피어오르는 연막탄을 이용한 작품, 해변가에 기와를 깔아놓은 후 파도에 의해 변화하는 양상을 살피는 작품들이 모두 대지예술의 예시이다.
출처: 지나 손 갤러리
• 크리스 오필리의 흑인 정체성
출처: WIKIART.ORG
크리스 오필리의 ‘No woman, No cry’는 아들을 잃은 후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어머니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에는 어린 나이에 희생된 아들의 얼굴이 표현되어있다. 코끼리 똥이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 크리스 오필리에게 코끼리 배설물은 유색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재료라고 한다.
해당 작품은 1993년 로렌스라는 이름의 흑인청년이 버스 승강장에서 다섯 명의 백인 청년들로부터 무차별적으로 공격 받고 사망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 오필리는 반인권적 시선과 행위들을 예술을 통해 항의한 것이다. 이처럼, 인종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예술로 승화하여 드러내는 것 역시 다원주의의 한 양상이다.
• 마크퀸의 장애
출처: marcquinn.com
마크퀸은 ‘마블(Marvel)’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예술계에서 소외되었던 대상인 장애인을 가감없이 표현하였다. 그는 불완전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통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의문을 던진다. 관객에게 밀로의 비너스와 같이 완벽한 신체 비례를 갖추어야만 ‘아름답다'고 여겨질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마블 시리즈는 그동안 사회에서 비정상적이고 추한 것으로 폄하되었던 장애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을 논하는 장을 열었다.
# 현대미술을 어떤 시선으로 보면 좋을까?
다원주의의 출현으로 현대미술의 제작자와 감상자 간 교류와 소통이 늘고 있다. 자연의 흐름이나 사회 문제를 과감하게 가시화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한, 현대미술은 주제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예술가가 작품이 속한 실제 장소, 시간, 관객 등을 작품의 일부에 포함시키며 감상자 스스로 주제를 찾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출처: Dunk Dot Biz
<Dunk Dot Biz>는 마이클 조던이 서명한 농구공과 진품 인증서, 그리고 그가 직접 농구공에 사인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판매한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별도의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사인한 농구공을 받게 되리라 예측하였지만, 농구공에 사인한 사람은 동명이인의 마이클 조던이였다. 이는 정확한 정보가 없음에도 유명인의 서명이기에 구매한 사람들의 충동적인 소비주의를 풍자하였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져 인간의 본능을 이끌어내며 자연스레 주제를 각인시킨다.
이제 예술은 단순 지식 축적에 그치지 않고 놀이와 같은 형태의 참여를 통해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소통의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아름: 감상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게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혹시 내가 이상하게 해석한 게 아닐까? 이건 틀린 해석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었다. 분석에는 맞고 틀린 것이 존재하지만, 해석에는 틀린 해석은 없고 다른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즐겁게 감상하는 것이 작가에게도 감상자에게도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예원: 엄청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작품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감상들을 자유롭게 느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서술적인 평가도 좋고,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단순한 감상도 좋다. 이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현대미술을 해석하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재: 작품을 천천히 바라보며 주제를 추리한 후, 그 다음 설명을 읽어본다. 그 다음에는 내 감상과 설명을 비교해보며 숨겨진 장치를 찾아본다. 현대미술은 한 가지 주제에만 국한 되지 않고 맘껏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이기에 한 작품에서 들 수 있는 다양한 감상을 즐기는 것이 현대미술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는 나만의 방법이다.
지민: 예술 자체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은 예술을 즐기는 태도이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중요한 것은 나(대중)의 관점이다. 예술가는 우리를 작품에 초대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유로운 관점을 가지고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기 어렵다면 나만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을 만들어 현대미술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예술에 정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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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r. 홍아름, 박예원, 김민재, 홍지민
designer. 강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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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의 꽃밭에서
짙은 여운을 남기고 사는 꽃들의 이야기
w. 김민지
# 위의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평범해 보이는 이 소변기가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켜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만약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가?
마르셀 뒤샹은 상점에서 구입한 남성 소변기에 R. Mutt라고 서명한 후,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1917년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그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 이전의 예술 개념을 전복시키고 20세기 이후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더니즘 이전 시기 전통 미술의 주제는 성서나 신화같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었다. 중세의 많은 작품들이 성서를 기반으로 탄생했고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 기반한 작품은 꾸준하게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과거에 통용되었던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든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혹은 이야기나 대상 자체가 배제되어 작품이 기호화되기도 한다.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표면적인 주제가 배제된 현대미술은 대중성을 잃게 되었다.
<샘>이 논쟁 끝에 대중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철수된 것처럼, 현재에 이르러서도 많은 대중들은 현대미술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그리고 이는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생각과 현대미술에 대한 심리적 장벽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왜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느끼는 걸까? 현대미술을 좀 더 쉽고 재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러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먼저 컨템포러리 아트, 다원주의 미술 등 예술사의 다양한 개념 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현대미술 (Modern Art)과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어떻게 구분될까?
모던 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는 큰 범주에서 ‘현대미술’로 총칭되며 혼용되기도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엄연히 구분된다. 모던 아트는 근대미술이 끝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미술로 인상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의 수많은 사조들을 포함한다. 컨템포러리 아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점에 만들어지는 미술로, 모던 아트와 같은 특정한 사조들로 정의되지 않고 작가의 개인적인 주제 탐구로 발전해나갔다. 모더니즘의 종말과 함께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탄생하였다. 모던 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를 작품의 창작 시기로 나누기보다는 창작 확장의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어떤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
미니멀리즘 이후, 일상적 사물과 예술 작품이 시지각적으로 구분되지 않게 되어 그러한 성질에서 회화의 본질을 찾아온 모더니즘식 미술이 종말하게 되었다. 미술 개념의 종말 이후 미술의 순수성은 어떤 것이든 미술이 될 수 있게 하였다. 미술의 본질은 인식 가능한 지각적 특성이 아니라 작품과 사물을 구분시켜주는 미술 제도와 이론적 상황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미술을 평가할 수 있는 고유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고, 미술은 다양한 목적과 요구에 따라 생산된다.
“미니멀리즘의 즉물적 작품 (Literalist Art)에서 감각은 관람자가 작품과 대면하는 실제 상황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연극적이며, 연극이 미술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있다.”
-Michael Fried
마이클 프리드는 미술가가 작품이 속한 실제 장소, 시간, 관객 등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나타나게 되는 '연극성'을 순수미술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프리드가 미니멀리즘에 대한 공격과 비판의 요소로 사용했던 ‘눈 앞에서 경험할 때에만 존재 가능한 ‘연극성’을 전면적으로 차용하여 가지고 와 대상화되는 물질이 없이도 예술 창작이 가능하다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 미니멀리즘 이후 다양한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 사조들이 등장하였다. 마이클 프리드가 주창한 '연극성'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가들의 핵심 전략으로 기능하여 현대미술의 장르 확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미술에 대한 지각을 정적이고 시각 중심적인 방식에서 유동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모던 아트의 종말 이후 컨템포러리 아트와 다원주의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더 이상 현대미술은 몇 개의 미술 사조에 국한되지 않기에, 작품과 작가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다원주의란?
다원주의는 20세기 후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다양한 가치관, 이념, 문화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공존을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술계에서 다원주의는 1960년대 후반의 사회문화적 격변에 따라 등장했으며, 이론보다는 감각을, 동질성보다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 다원주의 이후 현대미술의 특징은?
• 주제의 분화
기존의 거대 담론이 무너지며, 여러 미시적 담론이 자리잡게 되었다. 대중문화, 여성문화, 노동자 예술,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등 주목받지 못하던 소수자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인종차별, 환경보호문제 등 정치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다루어졌으며, 미술의 영역이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행위와 참여
다원주의 이후, 직접적인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예술이 퍼포먼스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는 곧 예술이 행위를 통하여 시공간 또는 연출자들에 의해 완성됨을 의미한다. ‘놀이’ 개념을 토대로 하여, 전통의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나 ‘과정’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고,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 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가 중요시되었다.
• 재료의 다양화
재료가 다양하게 변모한 것 역시 다원주의 이후 현대미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보다 잘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작품을 보는 관객이 신선함과 새로움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캔버스 위에 나비를 붙여놓은 '데미안 허스트', 배설물과 혈액을 사진으로 담아낸 '안드레 세라노' 등이 있다.
출처: The Page Gallery
# 다원주의 작품들의 예시는 무엇이 있을까?
• 지나 손의 대지미술
대지미술이란 암석·토양·눈 등의 자연 재료를 활용하여 대지를 미술 작품으로 삼는 예술로, '어스 워크(earth )' 또는 '랜드 아트(land art)'라고도 불린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출발한 미술로서, 다원주의 미술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허공에 피어오르는 연막탄을 이용한 작품, 해변가에 기와를 깔아놓은 후 파도에 의해 변화하는 양상을 살피는 작품들이 모두 대지예술의 예시이다.
출처: 지나 손 갤러리
• 크리스 오필리의 흑인 정체성
출처: WIKIART.ORG
크리스 오필리의 ‘No woman, No cry’는 아들을 잃은 후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어머니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에는 어린 나이에 희생된 아들의 얼굴이 표현되어있다. 코끼리 똥이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 크리스 오필리에게 코끼리 배설물은 유색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재료라고 한다.
해당 작품은 1993년 로렌스라는 이름의 흑인청년이 버스 승강장에서 다섯 명의 백인 청년들로부터 무차별적으로 공격 받고 사망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 오필리는 반인권적 시선과 행위들을 예술을 통해 항의한 것이다. 이처럼, 인종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예술로 승화하여 드러내는 것 역시 다원주의의 한 양상이다.
• 마크퀸의 장애
출처: marcquinn.com
마크퀸은 ‘마블(Marvel)’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예술계에서 소외되었던 대상인 장애인을 가감없이 표현하였다. 그는 불완전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통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의문을 던진다. 관객에게 밀로의 비너스와 같이 완벽한 신체 비례를 갖추어야만 ‘아름답다'고 여겨질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마블 시리즈는 그동안 사회에서 비정상적이고 추한 것으로 폄하되었던 장애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을 논하는 장을 열었다.
# 현대미술을 어떤 시선으로 보면 좋을까?
다원주의의 출현으로 현대미술의 제작자와 감상자 간 교류와 소통이 늘고 있다. 자연의 흐름이나 사회 문제를 과감하게 가시화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한, 현대미술은 주제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예술가가 작품이 속한 실제 장소, 시간, 관객 등을 작품의 일부에 포함시키며 감상자 스스로 주제를 찾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출처: Dunk Dot Biz
<Dunk Dot Biz>는 마이클 조던이 서명한 농구공과 진품 인증서, 그리고 그가 직접 농구공에 사인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판매한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별도의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사인한 농구공을 받게 되리라 예측하였지만, 농구공에 사인한 사람은 동명이인의 마이클 조던이였다. 이는 정확한 정보가 없음에도 유명인의 서명이기에 구매한 사람들의 충동적인 소비주의를 풍자하였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져 인간의 본능을 이끌어내며 자연스레 주제를 각인시킨다.
이제 예술은 단순 지식 축적에 그치지 않고 놀이와 같은 형태의 참여를 통해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소통의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아름: 감상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게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혹시 내가 이상하게 해석한 게 아닐까? 이건 틀린 해석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었다. 분석에는 맞고 틀린 것이 존재하지만, 해석에는 틀린 해석은 없고 다른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즐겁게 감상하는 것이 작가에게도 감상자에게도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예원: 엄청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작품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감상들을 자유롭게 느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서술적인 평가도 좋고,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단순한 감상도 좋다. 이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현대미술을 해석하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재: 작품을 천천히 바라보며 주제를 추리한 후, 그 다음 설명을 읽어본다. 그 다음에는 내 감상과 설명을 비교해보며 숨겨진 장치를 찾아본다. 현대미술은 한 가지 주제에만 국한 되지 않고 맘껏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이기에 한 작품에서 들 수 있는 다양한 감상을 즐기는 것이 현대미술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는 나만의 방법이다.
지민: 예술 자체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은 예술을 즐기는 태도이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중요한 것은 나(대중)의 관점이다. 예술가는 우리를 작품에 초대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유로운 관점을 가지고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기 어렵다면 나만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을 만들어 현대미술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예술에 정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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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r. 홍아름, 박예원, 김민재, 홍지민
designer. 강은채